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심리학을 발전시킨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의 개념을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 극중극 속의 돈키호테(오만석, 홍광호 분)와 알돈자/둘시네아(윤공주, 최수진 분)에게 적용하면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의 개념을 적용해 살펴본 이전 리뷰를 ‘자기대상’과 연결해 살펴보면 두 인물의 갈등과 관계성 형성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더욱 알 수 있다.
◇ 대상관계이론, 하인즈 코헛의 자기대상
하인즈 코헛은 개인의 내부 세계보다 다른 사람을 포함한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대상관계이론 심리학자들이 관계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면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공감이라는 측면과 관계성이라는 측면을 살펴보기 위해 용어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코헛이 말한 좁은 의미의 자기는 ‘마음 또는 성격의 한 특정 구조로서의 자기’이고 넓은 의미의 자기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표현된 자기’이다. 넓은 의미의 자기가 자기대상의 개념에 적용된다.
코헛은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와 연결된 외적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들과의 지속적인 자기대상 경험 속에서 자기가 강화되고 유지된다고 봤다. 즉, ‘자기대상’은 ‘자기의 일부로 경험되는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아닌 상대방이지만 나와 아예 관계가 없는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영향을 주고 나를 반영하는 의미 있는 타자(상대방)를 뜻한다. 자기의 모습을 스스로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기보다는, 나를 반영하는 의미 있는 사람에 의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자기를 비춰 확인하게 되는 모든 것이 자기대상이 될 수 있다. 자기대상을 꾸준히 찾는 이유는 만족감과 자존감을 스스로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비친 나의 모습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 심리적 안전감을 얻을 때 보호받고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기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무척 강한 사람은 자기대상이 필요 없는 것일까? 자기대상 이론을 적용하면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확실한 자기대상이 있는 것이다. 확실한 자기대상이 있기 때문에 확실한 자존감을 보이는 것이다. 밀접도와 영향력에서 긍정적인 자기대상이 있을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대상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아티스트에게는 팬이 자기대상일 수 있고, 팬에게는 아티스트가 자기대상이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더 큰 사람이 영향력이 작은 사람의 자기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쉬운데,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자기대상은 일방향일 수도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양방향의 관계일 수도 있다. 양방향인 경우도 돈키호테와 알돈자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자기대상일 수도 있다. 아티스트가 스스로의 예술성으로 인해 존재 가치를 세우는 것도 맞지만, 의미 있는 사람들이 자기대상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높은 예술성이라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자기대상은 중요하다.
◇ 자기대상의 종류(1) : 거울 자기대상
자기대상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울 자기대상(mirroring self object)은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자기대상이다. 내가 이뤄낸 성과나 성취도 내게 의미 있는 타자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을 때 드디어 완성됐다고 느끼며, 자아의 존재감을 높이게 된다.
◇ 자기대상의 종류(2) : 이상화 자기대상
이상화 자기대상(idealizing self object)은 힘없는 자기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힘이 있고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하려고 찾는 대상이다. 이때 대상은 안정되고 이상화된 완벽한 이미지(이상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자기와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와 융합될 수 없으면, 자기대상으로서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자기대상의 종류(3) : 쌍둥이 자기대상
쌍둥이 자기대상(twinship self object)은 부모와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느끼길 원하는 자기대상을 지칭한다. 이때 부모는 자기를 반영하고 인정하고 보호하는 부모를 뜻한다. 자기가 타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쌍둥이 자기대상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쌍둥이 자기대상에 대한 욕구는 전 생애에 걸쳐 유지되는 욕구로 알려져 있다.
◇ 둘시네아는 돈키호테의 이상화 자기대상
돈키호테에게 둘시네아는 이상화 자기대상이다. 돈키호테의 환상 속에서는 아름다운 레이디 둘시네아를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돈키호테가 기사가 돼야 하는 이유와 명분을 제공한다.
돈키호테에게 둘시네아는 이상화 자기대상이지만, 돈키호테에게 알돈자는 이상화 자기대상이 아니다. 둘시네아와 알돈자가 같은 사람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이유 속에 이상화 자기대상이 가지는 의미의 핵심이 내포돼 있다.
돈키호테는 스스로 기사라고 하면서도 아직 정식 기사는 아니라고 겸손하면서도 소심하게 말한다. 아직 정식 기사가 아니라는, 힘없는 자기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의미 있게 만들어줄 대상이 필요한데, 현실에서는 여관의 하녀인 알돈자를 그 대상으로 할 경우 자신의 부족한 면이 커버되지 않기 때문에, 현실의 알돈자를 환상적인 둘시네아로 믿은 후 둘시네아의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하려고 한 것이다.
“순결함, 고결한 영혼”, “내 마음은 그대를 알아보았다”라는 돈키호테의 표현은 그런 점을 뒷받침하는데, “여자는 남자의 영혼이자 앞길을 비추는 빛이자 찬란한 아름다움”이라는 표현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알돈자가 돈키호테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후에도 돈키호테가 알돈자의 육체를 범하지 않은 이유는 기사도 정신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상화 자기대상인 둘시네아를 절대 훼손할 수 없기 때문에 알돈자와 더 이상 가까워지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 돈키호테는 알돈자의 거울 자기대상
돈키호테와 알돈자는 서로에게 자기대상인데, 알돈자에게 돈키호테에게 거울 자기대상이다. 돈키호테를 알돈자를 둘시네아라고 부르면서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는데, 돈키호테가 알돈자에게 예의를 갖추자 알돈자에게 마구 대하던 남자들도 잠시 부드럽고 예의 바르게 대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자를 믿지 못하는 알돈자는 자신이 존재 자체에 대해 인정하고 칭찬하는 돈키호테로 인해 희망을 가지게 되는데, 인정과 칭찬으로 알돈자의 존재감을 높이는 돈키호테는 알돈자의 거울 자기대상인 것이다.
분노만 있었던 곳에 돈키호테가 희망을 품게 했다가 다시 절망으로 채웠다고 하면서 알돈자가 울먹이는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데, 절망을 경험한 알돈자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돈키호테를 찾게 되는 이유는 알돈자에게 유일한 자기대상이 돈키호테이기 때문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