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반한 페라리는 ‘테스타로사’다. 차체 옆에 매력적인 라인이 흐르는 이 멋진 차를 보고 한 눈에 반했고, 그 뒤로 내 드림카로 정했다. 심지어 내 이메일 아이디도 페라리로 만들 정도였다.
페라리는 이후에도 숱한 명차들을 만들어왔다. 세월이 흐르고 명차에 대한 기준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페라리가 명차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퇴역장교 알파치노와 크리스 오도넬이 타고 달리는 몬디알 T 역시 기억에 남는 차다.
최근 나온 차는 ‘GTC4 루쏘 T’다. GTC는 그란 투리스모 쿠페(Gran Turismo Coupe)를, 숫자 4는 4인승을, 루쏘는 이탈리아어로 고급스러움을 뜻한다. T는 이번에 더해진 터보 엔진을 의미한다. 페라리로써는 터보 엔진과 4인승을 처음 조합한 모델이다.
앞서 나온 GTC4 루쏘의 경우 V12 6.3ℓ 690마력 엔진을 얹은 반면에 루쏘 T는 V8 3.9ℓ 터보 610마력 엔진을 장착했다. 기통수와 배기량은 확 줄었지만 터보를 얹은 덕에 출력 감소는 크지 않다. 그러나 실제 성능은 겪어 보고 판단해야 하는 법. FMK에서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마련한 시승회에 참석해 그 성능을 직접 느껴보기로 했다.
행사는 두 가지로 진행됐다. 한 조가 트랙을 도는 동안 또 한 조는 짐카나 경주를 했고, 이어 두 조가 자리를 바꿔 체험했다. 그동안 트랙을 먼저 체험하고 짐카나를 할 경우 짐카나 성적이 좋았는데, 이날 트랙 체험이 먼저 배정돼 마음이 놓였다.
4인승 모델이지만, 페라리는 역시 페라리다. 포르쉐 파나메라의 경우 911보다 럭셔리한 분위기를 강조한 반면에, 이 차는 비슷한 4인승 콘셉트이면서도 운전석에 앉으면 그냥 스포츠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시승을 위해 시트 포지션을 조정하는데, 모터리언의 박기돈 편집장과 김송은 기자가 동승해 승차인원 4명을 꽉 채웠다. 제대로 된 테스트 조건을 갖춘 셈이다.
사실 시승 전에는 루쏘 T에다 4명까지 타면 차가 약간 둔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놈, 역시 물건이었다. 내리막과 오르막, 급코너가 이어지는 인제스피디움의 서킷을 끈적끈적하게 움켜쥐고, 별다른 흔들림 없이 매끈한 코너링을 그린다. 인스트럭터로 동승한 구준학 허즈코리아 대표는 “제가 알려드릴 게 없네요”라며 추켜세운다. 차가 마음먹은 대로 잘 따라 와준 덕분이다.
뒷자리에 탄 박기돈 편집장과 김송은 기자는 재미있다며 연신 비명을 질러댄다. 운전하는 나까지 이 기분에 취하면 안 된다. 서킷에서는 잠깐의 방심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GTC4 T의 드라이빙이 멋진 건 4륜조향 시스템(4WS) 덕이기도 하다. 이 시스템은 고속에서 앞뒤 바퀴가 같은 방향을 향하는 ‘동위상’이 되며, 저속에서는 반대 방향이 되는 ‘역위상’으로 바뀐다. 빠른 차선 변경과 작은 회전 반경을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시스템이다. 여기에 3.0 버전으로 진화한 사이드 슬립 컨트롤이 핸들링을 멋지게 완성해준다.
페라리 팬들이 자연흡기 V12 엔진을 사랑한 건 특유의 사운드 때문이었다. V8 터보로 엔진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사운드도 체크 대상. 이리 굴려 보고 저리 굴려 봐도 페라리의 매력적인 사운드는 여전하다. 전자식 바이 패스를 통한 사운드 조절 덕분이다. 우려했던 터보 레그(가속 지체 현상)은 거의 느낄 수 없다.
이 차의 최고시속은 335㎞지만 인제스피디움에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640m 직선주로에서 200㎞/h로 달리면 곧 코너가 나타나기 때문. 직선주로가 더 긴 영암 서킷이라면 300㎞/h까지도 가능할 듯하다.
짐카나 경주에는 488GTB가 등장했다. 코스는 비교적 단순했지만 상위권 도약은 힘들어보였다. 이번 시승 행사는 트랙 경험이 많은 이들 위주로 초청돼 수많은 실력자들이 우리 조에 포진해있었다. 마음을 비웠더니 실수는 나오지 않았다. ‘한 번 더 하면 기록이 빨라지겠구나’ 생각했더니 인스트럭터가 “이번엔 48.8초에 최대한 가깝게 달려보라”고 한다.
“왜 48.8초냐”고 물었더니 “차 이름이 488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름 계산하고 달렸는데 기록은 안 알려줬다. 결과적으로는 두 가지 다 입상에 실패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 번 더 빨리 달릴 걸 그랬다. 기록보다는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행사가 빠듯하게 진행되면서 오후 일정이 휙 지나갔다. 페라리를 타는 건 언제나 즐겁다. ‘집을 팔아서라도 차를 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서울로 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포르쉐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페라리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