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508은 길이 4,790mm, 폭 1,850mm, 높이 1,460mm의 차체크기를 가졌다. 현대 쏘나타가 4,820mm x 1,835mm x 1,470mm이므로, 국내 기준에서도 중형세단이라고 부르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내 출시된 508중 ‘악티브(Active)’ 모델은 이 덩치에 1,600cc급 엔진을 얹고 나왔다. 게다가 이 엔진의 최고출력은 112마력에 불과하다. 1.5 엔진의 현대 스텔라를 연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20여 년 전의 그 차는 큰 덩치에 작은 엔진을 얹으면 어떻게 되는 지를 잘 보여준 선례였다.
하지만, 그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경량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차의 무게는 커진 차체의 부피만큼 늘지 않게 됐고, 엔진 효율의 향상 덕분에 같은 배기량에서도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만큼의 마력과 토크를 뽑아내게 됐다. 요즘은 다운사이징의 유행으로 이전보다 배기량을 낮춘 엔진들이 오히려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출력이 낮은 508 악티브가 설득력을 갖는 것은 배기량 1.6의 심장이 가솔린이 아닌 디젤이라서 점 – 그래서 필요 충분한 만큼의 토크를 낮은 회전수에서부터 제공한다는 점(해외 사양에는 120마력 가솔린 엔진 버전도 있긴 하다!)-과 수동변속기 이상의 효율을 내는 MCP 변속기를 탑재했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이 둘의 조합은 푸조의 공식 수입원인 한불모터스가 먼저 국내에 소개했던 308/3008의 MCP 버전들을 통해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508 악티브가 더욱 특별한 것은 이 둘의 조합에다가 마이크로 하이브리드 기술까지 얹은 ‘e-HDi’시스템을 탑재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하이브리드는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비록 본격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아니지만 기존 차량보다 모터와 발전기, 배터리 등 전기 계통의 성능과 역할을 강화해 효율을 끌어올린다.
‘e-HDi’ 기술의 핵심은 엔진의 공회전 자동 제한 시스템에 있다. 정차 중에는 엔진을 일시 정지시키고 출발 시에 자동으로 시동이 다시 걸리도록 하는 이른바 ‘스톱&스타트(Stop & Start)’ 기술인데, e-HDi에는 그 중에서도 3세대 버전이 적용되어 있다. 정차 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연료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주므로, 시내 주행 시 약 15% 의 연비 향상 효과와 함께 평균 5g/km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푸조의 e-HDi에서는 기존의 스톱&스타트 시스템과 달리 i-StARS (Start Alternator Reversible system)가 배터리를 충전하는 발전기 역할과 엔진을 재 시동시키는 시동모터 역할을 겸한다. 2세대에 해당하는 i-StARS의 작동 토크는 이전 세대보다 70% 향상됐기 때문에, 정차 후 출발 때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0.4초 만에 재 시동이 가능해졌다. 이는, 사람이 직접 시동을 거는 것보다 2배 이상 빠를 뿐 아니라 기존의 유사 시스템보다도 약 30% 이상 빠른 것이다. 덕분에 재시동 때의 소음과 진동이 최소화되어 한결 나아진 정숙성과 주행감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더불어 주행 중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때 발전기가 배터리를 충전하도록 하는 제동 에너지 회생 장치는 연료 소모를 더욱 줄여준다. 이 시스템은 하이브리드 배터리 시스템과 연동되어 더욱 효율적이다. 하이브리드 배터리 시스템은 ‘이-부스터(e-Booster)’라 불리는 축전지를 배터리와 동시에 사용한다. 이-부스터는 재시동 때 배터리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아 원활한 시동성을 보장하고 과부하를 방지해 배터리 수명을 연장시킨다.
주행을 하다가 정차 때(508의 경우 감속 중 8km/h이하가 됐을 때) 시동이 저절로 꺼지고, 출발할 때 다시 켜지는 기능은 요즘 출시되는 신차들에서 낯설지 않다. 그런데, 508 악티브는 이 과정이 굉장히 부드럽다. 제어가 서투르면 위화감은 물론 멀미까지 유발할 수도 있는 기능인데, 잘 추스른 것을 보면 과연 이 기술을 일찌감치부터 숙성시켜온 회사답다. (푸조가 속한 PSA 푸조 시트로엥 그룹은 2004년에 양산차인 시트로엥 C3에 이 기술을 적용해 대중화의 시대를 열었다.)
클러치 페달이 없고 변속도 자동으로 이루어져 외형상 자동변속기인 MCP는 내부 구조상 수동변속기. 덕분에 508 악티브는 112마력 엔진으로도 크게 부족함 없는 달리기 성능을 보여준다. 제한된 영역이긴 하지만 적어도 시내에서 다른 차들을 따라 잡고 흐름을 유지하는 과정에서는 전혀 답답함을 느낄 수 없는 수준이었다. 1.6 HDi 디젤엔진은 1,750rpm에서 27.5kg*m(오버부스트 상태에서는 29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변속레버는 308/3008과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조작감도 –여전히 부드럽지만- 무게감을 더해 고급스러워진 인상을 준다. 밤이 되면 변속레버 밑단에도 조명이 켜지는 것은 조금 감동적이다. 스포츠모드 (변속)버튼은 주행 중 건드리기가 편치는 않지만 효과는 짭짤하다. 308과 달리 은색장식이 빠진 변속패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변속 위화감을 줄여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가속할 때 자동 변속이 이루어지는 시점은 4000~4750rpm으로, 각 단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4000rpm을 기준으로 보면 40, 70, 100, 130, 165km/h를 가리킨다. 일상적인 주행과 달리 풀 가속 때만큼은 길게 늘어지는 감이 역력하지만, 역시 차의 용도를 한정한다면 부족함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100km/h 정속 주행시의 회전수는 1,800rpm이고 정숙성은 나무랄 것 없다.
서스펜션은 앞쪽이 맥퍼슨, 뒤쪽이 멀티암의 구성이고, 타이어는 215 60 16 사이즈를 끼웠는데, 승차감과 핸들링 모두 만족스럽다. 기본 구성이 이 정도라면, 앞쪽에 더블 위시본을 넣은 508 GT의 실력이 더욱 기대된다. 구름 저항을 줄인 ‘미쉐린 에너지 세이버’ 타이어는 508 악티브의 효율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30km를 주행한 이번 시승에서 508 악티브는 14.2km/L의 평균연비를 기록했다. 이는 시승차에 남아있는 1,734km 구간의 누적 연비와도 일치하는 수치였다. 508 악티브의 공인연비는 22.6km/L로, (본격) 하이브리드카를 제외한 자동변속기 차량 중에서는 국내 최고다. 연료탱크 용량이 72리터라고 하니, 중간 주유 없이 달릴 수 있는 최대 거리가 1,627km에 달한다는 얘기.
물론 현실에서 연료탱크를 탈탈 털어 쓸 일은 없을 것이고, 공인연비만큼을 얻기도 쉽지 않겠지만, 이번 시승처럼 가혹조건에서의 연비가 14.2km/L라면 실생활에서 제대로 연비 운전을 해줄 경우 당연히 그 이상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계산하면, 연료탱크를 한번 가득 채웠을 때 적어도 1000km 정도씩은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