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AMG, BMW M, 아우디 RS, 렉서스 F, 토요타 TRD…. 이들은 고성능을 상징하는 브랜드다.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도 있고, 비교적 짧은 역사 속에 급성장한 브랜드도 있다. 완성차 메이커는 이러한 고성능 브랜드가 존재함으로써 엄청난 브랜드 밸류 효과를 얻는다.
현대차는 세계 5위 규모의 메이커지만 고성능 분야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물론 그동안 현대차가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었다. 스포츠 루킹 쿠페인 스쿠프를 시작으로 투스카니, 제네시스 쿠페 등 국내 스포츠카의 명맥을 잇는 차를 잇달아 내놓았고, 이들은 점차 고성능의 영역에 다가섰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대차가 판매하기 시작한 벨로스터 N은 이러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본격적인 고성능 차다. 앞서 현대차는 i30 N을 독일 뉘르부르크링 레이스에 출전시켜 완주하는 성과를 거뒀고, 지난해 10월에는 TCR 시리즈 데뷔전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i30 N이 자동차 경주 출전에 중점을 두고 개발한 차라면, 벨로스터 N은 현대차가 한국에서 일반에 시판하는 첫 번째 고성능차다.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첫 시승회에는 알버트 비어만 사장과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 등 고위 임원이 총 출동했다.
시승차로 마련된 벨로스터 N은 하늘색 컬러를 입었다. ‘퍼포먼스 블루’라는 컬러명이 이 차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시승회는 핸들링 시험장에서 직접 몰아보고 트랙에서 연구원이 모는 차를 동승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250마력 2.0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를 짝지었다. 자동변속기나 DCT는 마련되지 않는다. 수동의 손맛을 아는 마니아들이 이 차를 다룰 자격이 있다는 의미다.
시동을 걸면 강렬한 배기음이 심장을 자극한다. 전자식 가변 밸브 시스템이 장착된 능동 가변 배기 시스템 덕이다. 현대차 연구원은 “엔진 소리를 증가시키는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장착되긴 했지만 가변 밸브 시스템의 비중이 크다”고 설명한다.
클러치는 민감하지만 적응하기에 어렵지는 않다. 엔진은 저회전부터 미친 듯이 꿈틀댄다. 1450rpm부터 나오는 36.0㎏·m의 최대토크는 4700rpm까지 꾸준히 유지되도록 설계됐다. 변속 때 rpm을 동기화시키는 래브 매칭이 적용됐지만 이를 체감하기는 힘들다. 시승회 구간이 짧아서 고회전을 쓸 수 없었기 때문. 추후 시승차가 나오면 일반 도로에서 테스트해볼 예정이다.
N 모드에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거나 변속하면 ‘퍼버버벙’하는 후배기음이 귀청을 때린다. 팝콘 볶는 소리 같다 해서 ‘팝콘 사운드’라 부르는 소리로, 메르세데스-AMG나 BMW M 같은 고성능 브랜드에서나 들을 수 있던 사운드다. 배기음이 올라갈수록 심장박동수(BPM)도 따라 올라간다. 무조건 시끄러운 게 아니라 일반주행 모드에서는 세단처럼 조용한 센스도 갖췄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주행안전성이다. 탄탄한 전자 제어 서스펜션은 그동안 현대차에서 전혀 볼 수 없던 끈적끈적한 핸들링을 보여준다. 이대로 자동차 경주에 바로 나가도 될 정도다. 지난번에 인제스피디움에서 시승했던 벨로스터 1.6 터보나, 개별 시승했던 1.4 터보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차 같다.
이는 주행모드 제어시스템인 ‘N 그린 컨트롤’을 통해 여러 타입(에코/노멀/스포츠/N/커스텀)으로 조절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주행모드 간의 승차감 차이가 곧바로 느껴진다.
안정적인 주행성능의 비결 중 하나는 N 코너 카빙 디퍼렌셜 덕분이기도 하다. 이 장비는 코너링 때 좌우 바퀴의 구동력을 전자적으로 배분해 이상적인 코너링을 돕는다. 기존에 현대차가 썼던 전자식 차동 제한장치는 한쪽 바퀴에 제동을 걸어 구동력을 조절하는 데 비해, 이 장비는 한쪽 바퀴에 구동력을 더 보내는 방식이어서 출력 손실이 적다.
예비 구매자들이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이 차로 트랙 주행이나 레이싱 이벤트에 참가해서 일어난 고장은 보증수리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타이어는 225/40ZR18 미쉐린PSS가 기본이고, 퍼포먼스 패키지를 선택하면 235/35R19 피렐리P-제로 타이어로 바뀐다. 아쉽게도 국산 타이어는 옵션 리스트에 없다.
벨로스터 N은 한 가지 트림으로만 나오며 가격은 2965만원이다. 여기에 퍼포먼스 패키지(200만원), 컨비니언스 패키지(60만원), 멀티미디어 패키지(100만원), 선루프(60만원), 무광 컬러(20만원)를 모두 더하면 3405만원이 된다. 풀 옵션을 갖춰도 3000만원 중반대에 불과하다. 수입차에서 이 정도 옵션을 갖춘다면 최소 5000만원 정도는 줘야 하기 때문에 벨로스터 N의 경쟁력은 상당하다.
여러 옵션 가운데 퍼포먼스 패키지는 선택 가치가 높아 보인다. 최고출력을 275마력으로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19인치 피렐리 타이어, N 코너 카빙 디퍼렌셜, 능동 가변 배기 시스템, 대용량 브레이크 등이 이 옵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벨로스터 N은 이미 사전 계약 6일 만에 500여대의 계약이 이뤄졌으며, 가격표 공개 이후에는 반응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비록 수요가 넓은 차종은 아니지만, 그동안 가격 대비 가치로 승부해온 현대차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벨로스터 N의 선전을 기대한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한국 완성차업체의 역사를 새로 썼다. 자동 면허 보유자는 빨리 수동 면허 딸 것.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