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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맨오브라만차’(2)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참 자기와 거짓 자기는?

발행일 : 2018-04-18 00:05:14

4월 12일부터 6월 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극중극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돈키호테(오만석, 홍광호 분)는 타고난 기질대로 살고 있지만 세르반테스(오만석, 홍광호 분)는 처음에는 기질대로 사는 면과 그렇지 못한 면이 같이 있었는데, 극중극에서 돈키호테 역할을 하면서 세르반테스는 기질대로 살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의 개념을 통해 세르반테스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 돈키호테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를 알아보기로 한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해 돈키호테의 모습을 통해 참 자기를 찾겠다는 결심을 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

도날드 위니콧은 자기 자신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경우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든다고 했다.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인 질서의 옳고 그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자기의 본 기질을 충실히 따르느냐를 뜻한다. 기질대로 사는 자기의 모습이 참 자기라면, 사회적 환경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적응해 사는 모습이 거짓 자기인 것이다.

거짓 자기로 산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삶을 산다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원래 천성이 게으른 사람인데,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사는 거짓 자기의 모습이다.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거짓 자기로 산다고 하면 왠지 위선적으로 사는 것 같은 뉘앙스가 풍기지만, 위니콧은 절대 그런 의미로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더 이상 칭찬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하거나 그 칭찬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느껴지면, 그 사람은 원래의 게으른 사람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원래의 게으른 사람으로 돌아갔을 때 사회적 칭찬을 더 이상 받을 수는 없지만, 게으른 기질 대로 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이냐 불행이냐의 문제도 선택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와 주변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면과 나의 기질이 같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거짓 자기로 살 수밖에 없다.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참 자기가 기질적으로 타고난 나의 본 모습이라고 하면, 거짓 자기는 참 자기가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원래의 나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나의 적응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 참 자기와 마주하는 것이 오히려 두려운 알돈자

돈키호테의 환상 속에서는 아름다운 레이디 ‘둘시네아’이지만, 현실은 여관의 하녀인 알돈자(윤공주, 최수진 분)는 남자를 믿지 못한다.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그녀를 존중하거나 위하지는 않고, 육체적인 대상으로만 여긴다.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알돈자는 하녀로 일하면서 남자들의 성적 대상이 되는 것에 익숙한 것처럼 보이는데, 터프하고 쿨한 것 같지만 알돈자가 부르는 뮤지컬 넘버의 가사를 잘 들어보면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다.

돈을 주는 남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거짓 자기로 살면서도 그들이 너무 막대할 때는 그들을 뿌리칠 줄도 안다. 알돈자가 돈키호테에게 울먹이며 따지는 장면이 있는데 돈키호테에게 뭐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에게 따지는 것이다.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알돈자는 지금 거짓 자기로 사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한데, 돈키호테가 자신을 둘시네아라고 하면서 존중하니까 돈키호테의 마음에 공격을 한다. 거짓 자기로 살면서 숨겨왔던 자신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은, 참 자기의 출연과 함께 커지기 때문에 자신의 본 모습, 원래 살고 싶었던 모습을 자극하는 돈키호테가 오히려 미웠던 것이다. 거짓 자기가 주도권을 잡고 살았던 알돈자 내면에서 참 자기와 거짓 자기가 충돌하는 것이다.

돈키호테의 말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귀함을 인정하는 것인데, 알돈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키호테의 말은 희망 고문으로 들린다.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분노만 있었던 곳에 돈키호테가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가 다시 절망으로 채웠다고 하면서 알돈자는 울먹이는데, 거짓 자기의 분노가 참 자기의 희망보다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클라인의 개념을 알돈자에게 적용하면, 측은지심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짠해진다.

◇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참 자기와 거짓 자기는?

오직 나의 영혼 이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돈키호테는 정말 철저하게 기질대로, 참 자기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이 현실을 눈앞에 보여줘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면서 철저하게 기질대로 살기 때문에, 돈키호테에 맞춰주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기질대로 살지 못하는 면이 생기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는 돈키호테의 참 자기에 주변 사람들은 답답해 미칠 수도 있다.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세르반테스의 말과 극중극의 작품을 보면 세르반테스의 참 자기는 돈키호테라고 볼 수 있다. 돈키호테처럼 살고 싶지만, 먹고살아야 하는 현실에 타고난 기질과는 다른 임시 직업을 갖기도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 표출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라는 상상과 판타지를 통해 내면의 참 자기를 세상에 꺼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일반적으로 작가의 모습과 작품의 모습이 달랐을 때, 작품의 모습이 작가의 참 자기이고 작가의 현재 모습은 작가의 거짓 자기일 가능성이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맨오브라만차’ 공연사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극중극이 끝난 후 죄수들의 캡틴 도지사(문종원, 김대종 분)는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는 형제라고 말한다. 만약 도지사가 대상관계이론을 잘 알고 있었다면,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내면이 투사된 존재이자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참 자기를 표현하는 결정체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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