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에 새로운 문이 어디에 있을까
신문로는 어디일까? 신문사가 많이 있어 붙여진 이름 같다. 신문로 1가와 2가 주변에 신문사가 의외로 많다. 경향신문과 문화일보, 내일신문과 조선일보까지 보인다. 신문로는 왜 신문로라고 했을까? 신문로는 Newspaper road가 아니라, Newgate road라는 걸 아는 사람이 적다.
신문은 다시 말해 새 문이다. 그렇다면 또 새 문은 어디인가? 새 문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옛 문도 없다. 새 문의 흔적을 찾아 걸어가 본다. 신문로는 한양도성 서쪽에 있는 길이다. 인왕산 정상에서 내려오면 성곽길 가장 낮은 곳, 언덕에 성문터가 있다. 이곳이 바로 돈의문 터다.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서쪽에 있는 대문이다. 소의문과 창의문 사이에 대문이 있었다. 경운궁과 경희궁 사이에 있는 성문이다. 하지만 원래 돈의문은 사직단 근처에 600여 년 전에 세워졌다. 처음 세워진 돈의문은 경복궁 서십자각 밖에 있었으나 경복궁의 지맥을 해친다하여 폐쇄 하였다.
대신 인왕산 기슭 남쪽, 경희궁 서쪽 언덕에 서전문을 열었다. 하지만 세종은 한양도성을 대대적으로 고칠 때 서전문을 다시 닫고, 지금의 돈의문을 세웠다. 새로운 서쪽의 대문이 ‘새 문 또는 신문(新門)’으로 불렸다. 이 길의 이름도 ‘신문로’가 되었다.
새로운 성문이 새 문이다.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서쪽 성문으로 500년 넘게 유지되어 오다가 개항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운궁과 경희궁 사이 새로운 문물이 돈의문을 통해 전해졌다. 서양의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이 돈의문을 통해 외교의 거리, 공사관의 거리인 정동길을 오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1915년 전차 노선이 복선화되며, 돈의문은 헐린다. 205원 50전에 낙찰되어 돈의문은 사라져 버렸다. 흔적도 없다. 새 문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문’이 되었다. 서대문구에 서대문이 없듯, 신문로에 돈의문은 없다.
신문로에 새문안교회와 구세군대한본영, 경희궁 자리에 경성중·고 터와 서울시 교육청과 서울역사박물관 그리고 새문안로와 새문안동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교회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펼친 듯 서 있다.
새 문의 역사을 안고 돈의문 터에 새롭게 세워질 새 문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듯하다. 인적이 없는 고요한 새벽 돈의문 터에서 새문안교회까지 걸어보면 어떨까? 새문안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가 신문로를 오가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모두 힘내자!!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