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새 영역인 케이블 TV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공중파만 있었던 시절에는 한 물간 연예인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밤무대로 가거나 했다. 하지만 수많은 케이블 채널이 생기면서 한물 간 연예인들도 방송과 광고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자동차 업계에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있다. 최근 들어 유명 브랜드의 카 디자이너들이 브릭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들어 카 디자이너들의 이동이 잦아졌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얼마만큼이나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2008년 즈음부터 디자이너들의 이적이 많아졌다. 디자이너 이적의 특징 중 하나는 브릭스로 가는 것이다. 명퇴든지 밀려서 퇴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명 브랜드에 근무했던 디자이너 중의 상당수가 중국 또는 인도 회사로 이적했다. 브릭스 법인으로 간 경우도 있다.
마쓰다를 보면 2008~2009년 사이 1년도 되지 않아 주력 디자이너가 회사를 떴다. 2008년 8월에 프란츠 본 홀츠하우젠이, 2009년 4월에는 로렌스 반 덴 액커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홀츠하우젠은 곧바로 테슬라로 이적했고 반 덴 액커는 르노로 갔다. 잘 알다시피 르노의 디자인은 패트릭 르퀘망이 꽉 잡고 있었지만 젊은 피인 반 덴 액커에서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했다.
제네시스 쿠페로 알려진 조엘 피아스코우스키는 현대에서 13년이나 재직했다. 하지만 현대 이후 회사를 두 번이나 바꿨다. GM에서 경력을 시작한 피아스코우스키는 현대 북미 법인 시절 제네시스 쿠페와 쏘나타, 제네시스, 투싼 디자인을 맡았고 작년 1월에 메르세데스-벤츠 북미 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4개월 후에는 포드 북미 외장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됐다. 피터 호버리가 볼보가 돌아가자 모레이 컬럼이 호버리의 자리를 메웠고, 컬럼의 자리는 피아스코우스키가 메웠다.
BMW에서 10년이나 근무했던 카림 하비브는 2009년 3월에 경쟁사인 벤츠 본사로 발탁됐다.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다시 BMW로 되돌아왔다. 이전에는 BMW와 벤츠 간에 인력 이동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최근 부품, 구매를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기업 문화가 다소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2년도 되지 않아 왔다가 다시 돌아갔으면 거의 산업 스파이 수준이 아니었을까. 레바논 태생인 하비브는 스위스의 디자인 아트 센터 수료 후 크리스 뱅글의 눈에 띄어 BMW에 입사했고 2007년 상하이 모터쇼에 나온 컨셉트 CS와 지나 라이트 컨셉트의 스타일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독자적으로 살 길을 찾은 디자이너도 있다. 베르토네와 피닌파리나를 거친 제이슨 카스트리오타는 뉴욕과 토리노에 디자인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몇몇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장사가 시원치 않았던지 작년 10월 사브로 들어갔다. 사브가 사업을 접으면 다시 백수가 될지도 모른다.
피에르 카스니텔 : 르노→타타
피에르 카스티넬은 르노에서만 20년이나 일한 베테랑이다. 2007년부터 타타에서 일했으며 2008년 3월에 공식적으로 직책을 맡았다. 르노 시절 가장 먼저 디자인을 맡았던 모델은 1988 메간 컨셉트였고 라구나 같은 승용차는 물론 트래픽과 마스터 등의 상용차를 주로 디자인했다. 상용차가 강세인 타타와 궁합이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르노삼성의 초기 SM5와 SM7, SM3, 르노 콜레오스, 산데로의 디자인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타타로 이적한지 2년 만에 사임했다. PSA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경쟁사로 가기 위해 타타로 우회한 게 아닐까 싶다. 20년이나 일했는데 르노 웹사이트에는 카스티넬의 사진 한 장 없다.
로한 사파라마두 : GM→마루티 스즈키
로한 사파라마두는 GM에서만 23년이나 일했다. 2008년 사임하고 이듬해 9월에 마루티 스즈키의 치프 디자이너가 됐다. 스리랑카 출신인 사파라마두는 CCS 졸업 후 GM에서 디자이너의 경력을 시작했고 뷰익과 캐딜락 브랜드의 내외장 디자인 작업을 맡아왔다. 그리고 나중에는 새턴과 오펠의 디자인에도 관여했다. 디자인 매니저로 승진한 2002년부터는 캐딜락과 사브 브랜드의 크로스오버 디자인을 총괄했고 초기 9-7X의 디자인도 맡았었다.
크리스토퍼 스벤손 : 포드 아시아 퍼시픽 & 아프리카
크리스토퍼 스벤손은 작년 9월 포드 아시아 퍼시픽 & 아프리카 디자인 디렉터가 됐다. 스캇 스트롱의 뒤를 이어 받아 포드 아시아와 아프리카 스튜디오의 디자인을 총괄하게 된다. 이 스튜디오는 호주에 위치해 있지만 글로벌 모델의 디자인에도 참여한다.
명문인 영국 RAC를 졸업한 스벤손은 1992년 포드에 입사했으며 쾰른 스튜디오의 외장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했다. 초대 카와 푸마, 쿠거의 작업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유럽 커머셜 비클 디비전의 치프 디자이너를 지냈다. 유럽 법인 시절에는 B 플랫폼의 외장 디자인을 총괄했다.
홀츠 웨어 : GM-PATAC
홀트 웨어는 작년 9월 GM-PATAC(Pan Asia Technical Automotive Center)의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됐다. 웨어는 독일로 자리를 옮긴 프리드헬름 엥글러의 뒤를 이어 GM-PATAC의 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다. 상하이에 위치한 GM-PATAC에는 130명 이상의 디자인 팀이 근무하고 있으며 점차 인력이 늘어나고 있다.
웨어는 1993년 GM의 뷰익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의 경력을 시작했다. 이듬해 캐딜락 디자인 스튜디오로 발령이 났으며 이후 1998 STS, 2000 DTS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3년 후에는 미시건의 GM 어드밴스 디자인의 매니저가 됐다. 2000~2003년 사이에는 허머, 이후 입실론 디자인 매니저 시절에는 2008 말리부와 2010 뷰익 라크로스의 디자인을 맡았다.
댄 다란코우 : GM→CH-오토
댄 다란코우는 최근까지 GM의 디자인 매니저를 지냈다. 2008년 베이징 모터쇼에 나온 뷰익 인빅타 컨셉트가 그의 디자인이며 마지막으로 맡았던 모델은 EN-V 컨셉트이다. 현재는 중국 CH-오토의 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다. CH-오토는 중국의 디자인 스튜디오로 다수의 중국 회사와 관계를 맺고 있다.
캘리포니아 태생인 다란코우는 아트 센터 칼리지를 졸업 후 이탈리아 IDEA에서 근무했다. 당시 IDEA 디자인 팀 보스가 현 폭스바겐의 발터 드 실바이다. 척 조던의 눈에 띄면서 미시건의 GM 테크 센터로 자리를 옮겼고 일본 지사에서 3년을 근무하면서 이스즈와 스즈키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스즈키 스위프트와 트랙커, 메트로, 이스즈 스톰의 실내 디자인을 맡았고 오펠로 옮기면서는 아스트라와 코르사에도 참여했다.
토니 윌리엄스-케니 : MG-로버→SAIC
토니 윌리엄스-케니는 1998년 영국 코벤트리 대학 졸업 이후 독일 미쓰비시 유럽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 경력을 시작했다. 2000년 MG 로버 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SAIC 영국 법인 디자인 디렉터가 됐다. 여기서 능력을 인정받아 올해 초에는 SAIC 본사의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됐다. 최근 나온 MG3와 MG6, MG 제로 컨셉트가 그의 디자인이다. SAIC 영국 스튜디오에 있던 켄 마는 경쟁사인 창안으로 이적했다.
안드레아스 듀펠 : 메르세데스→그레이트 월
안드레아스 듀펠은 메르세데스 출신의 베테랑 디자이너다. 아우디에서 시작해 메르세데스, 프라이트라이너, 영국 SAIC를 거쳐 그레이트 월까지 진출해 있다. 듀펠은 초대 아우디 A3와 V8 DTM, A4 아반트를 디자인했으며 메르세데스 시절에는 E 클래스(W210), SL(R230), 마이바흐, SLK, CLK를 맡았다.
메르세데스 시절 여러 차종을 맡았지만 ML, GL 같은 SUV 디자인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SUV로 먹고 사는 그레이트 월로서는 적절한 영입이라고 할 수 있다. 듀펠은 올해 7월부터 그레이트 월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디자인 팀의 인원은 약 100명이며 그레이트 월의 새 디자인 테마를 개발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이다.
스티브 마틴 : 볼보→아브토바즈
러시아 1위의 메이커인 아브토바즈는 라다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르노와 손을 잡았다. 지분을 내주는 대신 선진 플랫폼과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계획이다. 대신 디자인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현 라다 브랜드의 디자인은 완전 구식이다. 볼보 출신의 스티브 마틴을 영입한 이유다.
스티브 마틴은 내달 1일부터 라다 브랜드의 승용차 디자인을 총괄하게 된다. 멋진 디자인을 선보였던 마틴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마티은 17년간의 메르세데스 시절 비전 GST 컨셉트와 초대 A 클래스, SL 등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었다. 피터 호버리가 포드로 자리를 옮기면서 볼보의 디자인 디렉터를 맡았고 호버리가 복귀하면서 다시 자리를 잃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