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 때 ‘F1’ ‘고성능’ ‘강한 개성’ 같은 키워드였다. 그러나 일본의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혼다는 평범하게 안주하는 것을 택했다. 그 결과 80~90년대의 멋진 차들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됐다.
혼다코리아의 리즈 시절은 2008년이었다. 어코드와 CR-V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시기다. 그런데 이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선두권에 올라선 브랜드는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그 위치를 유지하는데, 혼다는 2008년 이후 상위권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올해 1~3월 판매에서도 전체 브랜드 중 11위에 머물며 전년도 7위에서 네 계단이나 떨어졌다.
최근 혼다가 선보인 신차는 어코드 하이브리드다. 미국 시장에 진작 선보였던 이 차가 한국에는 왜 이리 늦게 나왔을까. 혼다코리아가 그동안 한국에 선보였던 하이브리드카를 되돌아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혼다가 토요타 프리우스에 맞서 내놨던 차는 인사이트다. 프리우스가 직병렬 방식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연비에서 돋보였던 반면, 인사이트는 병렬 방식이어서 연비가 특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 가격이 싼 것도 아니어서 소비자들은 인사이트를 외면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하이브리드 스포츠 쿠페를 표방하며 선보였던 CR-Z 역시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았다. 외관은 스포츠 쿠페인데 내용물은 하이브리드카였던 이 차는 성능, 연비 중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내세우지 못한 채 출시 2년 만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북미에서의 평가도 냉담했다.
2012년 내놨던 시빅 하이브리드 역시 마찬가지 운명을 맞았다. 91마력 1.5ℓ 엔진에 17㎾ 모터를 조합한 파워트레인은 부족한 힘 때문에 가속 페달을 자주 밟아야 했고, 이 때문에 좋은 연비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러다보니 혼다의 하이브리드카는 한국에서 잊힌 존재가 됐고, 한동안 혼다코리아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하지 않았다. 디젤차의 인기가 사그라질 무렵에 하이브리드카의 인기가 높아졌고, 토요타와 렉서스가 큰 폭의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혼다는 부럽게 쳐다볼 뿐이었다.
혼다의 하이브리드카가 그동안 실패했던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평범한 연비와 동급 대비 비싼 가격. 토요타와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모델들이 다소 비싸더라도 뛰어난 연비로 만족감을 줬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러던 혼다가 웬일인지 올해 어코드 하이브리드를 내놨다. 그동안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I-MMD(intelligent Multi-Mode Drive)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내놓은 것. 2.0 가솔린 엔진에 주행용과 발전용 등 2개의 모터를 장착한 것이 포인트다.
외관에서 일반형 어코드와 하이브리드 모델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에 블루 익스텐션 톱 코트라 해서 램프 디자인이 살짝 바뀐 것과 소소한 장식에서 차이가 있는 정도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현대 쏘나타 하이브리드나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와 근본적으로 구조가 다르다. 토요타는 모터 제네레이터 2개를 장착해 이 파워가 통합되었다가 다시 배분되는 과정을 거쳐서 구동되는 방식이다. 현대차가 택한 것은 엔진과 모터 사이에 클러치를 넣어서 이를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구동을 조절토록 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혼다의 방식은 3가지 모드가 있다. 저속에서는 전기모터로만 구동되고, 이를 EV모드로 선택할 수 있는 건 토요타 방식과 같다.
하이브리드 드라이브 상태에서는 엔진이 발전용 모터를 구동해 배터리를 충전하고, 이 전력으로 차가 움직인다. 오르막 구간이나 급가속 때 이 모드가 주로 가동된다. 토요타와 현대차는 이 경우 엔진과 모터가 동시에 가동된다. 고속 정속 주행 상태에서는 엔진만 구동되는데, 이는 3사가 같다.
모터 활용도를 높인 결과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제원상 출력과 연비가 동급에서 가장 우수하다. 최고출력은 215마력으로 캠리 하이브리드(203마력), 쏘나타 하이브리드(207마력)를 앞선다. 복합연비 역시 어코드가 19.3㎞/ℓ, 쏘나타가 17.7㎞/ℓ, 캠리가 17.5㎞/ℓ로 어코드의 우세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도심 연비는 19.5㎞/ℓ인데, 이번 시승에서는 12.0㎞/ℓ에 머물렀다. 물론 도로나 교통 상황에 따라 연비는 많이 달라질 수 있는데, 기대가 커서인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연비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체감 가속력과 브레이크 성능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급가속 때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엔진이 가동돼 모터를 돌리고, 여기서 나오는 전력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그래서인지 가속 때의 반응이 쏘나타나 캠리보다 즉각적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브레이크다. 하이브리드카의 경우 감속 때의 에너지를 회생제동 에너지로 재생토록 되어 있는데, 이때 브레이크의 민감도가 떨어지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토요타 프리우스가 이 문제로 초기에 리콜을 겪은 바 있다. 물론 지금의 프리우스는 그 문제가 해결돼 있다.
헌데 한참 지나서 나온 어코드 하이브리드에서 이 문제가 발견된다. 다른 차를 몰던 습관으로 이 차의 브레이크를 밟으면 십중팔구 차가 밀린다. 이번 시승 중에도 두 번이나 앞차를 들이받을 뻔했다. 차에 적응하면 해결되는 문제인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설계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와 관련해 혼다코리아 직원에게 물어보니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한다.
혼다는 과거 하이브리드 모델로 여러 차례 큰 손실을 겪은 이후 이번에 새로운 시스템으로 무장하고 시장에 다시 진입했다. 인증 연비 수치만 보면 경쟁차보다 낫지만, 김영란법의 영향 때문에 1박2일로 시승이 제한된 요즘 같은 때에는 이 연비를 검증할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어쨌든 주어진 여건에서는 기대하던 연비가 나오지 않았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4320만원이다. 반면 캠리 하이브리드는 3610만~4040만원이고,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2886만~3330만원이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와 쏘나타 하이브리드 최고급형의 차이는 990만원이고, 최저가형과 비교하면 1434만원으로 벌어진다.
연간 주행거리를 1만5000㎞로 가정할 경우, 복합연비 기준으로 어코드 하이브리드와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기름 값은 1년에 10만원 정도 차이난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를 99년간 타면 비로소 쏘나타 하이브리드 최고급형과의 차 가격 차이가 상쇄된다. 경제적으로는 이득이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혼다코리아는 기존 어코드 고객이나 어코드 가솔린 모델을 구입하려는 이들을 노리는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는 판매 실적으로도 입증된다. 올해 1~3월 판매 실적을 보면,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출시 초기인 1월에는 182대나 팔렸지만 점점 판매가 감소해 3월에는 11대에 그쳤다. 반면 어코드 2.4 가솔린은 2월에 살짝 줄었다가 3월에는 다시 1월 수준인 351대로 늘었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1월 209대, 2월 141대, 3월 234대로 꾸준했다. 어코드 하이브리드 등장 후에도 한 번도 판매실적이 뒤지지 않은 점이 주목할 만하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과거 혼다가 실패했던 하이브리드 모델보다 발전했다. 안전성과 주행성능으로 승부해온 혼다가 ‘어쩌다’ 연비로 승부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경쟁 모델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이 점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판매 성공의 관건이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