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완벽했다. 준중형 스포츠 세단과 소형 미니밴을 소유한 나는 목적에 맞게 차를 이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직업상 국내에서 판매 중인 거의 모든 차를 시승하기 때문에 타보고 싶어서 안달난 차가 없었다.
주변에서 테슬라 모델 3에 대해 수많은 얘기를 할 때도 큰 관심은 없었다. 어느 유튜버가 ‘단차’와 ‘품질’ 문제를 지적하자 관심이 그쪽으로 쏠린 까닭이다. 하지만 모델 3를 직접 운전하는 순간, 그 유튜버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테슬라 코리아가 제공한 시승차는 3가지 트림 중 가장 성능이 강력한 ‘퍼포먼스’ 트림이다. 모터 출력은 앞 155㎾, 뒤 205㎾이고 네 바퀴를 굴리며, 모델 3 중 가격도 가장 비싸다.
테슬라 코리아 담당자는 시승차를 제공하면서 “속도 제한을 풀어드릴까요?”라고 물어본다. 퍼포먼스 트림의 최고속도는 261㎞/h인데, 시승차는 안전을 위해 120㎞/h로 제한을 걸어놨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 천대를 시승하면서 과속 딱지를 끊어본 적이 없었기에 제한 속도를 풀어달라고 했다. 그래야 모델 3의 성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퍼포먼스 트림은 정지에서 시속 100㎞까지 3.4초가 걸리는 빠른 가속이 자랑이고, 주행 가능거리는 415㎞다. 퍼포먼스 트림보다 가격이 1000만원이 싼 롱 레인지(6369만원)는 0→100㎞/h 가속 4.6초, 최고속도 233㎞/h이고, 주행 가능거리는 446㎞다. 퍼포먼스 트림보다 가속성능이 살짝 떨어지는 대신 주행 가능거리가 더 길다. 가장 아래 트림인 스탠더드 레인지 플러스(5369만원)는 0→100㎞/h 가속 5.6초, 최고속도 225㎞/h이고, 주행 가능거리는 352㎞다.
제원에서 볼 수 있듯이, 퍼포먼스 트림은 무시무시한 가속력이 일품이다. 가속 페달을 밟자마자 최대토크가 나오는 전기차의 특성 덕에 솜털이 쭈뼛 서는 짜릿한 가속감이 느껴진다.
장착된 타이어는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4S이고, 사이즈는 앞뒤 모두 235/35R20이다. 낮게 배치된 배터리 덕에 하체 밸런스는 아주 좋고, 타이어와의 궁합도 아주 좋다. 타이어 폭을 조금 더 넓히면 주행안전성이 더 완벽해질 것 같은데, 휠이 크기 때문에 폭을 키우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실내는 전기차답게 고요하고, 훌륭한 오디오가 귀를 즐겁게 한다. 다른 전기차에서 느껴졌던 모터 소음도 크지 않고, 고속으로 급가속할 때 풍절음만 살짝 들리는 수준이다.
모델 S와 모델 X는 오토파일럿 레버가 스티어링 휠 왼쪽에 따로 있는 반면, 모델 3는 기어 레버를 두 번 당기면 바로 작동한다. 완성도는 기대 이상이다. 경로를 지정하면, 모델 3는 저속주행차량이나 트럭 뒤에서 달리지 않도록 자동으로 차선을 바꾸며, 고속도로 출구로 안내한다.
깜박이를 켜면 주변을 감지한 후 바로 옆 차선으로 갈아타는데, 아주 정확하고 신속하게 움직인다. 일부 국산차에 이 기능이 탑재돼 있지만 작동 조건이 아주 까다로운 반면에 모델 3는 아주 재빠르게 작동한다. 차선 변경 빈도는 메뉴에서 조절할 수 있는데, 속칭 ‘칼치기’를 하는 것처럼 가장 빠른 길을 골라 이리저리 차선을 알아서 바꿔주는 모드도 있다. 주변 운전자에게 욕 먹을까봐 이 모드는 시도해보지 못했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실내를 천천히 둘러본다. ‘참 단순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스티어링 휠 앞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계기반이 없고, 모든 디스플레이와 조작은 중앙의 모니터를 통해서 한다. 효율적인 설계지만, 만약 이 디스플레이에 오류가 생기면 모든 조작이 불가능해진다. ‘랙’이 걸렸을 때 해결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불안감을 완전히 없애긴 힘들다. 따라서 보조 디스플레이를 마련하는 것도 괜찮겠다.
모델 S는 가격이 차 가격이 상당히 비싼 만큼 내장에 대한 지적이 많이 나왔지만, 모델 3는 그런 점에서 좀 더 자유롭다. 그래도 구매자가 개성 있게 꾸밀 수 있는 옵션을 더 다양하게 마련하면 좋겠다. 모델 3를 선택할 정도의 안목이라면 차에 대한 관심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데,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개별 옵션을 마련한다면 만족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슈퍼 차저 충전은 시승 도중 두 번 했다. 한 번은 강서구 김포공항 근처에 있는 롯데몰에서, 또 한 번은 여의도 IFC 몰에서였는데, 남은 충전 거리는 충분했지만 충전 시설과 속도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롯데몰에 도착하니 충전 포트 4곳 중 3개가 이미 차 있다. 전부 모델 3다. 충전기 출력은 55㎾였는데, 28분 충전하니 주행 가능거리가 188㎞에서 396㎞로 206㎞ 늘어났다. 이 정도 속도라면 실생활에서 충전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을 것 같다. 슈퍼 차저는 서울에만 일곱 곳이 있고,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꽤 많다. 완속 충전을 지원하는 데스티네이션 차저는 전국에 400곳이나 된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DC/AC 충전기가 있어서 여기서도 충전을 해봤다. 테슬라 측에서 제공한 완속 충전기 커넥터를 연결하면 시중에 있는 거의 모든 충전기를 쓸 수 있다. ㎾h당 260원이니까, 모델 3 퍼포먼스 트림 기준으로 470㎞를 달리는 데 2만6000원이 드는 셈이다. 물론 슈퍼 차저가 전국에 많이 깔려 있으므로 아직까지는 연료비가 거의 안 든다고 보면 된다.
모델 3의 보증은 트림에 따라 다른데, 스탠더드 레인지 플러스는 8년 또는 16만㎞, 롱 레인지와 퍼포먼스는 8년 또는 19만2000㎞이며, 모두 보증 기간 동안 배터리 용량이 70% 이상 유지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모델 3의 가격은 5369만~7369만원이고, 옵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흰색은 추가 비용이 들지 않지만, 블랙과 그레이, 블루 컬러는 128만6000원을, 레드 컬러는 257만100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슈퍼 차저 충전소에서 보였던 대부분의 모델 3가 흰색인 게 가격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인테리어는 블랙 컬러가 기본이고, 블랙&화이트 인테리어는 128만6000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 휠은 18인치가 기본, 19인치는 192만9000원이 든다. 고속도로 위주의 완전 자율 주행기능 옵션 가격은 771만4000원인데, 향후 시내 자동주행 기능이 추가될 예정이다.
지금 한국에서 모델 3를 주문하면 대략 9월 정도에 받을 수 있다. 일부 구매 예정자들은 이 기간을 기다릴 수 없다며 장기 렌터카를 계약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롯데렌탈 관계자는 “테슬라 측에 추가 물량 요청을 했다”면서 “모델 3의 인기가 좋아서 가능하면 많이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모델 3는 전반적으로 아주 훌륭한 상품성을 지녔다. 앞서 나온 모델 S와 달리 알루미늄 합금 비중을 줄이면서도 상당한 경량화를 이뤘고, 덕분에 수리성도 좋아졌다. 운전의 즐거움을 중시하는 이라면 포르쉐가 부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잘 달리고 조용하다. 심심한 인테리어만 다듬으면 완벽할 듯.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