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정치·경제·사회
HOME > 정치·경제·사회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27)

발행일 : 2022-02-15 11:32:29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27)

종묘에 없는 왕은 누구일까?

‘종묘와 사직에 의하면...종사를 지키시려면...’ 사극이나 영화에서 한번쯤 들어본 낯익은 대사다. ‘옷소매 붉은 끝동’ 정조와 의빈 성씨 이야기에서도 나오는 장면이다. 왕은 살아서 궁과 궐에, 죽어서 능에, 영혼은 종묘에 모셨다.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백악산에 올라 종묘와 사직단 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법궁인 경복궁을 지었다. 경복궁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사직단이, 창덕궁에서 10여 분 거리에 종묘가 있다. 경복궁보다 종묘와 사직단을 먼저 지었다. 600여 년 전 조선은 왜 궁보다 종묘와 사직단을 먼저 지었을까?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27)

종묘는 사직단만큼 신성한 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이 종묘에 있다. 단층으로 101m 길이다. 20개의 기둥과 19칸의 문은 보는 이에게 단조롭지만 엄숙하게 한다. 19위 왕과 30위 왕후 신주를 모시는 신성한 공간이다. 담은 높고 길어서 밖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남문과 동문·서문을 통해 거친 박석을 걸어야 왕과 왕후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이 도성 안 청계천 위에 있는 종묘 정전(正殿)이다.

종묘 정문을 들어서면 2개의 못이 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나무가 울창하게 바뀐다. 오른쪽 연못에 작은 섬도 있다. 동그란 섬 위에 나무가 커다랗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형적인 형태다. 모난 것은 땅에, 둥근 것은 하늘에 있다. 하늘은 우주처럼 둥글고, 땅은 바둑판처럼 모가나 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하는 이상적 사회를 꿈꾸며 지당도 만들었다. 자연의 이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다른 연못과 달리 생물은 없다. 물고기가 살지 않은 못이다. 물결의 흐름이나 요동도 허락하지 않는다. 소방전 역할도 했으니 지혜로운 공간이다.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27)

지금은 없지만 도성 밖 남지와 동지·서지처럼 못이 작지 않았다. 종묘 안 못은 3개의 지당이라 하였다. 상지·중지·하지였으나 현재는 2개다. 3도 즉 3개의 길 좌·우에 있는 못은 내용을 알고 걸으면 엄숙하고 경건하다.

지당은 고요하고 은은하여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3개의 길 위에 길을 걷는다. 정문에서 종묘 정전과 영녕전까지 3개의 길이 펼쳐져 있다. 신의 길과 왕의 길, 그리고 세자의 길이다. 길 위에 길이 또 있다. 길 위에 길을 찾아 걸어야 한다.

정전을 지나면 영녕전이다. 왕가의 조상과 자손의 평안을 기원하던 공간이다. 재위 기간이 짧았던 15위 왕과 19위 왕후가 모셔져 있다. 노산군으로 폐위된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도 복위 되어 모셨다. 지붕도 다르고, 박석도 다르다. 이곳이 종묘 영녕전(永寧殿)이다.

역사는 길 위에서 묻는다. 종묘에 신주가 없는 왕은 도대체 누구인가? 조선 27대 왕 중 신주가 2개나 없다. 왕이 아닌 군으로, 왕릉이 아닌 묘가 있을 뿐 종묘에 신주가 없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슬픈 역사 속에 지금껏 존재한다. 그들은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종묘는 고요하다. 새순이 움트는 소리와 꽃 피는 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만 들린다. 종묘는 단순하지만 격식이 있다. 단청은 없지만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다. 600여 년 동안 살아 숨 쉬는 역사가 이곳에 있다. 살아 있는 절대권력도 겸손과 예를 지켰던 공간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곳을 걷고 싶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

최신포토뉴스

위방향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