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에 혜화문은 어디에 있을까?
쌀쌀한 날씨에 손이 시럽다. 노란 은행잎이 길 위에 소복소복 쌓인다. 소설 지나니 얼음이 얼었다. 백악산을 내려오니 성곽길 아래 크나큰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사이 큰 지붕이 두 개 보인다. 넓디넓은 마당과 높은 담 사이로 ‘명륜당’과 ‘대성전’ 현판이 무겁게 달려있다.
명륜(明倫)은 인간 사회에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600여 년 전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글을 읽고, 학문을 연구하였다. 논어와 맹자, 예기와 춘추 그리고 주역을 명륜당에서 읽고, 동재와 서재에서 토론하며 꿈을 키웠다. 현명한 청년들이 도성 안 창덕궁 옆 명륜당에 모이니 이곳이 성균관(成均館)이다.
명륜당의 현판은 전국에서 제일 크다. 명륜당 월대 아래 은행나무를 지나니 대성전이 보인다. 대성전은 공자와 그 제자들 그리고 우리나라 18 성현을 모신 사당으로 문묘(文廟)라 하였다. 봄·가을 성균관 대성전에서 종묘제례악을 들을 수 있으니 문묘제례악이 이곳에서 울려 퍼졌다.
명륜당이 있어 동네 이름이 명륜동이다. 명륜동에 가면 아늑하고 편안한 이유는 뭘까? 백악산 기슭에 산바람과 응봉의 새소리 그리고 성균관의 책 읽는 소리가 동재와 서재 그리고 진사식당 곳곳에 배어 있어서다.
성균관 입구 ‘두루 원만하고 편향되지 않기를 바라는’ 영조의 탕평비와 2m 높이의 하마비를 지나 언덕길로 오른다. 혜화동로터리를 지나니 혜화동 주민센터가 고즈넉한 한옥이다. 성균관과 명륜동 한옥마을에 어울리는 한옥 주민센터다. 이곳에 잠시 머물다 동쪽을 바라보니 혜화동성당 뒤에 성곽이 이어져 있다.
낙타의 등처럼 길게 늘어뜨려진 성곽 사이로 삼각산 보현봉과 인수봉도 손에 잡힐 듯하다. 인수봉 옆에 구름에 가린 백운대와 만경대도 보인다. 한양도성 안 가장 낮은 125m 낙타산에서 가장 높은 836m 삼각산 백운대까지 하늘 아래 구름 속에 있다. 신기하다. 그런데 혜화문(惠化門)은 어디에 있을까?
낙타산 정상에서도 낙타산 성곽길에서도 혜화문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조금 더 걸어가 본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안 혜화동성당에서 삼선교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야 할 성문이 없다. 600여 년 전 동쪽의 대문 흥인문과 북쪽의 대문 숙정문 사이 포천과 함흥을 가는 고갯길에 혜화문이 분명 있었다. 한양도성 동쪽의 소문인 혜화문이 동소문(東小門)이다.
낙타산과 백악산 기슭을 잇는 곳에 성문이 있다. 문루도 보인다. 100여 년 전 소실된 문루와 성문을 다시 세워 옮겼다. 전차가 지나간 자리, 도로가 생기며 성문도 옮겨졌다. 너무 높은 곳에 있어 볼 수가 없다. 찾을 수도 없다. 이것이 혜화문의 가슴 아픈 현실이다.
혜화문은 숙정문이 늘 닫혀있어 소문이지만 대문의 역할을 하였다. 혜화문을 경계로 도성 안은 종로구 혜화동, 도성 밖은 성북구 동소문동이 되었다. 은혜를 베풀어 주는 성문, 혜화문에 오르면 오래된 성벽 앞에서 웃음이 절로 난다. 쌀쌀한 날씨 움츠리지 말고 혜화문을 걸어가 보자. 해 지기 전 꿈과 희망은 언제나 당신 곁에 있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