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여류 문인이 순창에 있다
순창에 가 보지 않아도 순창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산이 많고 물 맑은 순창은 오지다. 전라선을 타고 바로 갈 수도 없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도 멀다. 섬진강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다. 섬진강 상류에 있는 순창은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순박하고 창대한 고장, 양처럼 생겼지만 절의의 고장이 순창이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접경이다. 섬진강은 구비구비 순창을 감싼 후 지리산 자락으로 흘러간다.
순창에는 이름난 영산이 3개나 있다. 동학혁명과 의병 활동의 근거지 회문산과 용같이 우뚝 솟아 꿈틀거리는 용궐산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인 강천산이다. 산에 간다면 강천산을 빼놓을 수 없다. 여름에 가면 숲이 우겨진 폭포를 만날 수 있다.
가을에는 애기단풍이 강천사 가는 길을 감싼다. 역사 속 인물 찾아 걷고 싶다면 회문산을 가야 한다. 호남의 정신 반은 순창이요, 순창의 정신 반이 회문이다. 회문산에는 조선의 시작 무학대사도, 조선의 마지막 면암 최익현 선생도 머물다 갔다.
순창은 선비의 고장이다. 추령천 변에는 하서 김인후 성현이 있고, 훈몽재와 대학암이 있다. 정승 10명이 대제학 1명에 미치지 못하고, 대제학 10명이 문묘의 성현 1명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하서 김인후 선생은 우리나라 18현 중 유일한 호남인이다.
경천 변에는 귀래정 신말주 선생과 설씨 부인이 있다. 귀래정(歸來亭)에 오르면 왜 신말주가 한양도성에서 순창 객사 옆 남산마을까지 낙향했는지 알 수 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눈 깜짝하면 새로운 시대다. 따라가지 못하면 뒤쳐진다. 과연 그럴까? 순창에 가면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순창 남산에 오르면 오랜만에 외할머니댁에 온 듯한 느낌이다. 골목마다 따뜻한 돌담이 반긴다. 옛것이 남아 있어 오가는 사람들을 머물게 한다. 순창객사와 순창 향교에 600년 세월이 숨겨져 있다. 신사임당보다 70여 년 앞선 조선 최초의 여류 문장가이자 서화가가 ‘설(薛)씨 부인’이다.
설총의 28세손이며, 순창 설씨의 집성촌이 남산길에 있다. 귀래정의 주인이며, ‘권선문첩(勸善文帖)’에 글과 그림을 남긴 인물이 설씨 부인이다. 남산 정상에 있는 귀래정에 오르면 소나무와 참나무가 빼곡하게 있다. 바위와 바위틈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천지다.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소와 달팽이의 걸음처럼 느린 걸음이지만 끝까지 걷는 우직함이 이곳에 있다. 섬진강 물이 구비구비 산을 돌고 마을 지나 바다로 가듯, 길 위에 사람들이 제 갈 곳을 찾아가는 미학도 이곳에 있다.
가는 곳마다 고추장 명인들의 따뜻한 정이 있어 맵지만 달콤하다. 발효 음식의 보고가 바로 순창에 있다. 우주 내 모든 사람은 다 형제라는 순창 선비의 말씀이 귀전을 맴돈다. 꽃 지기 전 순창 그곳을 걷고 싶다. 함께 떠나실까요?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