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서킷(인제스피디움)까지 굽이굽이 이어진, 나무가 우거진 2차선 도로는 일행이 탄 관광버스로 달리기엔 너무 좁아 보였다. 휘청휘청 거리며 중앙선을 넘고 플라스틱 분리대까지 사정없이 짓뭉개는 버스 속에서 약간의 멀미를 느끼며 ‘아~ 이런 도로는 미니를 타고 달리면 재미있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때 떠올린 미니를 콕 집어 말하자면 ‘미니 쿠퍼 로드스터’였다. 스테로이드를 맞은 듯 벌겋게 달아오른, 화끈하지만 불편해 보이는 JCW가 아니었단 말이다.
허나, 이날 인제에 간 것은 새로 나온 JCW들을 타기 위해서였다. JCW버전의 미니는 국내에서도 이미 몇 차롄가 출시된 적이 있다. 올해 나온 JCW들은 그중 최신판이랄 수 있다. 3월말 서울모터쇼 때 JCW 컨트리맨이 출시됐고, 이번 인제에서의 트랙데이 행사(6월 14~15일)를 통해 쿠페와 해치백이 공식 출시됐다.
이전에 국내 판매된 JCW로는 해치백, 클럽맨, 컨버터블이 있었는데, 해외 정식버전(?)과 달리 일반 쿠퍼S에 JCW 튜닝 킷만 적용한 차들이라 성능 수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었다. 원래의 ‘미니 JCW’는 수동변속기 모델뿐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본사차원에서 엔진을 업데이트하여 자동변속기 모델을 추가했고, 비로소 제대로(?) 된 JCW들이 국내에 상륙하게 됐다. 물론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쿠페, 컨트리맨 모델이 JCW라인업에 추가된 것도 올 시즌의 특징이다.
JCW(존 쿠퍼 웍스)는 미니의 모터스포츠 혈통을 부각시킨 고성능 차 브랜드. 가뜩이나 작고 불편하다는 푸념을 듣는 미니를 원메이크 경주인 ‘미니 챌린지’의 노하우로 튜닝, 서스펜션을 더 단단하게 죄고, 엔진을 쥐어짜고, 배기구를 넓혀 시끄럽게 만드는 등 일반 도로에서는 열정이 있어야 눈감아 줄 수 있는 차로 바꿔 놨다. 역으로, 서킷에서는 물 만난 고기가 될 수 있는 차란 얘기다. 평탄한 직선구간이 짧은 대신 ‘고저차’라는 흥미로운 요소를 가진 인제서킷에서의 트랙데이가 이를 잘 보여줬다.
참가자를 태우고 뺑뺑이를 돌고, 다시 다음 참가자를 태우고 뺑뺑이 돌기를 반복하는 트랙의 미니들은 1.6리터 4기통 가솔린 트윈스크롤 터보 엔진을 탑재했다. 기본적으로는 쿠퍼S의 것과 같은 심장이나, 27마력 더 높은 211마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담력을 키웠다. 최대토크도 2kg·m 높은 26.5kg·m로, 1,750~5,500rpm에서 나온다. 오버부스트 때는 28.6kg·m에 달한다.
오버부스트는 변속기가 2단 이상일 때, 2,000~5,100rpm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작동하며, 최대 20초 동안 유지된다.
이전 미니JCW는 오버부스트 압력이 2.3바였으나 이번엔 자동변속기 채용과 함께 신뢰성 확보를 위해 쿠페, 해치백은 2.15바, 컨트리맨은 2.25바로 낮췄다고 한다. JCW 컨트리맨은 218마력, 28.6kg·m가 기본이고 오버부스트 때 30.6kg·m(2,100~4,500rpm)를 발휘하는 등, 더 작고 가벼운 형제들에 딸리지 않는 동력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엔진을 더 쥐어짠 모습이다.
미니 JCW 해치백
일반쿠퍼S 대비 외관상의 변화는 JCW 에어로 다이내믹 킷과 전용 휠, 뱃지 등 기존 공식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10mm 낮춰진 스포츠 서스펜션과 구경이 큰 스포츠 배기구도 일반 미니 쿠퍼S와의 차이로 들 수 있겠다. 아울러 사이드미러와 지붕 색을 빨강 아니면 검정으로 통일하고 보닛에는 줄무늬를 둘렀다.
실내도 빨간색 대시보드 장식, 검정 바탕에 빨강 테두리를 친 시트, 빨간색 스티치의 스포츠 스티어링 휠과 변속레버 부츠 등 ‘깔 맞춤’을 한 모습이다. 계기판은 어두운색으로 처리했다. 모르고 탔더라도 일반 미니와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눈치 챌 수 있다. 더 스포티하다는 것뿐 아니라 고급스러움도 느껴진다.
“대게 1억 원이 넘는 고급차에만 적용된다.”는 관계자 설명이 곁들여진 하만 카돈 오디오도 기본 사양으로 갖췄다. 이것으로 JCW의 요란스러움이 가려질진 모르겠지만 시각적으로나마 차별화된 기분을 즐길 순 있겠다.
일반 쿠퍼S에도 있는 스포츠 버튼은 JCW에서 더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가속페달이 예민해지고 운전대가 묵직해지며 변속기는 레버만 S로 옮겼을 때보다 더 빠릿해진다. 소리까지 더 과격해진다. 특히 가속페달을 급히 뗄 때 미처 연소되지 못한 혼합기가 배기 라인에서 폭발하며 들려주는 ‘퍼퍼펑펑~’ 하는 소리가 재미를 더한다.
미니 JCW 쿠페
트랙주행에 가장 잘 어울리는 JCW는 셋 중에서도 역시 쿠페라 할 수 있다. 빨간 철모를 눌러쓴 듯한 모습의 이 차는 운전석에 올랐을 때도 눕혀진 앞 유리와 낮고 동그랗게 감싸는 천장 등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좌석을 없앤 뒷부분에는 롤케이지라도 얹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보기와 달리 쿠페는 해치백보다 무겁지만, 낮고 빠르다. 스포츠모드에서의 가속페달 조작이 약간 까다롭고 변속기까지 고저차에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라 패들을 적극적으로 써 줄 필요가 있었지만 고만고만한 차들끼리 줄지어 달리는 이번 그룹 주행에서는 순정 상태로도 충분히 좋았다. 도로 요철에서는 그렇게 단단하고 시끌벅적하던 서스펜션이 트랙에서는 말랑하다 못해 편안하게 느껴졌다.
코너에선 조작에 따라 뒤쪽이 조금씩 날리면서 쾌감을 선사했지만 웬만해선 안정된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체험주행을 맡은 전문 드라이버도 강력하고 질긴 제동 시스템 등 이 차의 밸런스를 높게 평가했다. (선수의 관점에서 보기에) 절대적인 엔진 성능 수치가 약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유일한 불만은 강한 횡G에서 몸을 제대로 지탱해주지 못하는 시트라고 했다. 물론 JCW에는 이런 이들을 위한 옵션 품목들도 마련되어 있다.
미니 JCW 컨트리맨
컨트리맨은 JCW(혹은 미니)에 가장 안 어울릴 뿐 아니라 가장 못생긴 차다. 하지만 트랙에서 가장 재미있게 탈 수 있는 차이기도 했다. 쿠페가 시종일관 긴장한 채 본격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차라면 컨트리맨은 조금 느슨하게, 차를 믿고 즐길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앞서가는 쿠페를 따라 잡는 데는 별다른 무리가 없었다. 시초를 다투는 경주가 아니고 추월도 허용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얘기겠지만 고저차와 코너에 의한 차체의 출렁임과 쏠림, 바퀴의 눌림 등 여러 움직임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점이 우선 친숙하게 느껴졌다.
무게중심이 높고 무거운 것은 단점이지만 유일하게 앞바퀴 굴림이 아닌 4륜구동 방식이라는 무기를 가지기도 했다. 컨트리맨의 ‘ALL4’는 애초에 오프로드 주행이 아니라 온로드에서 동력 성능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장치라는 게 개발자들의 얘기였고, 그렇게 보자면 쿠퍼S와 쿠퍼SD, 그리고 JCW버전에게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50:50, 속도와 상황에 따라 최대 0:100, 100:0까지 가변된다고 하는 이 시스템은 힘이 넘치는 앞바퀴 굴림 차에서 나타날 수 있는 토크스티어를 차단함은 물론 언더스티어까지 최소화시켜준다. 쿠페, 해치백처럼 뒤를 날리며 타는 재미는 덜할지언정 상대적으로 묵직한 차체를 안심하고 몰아붙일 수 있는 안정감과 그립을 제공한다. 주행안정장치를 끈 상태에서도 겁날게 없었다. 다만 엔진을 더 쥐어짜놓은 탓인지 시승차의 상태 탓인지 고회전에서의 음색은 상대적으로 거슬렸다.
사실 시승차들의 상태나 타이어 등이 제각각이었지만 이를 무시한 채 종합적으로 봤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차는 JCW 해치백이었고, 필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것을 주변 참가자들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만 기존에도 있었던 해치백을 셋 중 최고로 꼽기엔 다소 김이 새는 것 같고, 쿠페와 컨트리맨도 각자의 매력이 있어 하나만 고르라면 힘들 것 같다.
그래서일까, 트랙을 떠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뻐근한 팔을 주무르며 생각난 차는 다시 미니 쿠퍼 로드스터. JCW 모델들은 같은 차종의 쿠퍼S에 비해 대략 500만원씩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어 가장 저렴한 해치백이 4,500만원(가장 비싼 컨트리맨은 6,110만 원)에 이르는데, 이 값이면 쿠퍼S 로드스터를 살 수 있고, 쿠퍼 로드스터에 옵션을 넣을 수도 있겠다. 날 더운데 왠 오픈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민병권RPM9기자 bk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