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표동에 수표교가 없다
한양도성 안 물은 어디로 갔을까? 인왕산과 백악산 빗물은 남쪽을 향해 흐른다. 목멱산 빗물은 반대로 북쪽을 향해 흘러간다. 도성 안 모든 물은 도심 한복판 청계천으로 모였다. 청계천 물길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도성 안은 산으로 둘러 쌓여 서쪽이 높다. 서울은 산의 도시이자, 물의 도시다. 물은 낮은 곳을 찾아 흐른다.
막히면 돌아서 간다. 물이 흐르는 곳에 다리가 있으니, 서울은 다리의 도시다. ‘수선전도’를 보면 청계천 본류에 모전교,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하랑교, 효경교, 마전교, 오간수문, 영도교 9개의 큰 다리가 있었다.
청계천의 다리는 단순히 물을 건너는 수단이 아니다. 다리는 만남의 장소요, 모임의 장소다. 또한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다리다. 다리 밑에서 땀을 씻고, 먹거리를 찾았다. 4계절 5대 명절에 다리밟기, 연날리기, 연등놀이에 돌싸움과 택견까지 다리에서 하였다. 청계천을 걸으면 광통교에서 걸음이 멈춘다.
교각과 광통교 신장석을 보면 600여 년 전 이야기를 엿 볼 수 있다. 태종 이방원의 정적인 신덕왕후 강씨 ‘정릉’의 돌들이 광통교 교각이 되었다. 신장석 일부는 거꾸로 놓였지만 세련된 당초 문양과 구름 문양은 전통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광통교는 청계천에서 중요한 다리다. 하지만 수표교는 보이지 않는다.
수표교(水標橋)는 어디에 있을까? 광통교와 함께 도성 안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가 수표교다. 수표교는 왕의 행차가 있었던 중요한 다리다. 600여 년 전 수표교는 개천의 수위를 측정하는 다리다. 수표교는 27.5m 길이, 8.3m 폭, 45개 교각이 있다. 개천은 건천이나 비가 오면 인왕산과 백악산 그리고 목멱산의 물이 개천으로 모여 범람할 정도였다.
유량의 변화도 심하고, 유속도 강해 마름모꼴 교각은 물의 저항을 최소화한 당대 최고의 다리다. 과학기술이 한곳에 모였던 수표교는 이제 청계천에 없다. 수표교가 있어 수표동이었는데, 수표동에 수표교가 없다.
수표교는 장충동에 있다. 청계천 복개 공사로 세검정천이 있는 신영동에 이전되었다가 다시 장충단으로 갔다. 목멱산 아래 남소문동천이 흐르는 벽천(碧川)에 수표교가 있다. 장충단비와 신라호텔 사이에 수표교가 숨어 있다. 아무도 수표교를 찾지 않는다. 장충동에 큰 다리가 있는 줄 모른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수표교를 바라보면 긴 한숨만 나온다. 수표교가 청계천을 떠나 장충단 남소문동천에 외롭게 서 있다.
비가 내리면 도성 안 빗물은 청계천으로 모인다. 눈이 녹으면 남소문동천 수표교 물은 이간수문을 지나 청계천으로 흐른다. 청계천 물의 양을 측정한 수표교가 제자리에 있기를 기대해 본다. 보신각 종소리가 수표교에 울려 퍼지는 그날이 오면...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