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무라노는 강력하지만 편한 SUV다. 키가 큰 SUV로서 고속 안정성도 탁월하다. 이 정도면 가격도 괜찮다. 대신 3.5리터 가솔린 엔진의 연비는 감안해야 한다.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이달 초 베네치아에 안식을 취하러 갔다가 무라노를 봤다. 정확히 말하면 본 건 아니고 베네치아에 무라노 섬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베네치아에 가면 빠질 수 없는 관광 명소 투톱이 무라노, 부라노 섬이다. 닛산 무라노의 차명도 바로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에서 빌려왔다. 이러다 무라노의 형제차 부라노도 나올 기세. 난 뭐 혼자서 가긴 뭐해서그냥 패스하긴 했지만 하여튼 시승기에서 중요한 건 아니다.
듣자니 무라노 섬은 그렇게 예쁘단다. 유리 공예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건물들이 대단히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닛산 무라노는 예쁜 것 보다는 씩씩하게 생겼다. 날렵한 그릴이나 헤드램프가 뭔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도 풍긴다. 얼굴이나 실루엣이 다른 차와 닮지 않은 것도 괜찮다.
요즘은 패밀리룩이 유행이기 때문에 무라노에서도 로그의 모습이 묻어난다. 확실히 자동차는 시기나 환경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무라노를 처음 봤을 때는 로그를 본 이후라 차도 크고 디자인이 고급스럽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그만큼은 아니다. 처음보다는 평범한 디자인으로 느껴진다. 2012년형은 그릴과 스포일러, 테일램프 정도만이 달라졌다. LED 테일램프는 370Z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인데 볼수록 괜찮아 보인다.
18인치 휠도 더블 스포크 타입으로 바뀌었다. 타이어는 235/65R/18 사이즈의 브리지스톤 듀엘러 H/T이다. 접지력 위주의 타이어는 아니고 일반적인 OEM에 가까운 트레드 패턴을 갖고 있다. 엔진을 생각하면 더 낮은 편평비의 타이어를 끼워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무라노는 2002년에 데뷔한 닛산의 중형 SUV이다. 2007년 하반기까지 미국에서 팔린 닛산의 유일한 SUV였다. 그러다 이듬해에 로그가 데뷔하면서 동생이 생겼다. 사이즈로 본다면 엑스테라와 패스파인더 사이인데, 가격은 패스파인더보다 조금 높다. 2003년에는 북미 올해의 트럭을 수상하기도 했다.
실내는 딱 무라노에 기대할 만한 수준이다. 특별히 고급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싼 티가 나는 것도 아니다. 대중적인 중형 SUV와 가격을 생각할 때 이 정도면 괜찮다고 본다. 오히려 인피니티스러운 센터페시아 디자인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상단에 있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내비게이션에는 한글 인터페이스가 새롭게 적용됐다. 한글이 적용된 것도 상당한 장점이다. 내비게이션의 화질도 좋은 편이지만 맑은 날에는 반사가 될 법하다. 스크린 각도도 변경됐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티는 안 난다. 바로 아래에 위치한 계단식 디자인의 컨트롤러 및 메뉴 버튼은 보기에는 근사해 보이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만지작할 만한 꺼리는 별로 없다. 이것도 인티니티랑 비슷하다.
오디오나 공조장치도 디자인을 단순하게 처리해 사용의 편의성을 높였다. 오디오의 경우 기존에는 6CD 체인저였지만 2012년형에는 1CD와 하드 디스크 내장 타입으로 바뀌었다. 요즘 CD 체인저를 잘 안 쓰는 경향이기 때문에 하드 디스크 쪽이 훨씬 유용해 보인다. 거기다 센터 콘솔 박스에는 USB 단자도 마련된다.
가죽으로 감싼 스티어링 휠은 그립이 좋다. SUV라서 지름이 약간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포크에 마련된 버튼은 이전은 물론 다른 닛산 차와 같아서 쉽게 적응이 가능하다. 스티어링 휠의 조절이 전동식인 것은 의외이다. 계기판은 속도계가 중앙에 위치한 심플한 디자인이다. 다른 신차와 비교 시 계기판 내 액정이 좀 작은 감이 있고 폰트도 예쁘지는 않다.
가죽 시트는 크고 넉넉하다. 시트가 전동식이긴 하지만 열선 기능을 제외한다면 평범하다. 대중적인 SUV라서 그렇긴 하겠지만 몸을 잡아주는 느낌이 탁월하게 좋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허벅지나 등이 상당히 편하다.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긴 한데 더 비싼 차의 시트도 몸에 좀 안 맞을 때가 있다.
2열 공간은 충분히 넓다. 성인이 앉아도 무릎 공간이 남는다. 듀얼 선루프가 있어 2열 승객도 괜찮은 개방감을 맛볼 수 있다. 무라노의 장점이라면 2열 시트를 접었을 때 전동식으로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스티어링 컬럼 왼편에 위치한 버튼으로 2열 시트를 원상 복귀 시킬 수 있다. 물론 트렁크에서 수동으로도 가능하다.
흥미로운 것은 전동식 해치는 닫힐 때 ‘삐 삐’하고 경고음이 발생한다. SUV나 왜건에 전동식 해치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경고음까지 발생하는 차는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런 반면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음에도 경고음이 울리지 않는다. 트렁크에는 경고음이 울리는데 안전벨트 미착용에는 안 울리는 게 아이러니하다. 시승차의 문제이면 모르겠는데 원래 그렇다면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엔진과 파워트레인은 이전과 동일하다. 3.5리터 VQ 엔진은 260마력, 34..0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며 변속기는 X트로닉 CVT가 매칭된다. 요즘은 연식 변경 모델이라도 엔진의 업데이트가 빠르게 일어나는 편인데 일본 메이커는 이런 면에서 부족하다.
가끔 무라노 같은 가솔린 엔진의 SUV를 타면 디젤과 다른 맛이 있다. 디젤 탈 때는 가솔린만큼 조용하다고 하지만 막상 가솔린 SUV를 타면 공회전에서 더 조용하긴 하다. 거기다 진동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것도 장점이다.
무라노는 잘 나간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속도가 쭉쭉 붙는 전형적인 VQ 엔진의 특성을 보인다. 저속 토크도 좋지만 전영역대에서 고르게 힘이 발휘돼 운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 260마력이라는 수치에 걸 맞는 동력 성능이다. 어렵지 않게 100km/h를 돌파하고 200km/h 부근까지도 멈칫거림 없이 속도가 올라간다. 확실히 엔진은 닛산의 주요 경쟁력 중 하나이다.
비가 오는 날이라 끝까지 달려보진 못했지만 수동 모드의 5단으로 190km/h까지는 쉽게 가속된다. 여기까지 가속된 느낌으로 봐선 이 이상의 속도도 충분히 가능할 듯싶다. X트로닉은 수동 모드 시 좀 더 스포티해지고 당연히 변속 충격도 없다. 3.5리터 엔진에 CVT가 적용되는 예가 드문데 닛산은 어렵지 않게 해낸다. 무라노를 보면 닛산은 CVT에서도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다.
엔진을 제외한다면 주행 성능에서는 고속 주행 시 안정성이 매우 좋은 게 눈에 띈다. 고속으로 올라가면 생각보다는 롤이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세가 매우 안정적이다. 비까지 왔단 것을 감안하면 무라노의 고속 안정성은 아주 좋다고 할 수 있다. 편하게 빠른 속도로 직진할 수 있다. 유럽제 SUV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
하체는 적당히 단단하다. 거친 노면에서는 충격이 크다고 느낄 수 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스포티하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그래도 어지간한 충격은 잘 걸러준다. 핸들링은 생긴 대로다. SUV로서는 꽤나 날렵하게 움직인다. 전자 장비가 잘 제어를 해서 언더스티어를 미연에 방지하고 타이어의 그립이 좋은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브레이크는 초기 답력이 예민해 여성 운전자도 편하게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무라노는 대중적인 SUV답게 두루두루 무난하다. 가격대에 걸 맞는 사이즈와 편의 장비, 실내 공간을 갖췄다. 동력 성능도 수치에 기대할 만큼 괜찮다. 5,190만 원이라는 가격도 무라노의 차체 사이즈와 엔진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이다. 단지 3.5리터에서 오는 연비의 압박이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