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신형 그랜저를 내놨다. 어느덧 6세대로 진화한 그랜저는 현대차 고급차 계보를 잇는 모델이다.
1986년 처음 탄생한 현대차 그랜저는 국산 대형차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각진 외형을 빗대어 ‘각 그랜저’라는 별칭이 붙은 이 차는 당대 최고급차였다.
초대 그랜저의 명성은 2세대 ‘뉴 그랜저’로 이어졌다. 한층 부드러워진 스타일링에 부드러운 승차감과 넓은 실내공간으로 호평을 받았다.
1998년에 나온 3세대 그랜저 XG는 콘셉트에 변화를 줬다. 현대차 최고급차의 자리를 99년 에쿠스(LZ)에 물려주기 위해 날렵한 스타일로 바뀌었다.
2005년에 데뷔한 4세대 그랜저(TG)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랜저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은 봉긋하게 솟아오른 리어 펜더와 좌우로 길게 이어진 리어 테일램프를 처음 시도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5세대 그랜저(HG)는 2011년 데뷔했다. 당시로는 드물었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적용하는 등 첨단 장비가 돋보였고, 쏘나타에서 업그레이드하는 고객이 많이 넘어온 덕분에 판매량도 크게 증가했다.
이번에 나온 신형 그랜저(IG)는 또 한 번의 변화를 줬다. 웅장함을 강조했던 구형과 달리 스포티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강조했다. 다만 앞뒤 모습은 다른 차의 디자인이 살짝 섞여 보여 아쉽다. 특히 뒷모습은 닷지 차저를 떠올리게 한다.
외장 색상은 9가지가 준비되는데, 그동안 준대형차에서 잘 쓰지 않던 레드, 블루 등 원색의 사용이 눈에 띈다. 여기에 연녹색 같은 ‘카키 메탈’이라는 독특한 색상도 추가됐다.
인테리어 소재는 상당히 업그레이드 됐다. 가죽 시트는 제네시스 부럽지 않게 부드럽고 착좌감이 좋다. 도어트림은 인조가죽으로 감쌌고, 알루미늄 가니시로 포인트를 줬다.
대시보드는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것은 볼록 솟은 센터페시아의 모니터 디자인이다. 비대칭으로 설계된 특별한 이유를 읽을 수 없을뿐더러, 원형 아날로그시계의 배치가 생뚱맞다. 또한 모니터 테두리가 두꺼워 투박한 느낌이 든다. BMW나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우 얇은 케이스를 적용한 것을 떠올려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엔진은 2.4, 3.0 가솔린과 2.2 디젤, LPi 등 4종류가 얹힌다. 25일에 열린 시승회에는 3.0 가솔린 모델이 준비됐다. 3.0 엔진은 구형 그랜저에 얹었던 V6 람다 엔진을 개선한 것인데, 270마력이던 최고출력이 266마력으로 줄었다. “고회전보다 실용영역에서 응답성을 강조했다”는 게 현대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3.0 모델에만 적용한 8단 자동변속기는 현대차그룹에서 자체 개발한 것이다. 기아차 신형 K7과 현대차 아슬란에 이어 세 번째 탑재다. 3.0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은 응답성과 변속감에서는 꽤 괜찮은 느낌을 준다. 특히 3단에서 시속 120㎞까지 커버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변속기의 허용 범위가 넓고 재빠른 게 인상적이다. 신형 K7에서 이슈가 됐던 변속 충격이 이번에는 해결됐길 기대한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주행안정성이다. 갈수록 실력이 향상되는 현대차의 서스펜션 설계 능력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매우 짧아 좌우로 쏠리는 롤링이나 앞뒤로 흔들리는 피칭 현상을 크게 억제했다. 승차감에 비중을 둔 아슬란과 차이 나는 부분이다.
다만 드라이브 모드 버튼의 위치는 아쉽다. 이 버튼은 주행모드를 에코, 스포츠, 노멀, 스마트 등 4가지로 바꿀 수 있는데, 변속기 옆에 있다 보니 조작할 때 내려다보거나 계기판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변속기 옆 대신에 스티어링 휠에 붙어 있다면 시선이동이 적어질 것이고, 굳이 계기판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변속기 옆에 장착해야 한다면 벤츠나 BMW처럼 손가락으로 밀어서 조작하는 방식을 쓰면 훨씬 더 직관적이다.
현대차는 올해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 완성차업체 중에 전년 대비 판매량 감소가 가장 크다.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신형 그랜저다. 출발은 좋다. 사전예약대수에서 역대 기록을 갱신했고, 완성도도 나쁘지 않다.
남은 과제는 떨어지고 있는 신뢰감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YF 쏘나타와 K5 등에서 문제가 된 쎄타2 2.4 GDI 엔진은 개선되어 신형 그랜저에 얹히는데, 시승회에 선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 문제가 나타날 시점이 아니다. 구형 쎄타2 엔진에 대해서도 문제를 인정한 게 아니라 보증기간을 연장한 정도여서 고객들의 눈높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신형 그랜저에서 또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점유율은 더 추락할지 모른다. 현대차의 분발을 기대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