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되지 않으면 회사를 떠날 각오로 비대칭 디자인을 고집했습니다.”
닛산 큐브의 디자이너, 히로타다 쿠와하라 씨가 말했다. 그는 최근 국내 출시된 큐브의 미디어 시승행사를 위해 방한했다. 이번 3세대 큐브는 물론, 지금의 인기와 명성이 있게 한 2세대 큐브의 외관을 디자인한 장본인이다.
1998년, 2세대 큐브의 디자인 개발에 참여하게 될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로, 큐브가 목표로 하는 고객층의 나이 대였다.
르노와 합병하고 시로 나카무라 씨(현재 닛산자동차 디자인 수석부사장)가 이끌게 된 디자인 부서는 일본 칼로 상징되는 날카롭고 긴장감 있는 빠른 차 위주로 통일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자동차에 타서 까지 긴장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커피를 통해 마음을 편하게 하는 머그컵 같은 자동차, ‘슬로우 디자인’의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본인이 직접 타더라도 20년은 질리지 않을만한 디자인을 찾아내고 싶었다. 세월이 흘러도 하나의 표준으로 남을,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큐브를 만들어 내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경쟁모델인 토요타의 박스카 bB등을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고, 오리지널 비틀, 미니 등 천재들의 작품으로 꼽히는 명차들 만을 열심히 연구했다. 그러면서도 요즘 시대에 딱 맞는 차, 적당한 크기의 차가 어떤 것일지 고민했다. 교통 정체가 심한 일본이기에, 천천히 달려도 운전이 즐거운 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좌측통행을 하고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일본 도로의 특수성을 반영한 차가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뒤를 돌아다 볼 때 반대편 뒤쪽 모서리 기둥이 없다면 주차할 때 시야가 좋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비대칭 디자인을 고안하게 됐다.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시며 구상한 끝에 이런 아이디어를 얻게 된 그는 스스로 “우와~ 나 정말 천재 아니야?”라고 기뻐하며 사무실에 돌아가 회사 일정표에 일러스트 형식으로 아이디어 스케치를 그려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좌우 비대칭 디자인은 선배, 상사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장난하지 말고 진지하게 일하지 못하겠냐!”라는 꾸지람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쿠와하라 씨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커다란 거울을 이용해 비대칭 디자인의 당위성을 보여주며 상사들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디자인 책임자였던 시로 나카무라 씨도 이 디자인을 승인했고, 그냥 박스카가 아닌 독특한 비대칭 디자인의 큐브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됐다. “다른 회사였다면 이런 디자인이 실제 양산차로 나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쿠와하라 씨가 말했다.
이러한 그의 주도로, 닛산의 2세대 큐브가 탄생했다. 세심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겨 만든, 모델체인지를 하더라도 질리지 않고 유행을 쫓지 않는, 애착이 느껴지는 보편적 디자인을 완성했다는 것이 쿠와하라 씨의 자평이다. 머그컵의 부드러운 느낌을 차에 반영하고 싶었던 쿠와하라 씨는 퇴근 때마다 인근 폭스바겐 매장에 들러 전시차의 부드러운 곡선을 매만졌다고 한다.
그리고, 2세대 큐브의 디자인은 파오(PAO), 피가로(Figaro) 등 닛산의 ‘파이크 카(Pike car)’ 시리즈를 담당했던 모델러에 의해 실체를 갖게 되었다. 젊은 이들로 개발 팀을 꾸렸고, 그러한 분위기가 차에도 반영되었다는 설명이다.
2세대 모델까지만 해도 큐브는 일본 내수시장 전용 모델이었다. 때문에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모델은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3세대 모델의 경우 미국과 유럽 등에 수출할 것을 감안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비대칭은 더욱 문제가 되었다. 단순히 좌우를 뒤집어 찍어내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아마 개발비도, 체력도 두 배 이상이 필요할 것입니다.”라는 것이 쿠와하라 씨의 설명.
하지만 쿠와하라 씨는 물론,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의 카를로스 곤 CEO도 큐브는 비대칭 디자인으로 가야 한다는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견은 있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