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충무공을 만나고 싶다
충무로는 한때 영화의 메카였다. 충무로 길가에는 대형 영화관과 영화제작사 그리고 영화 관련 필름집과 인쇄소가 즐비하였다. 충무로역 앞 대한극장과 을지로3가역에 명보극장 그리고 대각선 위치에 스카라극장과 중앙극장까지 충무로는 영화의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 충무로는 대한극장이 명맥만 유지한 채 멀티플렉스관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세월이 쏜살같이 흐르듯, 마치 시간은 영화와 같다.
충무로는 일제강점기 ‘혼마치(本町)’로 청계천 아래 일본 상인들의 상업 중심지였다. 이곳은 ‘마른내’라 불리는 작은 실개천이 흘렀다. 비가 올 때 목멱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로 냇물이 되고, 고갯길은 질척질척한 진고개가 되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었다. 마른내길은 중앙극장이 있는 저동에서 광희문을 지나 신당동까지 1.7km 이어진 청계천 아래 긴 물길이자 옛길이다. 마른내길은 도성 안 율곡로·종로·청계로·을지로·퇴계로와 함께 서울 사대문 안 동·서로 지나는 6대 간선도로 중 하나였다.
마른내가 있어서 붙여진 옛 이름이 건천동(乾川洞)이다. 건천동에서 태어난 사람 중 우리 가슴속에 항상 있는 위인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서애 유성룡’이다. 이순신이 마른내에서 활쏘기를 하고, 말을 타고, 다친 다리를 버드나무로 감싸며 무과 시험에 임했던 곳이다.
유년 시절 유성룡과 함께 책을 읽고, 뛰놀던 곳이 필동에서 건천동까지다.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가 바로 이곳에 있다. 일본 상인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충무공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불러주니 ‘충무로’에 활기가 돈다.
하지만 충무로에서 을지로 사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만날 수 없다. 일제강점기 시작을 알린 순종의 순정효황후 생가인 윤택영 가옥과 큰아버지 윤덕영의 가옥이 남산한옥마을에 복원되어있다. 아이러니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은 없다. 하지만 충무로와 충무로역 이름만 남았다.
마치 영화의 거리 충무로에 영화관은 없고 포스터만 나부끼듯, 충무로에 충무공 이순신 생가도 동상도 없다.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노량해전의 마지막 순간처럼 쓸쓸이 있을 뿐이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며 12척으로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충무로에서 이제는 만나고 싶다. 그날이 오면...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