폭스바겐 골프는 출시 이래 지금까지 해치백의 세계 표준이다. 그리고 그 골프를 바탕으로 퍼포먼스를 강화한 GTI는 핫해치의 세계 표준이다. 어떤 브랜드든지 해치백을 만들면 골프와 비교하고, 퍼포먼스가 좋은 해치백을 만들면 GTI와 비교한다. 그 와중에 골프 GTI는 골프라는 이름을 떼내고 그냥 GTI로만 불러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존재가 됐다.
글, 사진 / 박기돈 (RPM9 팀장)
골프가 6세대로 진화하면서, GTI도 따라서 진화했다. 하지만 진화의 폭은 이전 세대간의 진화의 폭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다. 5세대 골프가 그 만큼 괄목할 성장을 했던 탓일 거다. 하지만 6세대 골프는 확실히 더 예쁘고, 더 잘 다듬어졌다.
참고로 GTI는 2세대 골프 때 처음 등장했다. 즉, GTI로만 치면 이번 GTI는 5세대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5세대 GTI’, 혹은 ‘6세대 GTI’ 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소 혼동을 가져 올 수 있다. 한번쯤 정의를 내려 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각설하고. 군살도 좀 빼고, 여기 저기 성형을 마친 GTI는 한 눈에 예쁘다는 소리가 나온다. 사실 GTI는 늘 기본형 골프보다 멋지긴 했었다.
미모의 핵심은 언제나 눈이듯이 GTI도 눈이 예쁘다. 하지만 새롭게 적용된 LED 주간 주행등은 다소 생소한 모습으로 켜져서 멀리서 LED만 바라 보면 낯설게 느껴진다. 그릴을 가로지르는 빨간 줄과 GTI 엠블렘이 강렬한 인상을 더한다.
차체는 그렇다 치고, 쉽게 바꿈직한 알루미늄 휠이 이전 세대와 비슷하게 리볼버 권총의 총알집을 연상케 하는 모습인 것도 의외다.
실내도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다. 아래를 잘라낸, 근육질의 D컷 스티어링휠과 기어 레버 등에는 빨간 색 스티치를 넣었다. 근육질의 스티어링 휠은 잡는 느낌이 워낙 좋고, 시프트 패들의 위치와 작동감도 좋다. 시프트 패들은 크기가 작지만 사용하는 데는 상당히 효율적이다. 계기판에도 빨간 테두리 원을 더했는데, 흰 눈금 때문에 스티치처럼 보이는 것이 재미있다.
대시보드의 플라스틱 질감이 좀더 고급스러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센터페시아의 새롭게 정돈한 모습은 무척 마음에 든다. 자주 사용하는 메뉴를 외부에 버튼으로 빼 편의성을 높였다. 터치 스크린 방식의 고해상도 모니터에는 선명한 네비게이션 화면이 제공되고, 유럽 모델답게 USB 대신 SD카드를 넣을 수 있는 슬롯 2개를 준비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모니터의 각도가 좋지 않아 운전석에 볼 경우 창문이 비쳐 화면의 일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각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블루투스는 전화뿐 아니라 스마트폰 속의 음악도 무선으로 연결해 들을 수 있다. 평소 즐겨 듣는 아이폰4 속의 음악을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들어 보았는데, 생각보다 음질이 좋은 편이었다. 보통 블루투스로 연결할 경우 음질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이다. 이 정도의 음질이 보장된다면 굳이 SD카드를 이용할 필요가 없겠다.
기어 레버 목에는 크롬을 두르고 DSG라고 새겼다. 기어 레버 상단이 골프공 모양이 아닌 점은 늘 아쉽다. 기어 레버 앞 쪽에는 ESP를 끄는 버튼과 파크 어시스트 기능 버튼이 위치하고 있다. GTI라고 파크 어시스트를 빼지 않은 것이 고맙다. GTI를 선택할 만큼 운전을 즐기고, 또 잘하는 운전자라 하더라도 파크 어시스트의 정교함과 편리함에 익숙해 지면, 틀림없이 자주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엔진은 기존의 2.0 TFSI를 개선해 최고출력 211마력/5,300~6,200rpm과 최대토크 28.6kg.m/1,700~5,200rpm을 발휘한다. 아우디 A4에 얹힌 것과 같지만 최대토크는 차이가 난다. 변속기는 듀얼 클러치 방식의 6단 DSG다. 이 엔진과 변속기 궁합이 그만이다. 회전은 빠르게 상승하고, 노면에 전달되는 힘은 전혀 손실이 없는 듯 직접적이다.
이전의 200마력 GTI가 보여준 과격한 달리기 실력이 일품이었던 만큼, 출력이 조금 높아진 이번 GTI에서는 그 보다 더 짜릿한 가속을 기대했지만, 의외로 감각적으로는 덜 자극적이다. 분명히 빨라졌을 텐데 차이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살짝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미니 쿠퍼 S와 인피니티 G, 그리고 푸조 207 등이 모두 진화하면서 부드러운 고성능으로 진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감각적으로는 짜릿함이 덜해서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보다 안정적이고 정교한 달리기에 믿음이 더해진다.
서스펜션은 일반 골프와는 확실히 다르게 느껴질 만큼 단단하다. 노면이 고르지 못한 도로에서는 심하게 튀는 느낌이지만, 이 역시 이전 세대에 비해서는 더 정교해지고 부드러워져, 일상에서의 여유가 더해졌다.
변속은 6,900rpm에서 이루어진다. 상당한 고회전이다. 과거의 터보엔진은 고회전을 사용하는데 무리가 있었지만, 최근의 직분사 터보 엔진들은 상당한 고회전 영역을 커버하고 있다. 각 단에서의 최고 속도는 55, 95, 140, 190, 그리고 245km/h다. 제원상 최고속도가 238km/h인데, 계기판 상으로 245km/h에서 6단으로 변속이 이루어졌다.
0~100km/h 가속 6.9초와 최고속도 238km/h는 핫해치의 표준다운 고성능이다. 특히 최고속 영역에서의 안정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직분사와 터보로 무장한 엔진과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장착한 스포츠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0~100km/h 가속에 거리는 시간이 점점 빨라져, 신형 모델이 등장할 때 1초 가까이 단축하는 경우도 많아, 6.9초의 가속 성능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착시현상이 일어 날 수 있지만, 실제로 달려보면 GTI의 가속 성능은 여전히 짜릿하다.
그리도 또 하나 칭찬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것, 바로 듀얼 클러치 변속기 DSG다. 변속이 정교하고 빠르며, 효율성도 좋아 연비가 수동변속기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경우도 있다. 특히, 폭스바겐의 DSG에서 D 아래 S모드를 선택하면, 모든 상황에서 강력한 가속력을 즐길 수 있다. 평소보다 1~2단 낮은 기어를 선택해 높은 회전수 영역을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스포츠 주행을 즐기기에 더 없는 선택이다. D나 S모드에서도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면, 변속기가 알아서 힐앤토를 구사해 주는 화끈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패들 시프트를 사용하면, 와인딩에서 GTI의 전투력은 극대화된다. 코너 진입 전 강력한 브레이킹과 함께 왼쪽 시프트 패들을 당겨 주면, 전광석화처럼 힐앤토를 구사해 준다. 그리고 그 때 회전수가 상승하면서 나는 엔진 사운드는, 6900rpm 근처에서 변속할 때 터치는 ‘퓨~~’하는 소리와 함께 귀로 즐기는 GTI의 백미다.
이전 GTI는 앞바퀴 굴림임에도 불구하고 오버 스티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새 GTI는 하체가 살짝 부드러워지면서 정교함이 더해져, 스티어링 특성은 뉴트럴을 잘 유지해 준다.
6세대 골프의 GTI는 대폭적인 성능 향상 보다는 정교하고 안정적인 개선을 통해 상품성과 신뢰를 높인 모델이다. 그리고 높아진 그 위상만큼 세계 핫해치의 기준점도 함께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