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에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 개념을 적용하면, 자기대상이 없는 투란도트 공주(소프라노 이윤정, 이다미 분)는 자신을 반영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 하인즈 코헛의 ‘자기대상’
대상관계이론은 개인 내부의 심리 못지않게 대상(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하인즈 코헛은 자기의 내부 세계보다 다른 사람을 포함한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에 더 초점을 뒀다.
‘자기대상’은 ‘자기의 일부로 경험되는 대상’을 뜻한다.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와 연결된 외적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들과의 지속적인 자기대상 경험 속에서 자기가 강화되고 유지된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나의 가치와 의미, 매력은 나를 직접 바라봄보다는 나를 인정하는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자기대상은 상대를 통해 나를 확장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기대상은 내 존재에 대한 안전감과 나를 확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준다.
자기대상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거울 자기대상(mirroring self object), 힘없는 자기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힘이 있고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하려고 찾는 이상화 자기대상(idealizing self object), 부모와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느끼길 원하는 쌍둥이 자기대상(twinship self object)이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 자기대상이 없는 투란도트! 자신을 반영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에게는 자기대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란도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칭찬하는 거울 자기대상은 없다. 투란도트가 낸 문제를 푼 칼라프 왕자(테너 이정환, 한윤석 분)가 추후에 투란도트의 거울 자기대상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현재로서는 거울 자기대상이라고 볼 수 없다.
투란도트가 느끼기에 전능한 이미지를 가진 대상이 없기에 이상화 자기대상도 없고, 동일한 이미지를 가지고 싶은 대상도 없기에 쌍둥이 자기대상도 없다. 자기대상이 없는 투란도트는 자신을 반영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만약에 투란도트에게 자기대상, 그중에서도 거울 자기대상이 있었으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 투란도트의 삶 전체가 바뀔 수도 있는데, 특히 문제를 풀지 못하면 죽음에 처하게 하는 행동부터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인정받기 때문에,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 투란도트는 목숨을 걸고 문제를 풀겠다고 도전하는 남자들의 이상화 자기대상일 수 있다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는 목숨을 걸고 문제를 풀겠다고 도전하는 남자들의 이상화 자기대상일 수 있다. 아무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푼다는 것 자체가 도전하는 남자에게는 자신을 완벽하게 느끼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투란도트와 결혼한다는 것은 완벽함의 완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투란도트는 도전하는 남자들의 이상화 자기대상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하인즈 코헛이 말한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이상화 자기대상은 아닐 수 있다. 전능하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왜곡된 이미지를 제공하는 이상화 자기대상이기 때문이다.
◇ 칼라프 왕자는 류에게 이상화 자기대상이기는 하지만, 거울 자기대상은 아니다
<투란도트>에서 칼라프는 류(소프라노 김신혜, 신은혜 분)에게 이상화 자기대상이다. 류는 칼라프를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로 존중하고 흠모한다. 칼라프와 함께 한다면 불안감을 줄이고 심리적 안전함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칼라프는 류의 이상화 자기대상이기는 하지만 거울 자기대상은 아니다. 칼라프가 류를 전혀 칭찬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것은 아니지만, 류가 원하는 만큼의 칭찬과 인정을 하지는 않는다. 칼라프가 류의 거울 자기대상이었으면 류의 삶은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었을 것인데, 대신 <투란도트>의 극적 긴장감과 갈등은 무뎌졌을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