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다리던 짚 그랜드 체로키의 디젤 모델이 나왔다. 전체적인 상품성은 당연히 가솔린보다 낫고, 하체도 찰지다. 편의 장비 몇 개 빠진 게 아쉽다면 아쉬울 수 있긴 하지만.
글/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고병배 (RPM9.COM 객원기자)
올해 초 나온 가솔린이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저였다면 디젤은 메인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랜드 체로키 같은 대형급 SUV라면 디젤이 베스트 초이스. 몇몇 가솔린 SUV를 시승한 경험을 생각하면 도저히 기름 값에서 답이 안 나온다. 아 물론 나 같은 양민에 국한된 얘기다.
가솔린 시승차는 빨간색이었는데 디젤은 하얀색이다. 하얀색도 괜찮긴 한데 보디의 명암이 눈에 덜 띈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보닛의 굴곡이 대번에 보였는데 하얀색은 그런 면이 덜하다. 번쩍대는 프런트 그릴의 크롬의 효과도 상대적으로 희석된다. 트렁크에 붙은 CRD 로고만 제외한다면 외관에서의 차이는 없다.
사실 차이가 하나 더 있다. 디자인이 같긴 하지만 휠 사이즈에서 차이가 크다. 가솔린은 20인치였지만 디젤은 18인치고 타이어 사이즈도 265/50R에서 265/60R로 편평비가 높아졌다. 신기한 게 가솔린 탈 때는 20인치는 돼야지 했다가 막상 18인치도 그리 작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엔진이나 연비를 생각하면 18인치가 더 유리해 보인다.
엔진만 다른 모델이니 실내도 당연히 같다. 메탈과 우드를 적절히 섞은 실내는 품질감이 많이 좋아졌다. 이전의 크라이슬러는 실내 플라스틱이 참 딱딱했는데 그런 면이 많이 줄었다. 고급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은 되는 것 같다. 흠이 있긴 하다. 오버헤드 콘솔의 버튼은 조작감이 헐렁하다.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는 조작감이 괜찮다.
센터페시아는 단순한 디자인이다. 계기판과 같은 라인에 모니터가 있고 그 아래에 공조장치가 있다. 모니터는 요즘 차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이즈가 작다. 화질이 썩 좋은 것도 아니다. 특히 국내에서 작업한 내비게이션은 화질이 더 나쁘다. 모니터에 뜨는 메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폰트가 예쁘지 않은 게 흠이다. 후진 시 가이드 라인도 운전대와 연동되지 않는다.
그랜드 체로키에는 하드 디스크가 내장된다. 그러니까 외부 기기의 연결은 물론 하드 디스크로 파일을 옮겨 저장할 수 있다. USB 단자의 위치도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곳에 있다. MP3에 있는 약 2GB의 파일을 옮기는데 10분이 약간 넘게 걸린다. 큰 저장 공간이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다.
센터페시아를 살피다 뭔가 허전해서 보니 몇몇 버튼 자리가 비어있다. 가솔린에 있던 냉방 시트와 스티어링 열선 기능이 빠져 있다. 운전대 열선이야 없어도 그만이긴 한데 냉방 시트는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있으면 좋은 편의 장비라고 생각한다. 선루프도 없다. 수입차 업체가 어지간해서는 선루프를 빼지 않는데 가격 책정에 고심한 것 같다.
이건 별 건 아닌데 운전대 상단에 있던 우드 트림도 빠졌다. 그 우드 없으니 약간 허전하기도 하고 에어컨 빵빵 틀고 다닐 때 아주 조금 미끄럽기도 하다. 운전대 앞에는 트립 컴퓨터와 크루즈, 뒤에는 오디오 컨트롤 버튼이 있고 뒤에 있는 오디오 선국 및 볼륨 버튼은 사용이 편하다. 손에 잘 닿는 위치에 있다.
가솔린도 그랬지만 디젤 역시 시트의 쿠션이 단단하다. 시트는 모두 전동이고 가죽의 질도 괜찮다. 요추 조절의 폭이 큰 게 맘에 든다. 시트 포지션도 매우 높다. 가장 낮춰도 어지간한 SUV보다 높다. 옆으로 지나가는 미쓰비시 아웃랜더를 내려다본다. 사이드미러, 룸미러를 통한 시야도 좋다. 사이드미러는 대충 맞춰도 좌우 차선이 잘 보인다.
2열은 충분히 넓고 1열처럼 시트도 단단하다. 등받이가 좀 곧추선 듯 보이지만 각도 조절이 가능해 별 문제는 없다. 2열에도 히팅 시트 기능이 있다. 트렁크도 허전해서 뭔가 했더니 바닥에 크롬 바가 빠졌다. 냉방 시트, 운전대 열선, 선루프, 트렁크 크롬 바를 제거해도 가솔린 오버랜드와 가격이 비슷한 걸 보면 디젤 엔진이 비싸다고 생각해야 하나. 벤츠에서 계속 엔진 받았으면 더 비싸졌을까.
그랜드 체로키 디젤은 구형과 동일하게 3리터 V6지만 공급사가 벤츠에서 VM 모토리로 바뀌었다. 크라이슬러는 이제는 남이 된 벤츠 대신 VM 모토리를 택했다. 최신 유닛이어서 그런지 출력과 토크(241마력, 56.0kg.m)의 수치가 준수하다. 구형은 218마력이었고 토크도 조금 낮다.
그랜드 체로키 디젤은 가뿐하게 움직인다. 덩치에 맞지 않게 날렵한 초반 움직임을 보인다. 제원상 최대 토크는 1,800 rpm에서 나오지만 대략 2천 rpm은 돼야 제대로 힘을 받는 느낌이 든다. 이보다 더 낮은 회전수에서 최대 토크가 나오는 디젤도 있지만 지체 현상은 별로 없다. 터빈이 돌아가는 시점까지가 빠르다. 순발력 면에서 부족함 없다고 봐도 좋다.
구형과 비교를 하자면 동력 성능은 최소 동등 또는 조금 우위에 있다. 대신 회전 질감은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엔진 사운드가 거칠고 3천 rpm이 넘으면 실내로 들어오는 엔진 음도 큰 편이다. 반면 방음을 잘했는지 하체에서 올라오는 소음은 적다. 고속으로 달려도 바람 소리가 크지 않다.
1~4단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약 40, 75, 120, 175km/h이다. 가솔린은 3단에서 속도 제한(180km/h)에 걸리지만 디젤은 5단에서 최고 속도가 나온다. 초반의 기어비도 많이 촘촘하다. 가속력은 4단까지는 기운차게 지속되고 5단으로 넘어가면 조금씩 처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5단으로 어렵지 않게 200km/h를 넘긴다. 바늘의 움직임보다 전진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크다. 직선에서 주욱 밟으니 계기판에 208km/h까지 찍혔다.
변속기는 5단이다. 6단이 흔하고 8단도 자주 보는 상황에서 5단은 아무래도 뒤처져 보인다. 그랜드 체로키의 5단 자동변속기는 평범하다. 특별한 장점도 없지만 단점도 없다. 왼쪽으로 툭 치면 수동 모드로 전환된다. 그랜드 체로키도 8단으로 업그레이드되면 가속력과 연비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지금은 5단으로 100km/h를 달리면 회전수는 1,900 rpm이다. 조금 높다. 반면 8단을 적용하면 크루징 시 연비를 더 좋게 할 수 있다. 지금도 연비가 나쁜 건 아니다. 80~90km/h 사이로 크루징하면 트립 컴퓨터에 나타난 실 연비는 20km/L를 넘는다. 덩치를 생각하면 꽤 좋은 연비다.
주행 성능에서 인상적인 것은 고속 안정성이다. 고속으로 달리거나, 완만한 코너를 돌아나갈 때의 안정감이 탁월하다. 높은 전고에서 비롯되는 롤이 있긴 하지만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다. 흡사 벤츠의 느낌이다. 고속 안정성은 가솔린은 물론 동급의 다른 SUV와 비교해도 강점이 있다. 최고 속도가 200km/h을 조금 넘는 정도지만 이 속도로 편하게 크루징 할 수 있다.
오프로드의 성격이 강한 모델임을 감안하면 하체는 단단한 편이다. 휠이 18치로 줄고 타이어의 편평비는 조금 커졌지만 전반적인 움직임은 디젤이 더 좋다. 코너를 돌 때 ESP가 개입해 언더스티어를 줄이고, 자세를 바로 잡은 다음에는 금방 빠진다. 스포트 모드로 달리면 ESP의 개입 시점은 좀 더 늦춰진다.
브레이크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만 고속에서 연달아 2번 급제동하면 페이드가 나타난다. 특별한 건 아니지만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기능도 있다.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엔진 출력이 사그라드는 안전 기술이다.
시승 중 묘한 경험을 했다. 시동이 켜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참 버벅대다가 간신히 걸어서 집에 왔는데, 이번엔 시동이 꺼지질 않았다. 역시 10분 넘게 씨름하다 시동을 끄고 귀가. 일요일 아침에 시승을 위해 시동을 걸었는데 역시 걸리지 않았다. 고민하다 크라이슬러 24시간 서비스와 통화를 하는 중 시동이 걸렸다. 시승 마치고는 다행히 시동이 꺼졌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에도 시동이 안 켜졌다. 고민하다가 만나기로 한 사진 기자에게 혹시 늦을 수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 전송되는 순간 시동 대기 상태가 됐다. 그리고 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고민을 하다가 혹시나 해서 사진 기자에게 전화해 통화하면서 버튼을 누르니 시동이 켜졌다. 표본이 작긴 하지만 첫 사례 이후에는 모두 전화하는 순간 시동이 됐다. 사진 기자를 만나서 촬영을 마친 후 재연하려 했는데 시동이 안 꺼져서 그냥 반납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스마트 키 인식 불량이란다. 시승차에서만 일어난 문제겠지.
그랜드 체로키 디젤의 장점은 타고 다니기 편하다는 것이다. 오래 운전해도 피곤하지가 않고 승차감도 좋다. 연비가 좋은 것은 물론이다. 2박 3일(장거리를 뛴 것은 아님) 시승하면서 기름이 반이나 남았다. 비슷한 가격의 가솔린에 비해 편의 장비 몇 개 빠긴 게 아쉬울 수도 있지만 디젤의 장점으로 상쇄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