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일이었다.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 한국판에서 마감을 진행하던 중에 포항으로 날아갔다. 한국토요타로부터 렉서스 LS 시승회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고 나서다.
포항 공항에 도착하니 한국토요타 직원들이 LS 옆에 도열해 있다. 기자들은 ‘일일 운전기사’로 변신한 한국토요타 직원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차에 올랐다.
4세대 LS의 뒷좌석은 말 그대로 퍼스트 클래스였다. 오토만 시트를 장착한 시승차는 리어 센터 콘솔 위쪽에 냉장고까지 갖췄고, 과자 같은 주전부리도 잔뜩 들어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한참 연배가 높은 한국토요타 직원이 운전하고 있는데, 건방지게 쩝쩝 거리며 먹는 건 무례한 일이다. 눈치를 한참 보던 나는 과자를 입에 우겨 넣고 우물거리다가 꿀떡 삼키기를 반복했다.
배도 부르겠다, 도서관보다 조용한 렉서스의 뒷좌석에서 잠이 솔솔 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LS는 구불구불한 포항-경주 국도를 흔들림 없이 유유히 굴러갔다.
풀 체인지 된 5세대 LS를 만난 건 지난 21일 영종도 하얏트호텔에서다. 첫 인상은 아주 강렬하다. 일부에게 ‘과하다’는 평을 받는 라디에이터 그릴은 실제로 보면 아주 멋있다. 이 또한 한 가지 형태로 고정하지 않고 렉서스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데, 뉴 LS는 5000개 이상의 단면으로 구성된 매시 패턴으로 마무리했다. 여러 형태로 시도되던 L자형 주간주행등은 헤드램프와 이어지며 날카롭게 마무리했다.
실내로 들어서면 화려한 디자인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타쿠미’라고 불리는 장인들이 완성한 렉서스만의 독자적인 우드 트림과 ‘키리코’ 패턴의 장식 조명에서 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와 다른 렉서스만의 고급스러움을 느낀다.
운전석 시트는 무려 28가지 방향으로 조절된다. 아무리 이상한 체형을 가진 이라도 편안하지 않을 수 없겠다. 뒷좌석도 22가지 방향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안마 기능은 앞뒤 좌석 모두 넣었다. 앞좌석 리프레시 시트는 다섯 가지 프로그램이 최대 15분 동안 지속되며, 뒷좌석 릴렉세이션 시트는 일곱 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파워트레인은 V6 3.5ℓ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를 조합해 총 출력 359마력을 낸다. V8 5.0ℓ 엔진과 모터를 조합한 4세대 모델과 비교해 다운사이징의 의도가 뚜렷하다. 445마력을 자랑하던 구형보다는 출력과 토크 모두 줄었지만, 실제 운전감각은 더 다이내믹하다. 가속 때 포효하는 엔진 사운드, 새롭게 가세한 유단 기어 덕분이다. 구형의 경우 CVT(무단변속기)로 인해 부드러운 주행감각을 자랑한 데 비해, 신형은 10단 변속기의 느낌을 줘 주행감각에도 공을 들인 모습이다.
계기반 오른쪽 위에는 드라이브 모드 셀럭터가 자리한다. 노멀 모드는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스포츠 또는 스포츠 플러스 모드는 가속이 빨라지고 사운드가 커진다. 렉서스가 항상 지적받던 운전재미 면에서는 일취월장했지만, 이 사운드를 조절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면 좋겠다. 예를 들어, 빠르게 달리고 싶지만 엔진 사운드를 조용하게 만들고 싶을 땐 소리를 줄이도록 하는 식이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차를 마음 놓고 잡아 돌려도 좋다. 구형은 더블 레인 체인지(급차선 변경) 테스트에서 차가 휘청거렸는데, 신형은 차체를 꽤 단단히 붙잡는다. 서스펜션의 감쇠력이 기존 9단계에서 650단계로 세분화된 덕분이다.
뒷좌석은 11년 전 시승회의 데자뷔였다. 함께 타기로 한 기자가 밥만 먹고 가면서 대신 렉서스 홍보 담당 고영선 이사가 동석했는데, 내가 뒷좌석에 앉으면서 그가 운전대를 잡았다. 11년 전 시승회와의 차이점은 뒷좌석에 주전부리가 없었다는 점.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던 냉장고도 사라졌다. 고영선 이사는 “쓰임새가 많지 않아 없앴다”고 한다. 냉장고나 주전부리나 없애길 잘했다. 그게 있었더라면 또 눈치 보면서 꿀떡 삼켰을 거 아닌가.
운전석에서 들리던 다이내믹한 사운드는 신기하게도 뒷좌석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구형 렉서스 타던 회장님이 커진 사운드에 화들짝 놀랄 일은 없을 듯. 역시 렉서스다운 치밀함이다.
뒷좌석 기능은 스위치 대신 멀티 터치 패널로 조작한다. 터치 한 번이면 앞좌석이 최대한 앞으로 밀려가고, 뒷좌석이 누우면서 자연스레 회장님 자세가 된다. 렉서스가 강조하는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고객에 대한 환대)는 이런 데서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았다. 11년 전 그랬듯이, 앞에는 한국토요타 임직원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회장님 코스프레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뉴 LS는 우선 하이브리드만 한국에 선보이고, 내년에 가솔린 모델이 추가된다. 가격은 1억5100~1억7300만원으로 구형보다 약간 내려갔다.
렉서스의 진정한 가치는 소유하면서 느낄 수 있다. ‘한 번 타본 이는 있어도 한 번만 타본 이는 없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