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완성, 기아 뉴 쏘렌토 R이 등장했다. 지난 4월 신형 싼타페가 등장한 지 불과 3개월 여 만에 형제차이자 실질적으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뉴 쏘렌토 R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싼타페는 완전한 풀 체인지 모델이고, 뉴 쏘렌토 R은 부분 변경 모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뉴 쏘렌토 R의 변화의 폭이다. 2002년 2월 처음 등장한 쏘렌토는 2009년 4월 2세대로 진화하면서 기존의 프레임 바디를 버리고, 모노코크 바디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완전히 새롭게 개발되었다. 그리고 현대 기아가 야심 차게 개발한 R 엔진을 장착하면서 이름도 쏘렌도 R로 바꿨다. 그러고 나서 이제 3년, 분명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등장할 때다. 그래서 이번에 등장한 뉴쏘렌토 R을 보면 외관에서 큰 변화가 없어 페이스리프트 모델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아 측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뉴 쏘렌토 R에 ‘세 번째 완성’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에서 신차 수준으로 개발한 차라는 것이다. 현대가 3세대 싼타페를 위해 개발한 신규 플랫폼을 적용하면서 쏘렌토 R은 2세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 수준이 아닌, 아예 3세대 신차에 준하는 내부 변화를 적용한 것이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개발하면서 플랫폼을 변경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인데, 싼타페의 신규 플랫폼을 보다 폭 넓게 활용하는 차원에서 뉴 쏘렌토 R도 플랫폼을 통일한 듯하다. 어쨌든 고객의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지불 없이 보다 새로운 차를 구입할 수 있다면 손해 볼 것은 없다. 하지만 이 후에 등장할 신차가 어떤 포지셔닝을 가지게 될지가 궁금해 진다.
세 번째 완성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뉴 쏘렌토 R의 외관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페이스리프트 수준이니 당연하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테두리 크롬이 얇아지면서 좀 더 최신 패릴리 룩에 가깝게 당당해졌다. 더 선명한 인상의 헤드램프에는 LED가 적용되고, 코너링 램프도 넣었다. 그릴 아래 가로로 뚫린 공기흡입구는 범퍼 중앙에 위치하면서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모델에서 보던 것을 닮았다. 가장 크게 변한 안개등은 범퍼 좌우에 세로로 배치해 참신한 인상을 더한다. 이 세로 배치 램프는 뒷 범퍼 반사판에도 적용되었다.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는 얇아지고, ‘ㄱ’자로 바뀌면서 세련돼 졌다.
차체 크기는 보통 페이스리프트 때 범퍼 모양이 바뀌거나 해서 길이라도 조금 변하기 마련인데, 4,685 x 1,885 x 1,700mm와 휠베이스 2,700mm가 전고 10mm 낮아진 것 외엔 변화가 없다. 신규 플랫폼을 적용했음에도 휠베이스도 동일하다. 이런 점에서 신규 플랫폼이라는 것이 완전히 신차를 개발하기 위한 플랫폼이라기 보다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플랫폼 통합의 개념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휠베이스 2,700mm는 아반떼와 동일하다.
실내는 디자인이 많이 바뀐 편이다. 직선이 강조됐던 이전 모습에서 곡선이 보강된 모습으로 바뀌면서 훨씬 부드러워졌고, 패널이나 버튼의 디자인이나 질감, 마무리 등 다양한 방면에서 보다 고급스러워졌다. 함께 시승한 기자는 현대스러워졌다고 표현했다. 실내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계기판에는 가운데 계기에 7인치 TFT LCD를 적용해 속도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그래픽으로 전달할 수 있게 했다. 좌우의 클러스터와 질감이나 선명도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고, 그래픽이 깔끔한 편이다. 네비게이션 등의 정보가 중앙에 표시될 경우에는 가운데 바늘의 중심이 사리지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시스템 점검, 연료 경고, 도어 열림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 및 경고를 음성으로 알려 주는 기능을 더했다. 놓치기 쉬운 조그만 경고등에 비하면 정보 전달력이 더 높을 것은 당연하다.
센터 페시아 상단에는 최근 트랜드와 어울리지 않는 디지털 시계가 자리하고 있다. 다소 촌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또 막상 주행 중 시간을 알고 싶을 때면 당연히 있을 법한 자리에 시계가 있어 줘서 고맙기도 하다. 센터 페시아는 어쨌든 이전에 비해 부드럽고 깔끔하게 다듬어 졌으며, 사용하기 편리하다.
변속기 레버는 기아차에서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츠 타입이다. 그 아래 주차 조향 보조 시스템과 액티브 에코 버튼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외에 첨단 기능들에 대한 작동 버튼은 스티어링 칼럼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K9에 이어 후측방 경보 시스템이 SUV 최초로 적용되었고, 차선 이탈 경보 시스템도 갖췄다. 그리고 4WD 모델의 경우 내리막 주행보조 장치인 HDC와 4WD LOCK을 갖추어 험로 주파력을 높여준다. 스티어링 휠에는 히팅 기능을 더했다.
후측방 경보 시스템은 주행 중 후측방의 사각 지대에 차량이 있거나, 고속으로 접근하는 차량이 있을 경우, 볼보의 BLIS 처럼 사이드 미러에 부착된 조그만 경보등을 점등해 주는데, 이 때 방향 지시등을 켜서 차선 변경을 시도할 경우에는 경보등을 점멸해 주고, 알람도 울려서 강력한 경고를 보내 사고의 위험을 알려준다.
갈색 시트에는 흰색 스티치를 넣었고, 뒷좌석은 등받이 각도 조절이 가능하다. 3열 시트는 5인승을 기본으로 함에 따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시승차에는 앞 좌석에 냉방 시트까지 갖춰져 있었다.
신 플랫폼을 적용했다지만, 파워트레인은 동일하다. 시승차는 두 가지 R 엔진 중 성능이 더 뛰어난 R 2.2 엔진을 얹고 네바퀴를 굴리는 R 2.2 4WD 리미티드 스페셜에 풀옵션이다. 2.2리터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200마력/3,800rpm과 최대토크 44.5kg.m/1,800~2,500rpm을 발휘한다. 변속기는 자동 6단이며, 연비는 구 기준으로는 16.1km/L이며 신 복합연비로는 13.8km/L를 달성했다. 기존의 13.2km/L에 비해 향상된 연비다.
판매가 더 많이 이루어지는 R 2.0에 비하면 가속력은 한결 여유 있다. 하지만 파워풀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변속은 35, 60, 90, 130, 175km/h에서 각각 이루어진다. 덩치를 생각할 때 44.5kg.m의 토크는 두터운 토크감을 느끼기에는 조금 모자라나 보다. 50kg.m 이상은 나와줘야 흔히 말하는 토크발이 좀 살 것 같다. 어느 한 포인트에서 두터운 토크감을 느끼기는 힘들지만 비교적 꾸준하게 가속하는 맛은 좋은 편이다. 전반적으로 연비를 더 많이 고려한 세팅으로 보인다.
수동 모드에서는 여전히 회전수 보정 기능은 없다. 수동모드로 전환할 때 스포츠모드가 되지도 않는다.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디젤 차량에는 스포츠모드가 상당히 매력적인데 말이다.
반면 기대이상으로 만족스러운 부분은 주행 안정감이다. 일반적인 주행에서 형제차인 싼타페보다 약간 더 단단하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가벼운 충격이 살짝 청량감을 더하는 수준으로 기분 좋은 단단함이다. 그리고, 단단한 서스펜션과 함께 고속에서 유격이 적고 조작감이 적당히 무거워지는 스티어링 덕분에 안정감은 잘 유지된다. 싼타페를 포함한 현대차 모델들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했었던 고속 스티어링 유격 문제가 쏘렌토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다행이다. 기자가 무용론을 주장했던 플렉스 스티어가 적용되었지만 이 정도로 스티어링 안정감이 확보된다면, 상황에 따라서, 혹은 운전자의 선호에 따라서 플렉스 스티어는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뉴 쏘렌토 R은 후측방 경보 시스템 등 새롭게 도입된 첨단 안전 장비와 기대 이상의 주행 안정성이 충분히 가치상승을 주도하고, 이전보다 확연히 향상된 인테리어 품질 또한 높은 점수를 얻을 만하다. 반면 싼타페 대비 좀 더 야성적이었던 이미지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좀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변화다. 가격 책정에 있어서도 성능 및 편의 장비의 대폭적인 보강에 반해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였고, 일부 트림의 경우 실제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써 수익률 감소까지 감수했다고 한다. 이런 변화들이 실제 고객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결과로 귀결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