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전봉준 상이 종각에 있다
흥인지문에서 종각을 향하는 길이 운종가다. 운종가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였다. 늘 사람들로 붐비고 흥정하는 소리와 종각의 종소리가 울리는 곳이다. 지금은 종로다. 종로를 걷다 보면 광장시장이 보인다. 한복 주단과 양복 원단은 모두 광장시장에서 팔았다. 청계천 위 마전교가 있던 곳, 소와 말을 사고 팔던 큰 시장이었다. 배오개시장 곧 이현시장이 있던 전통 재래시장이다. 야인시대 이정재와 시라소니도 광장시장 2층에 사무실이 있었다.
광장시장에 가면 가장 먹고 싶은 게 무엇일까? 사람마다 입맛과 추억이 다르지만 난 녹두 빈대떡과 육회다. 배고픈 청년 시절 비 오는 날 빈대떡 한 장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행복했다. 육회는 기다리고 기다리다 작심하고 먹었다. 녹두 빈대떡에 들어가는 녹두는 찬 음식이지만 맛있다. 작지만 옹골차다. 녹두꽃이 피어야 녹두를 수확할 수 있다. 녹두가 좋아야 녹두전도 맛있다. 녹두전을 먹은 후 오랜만에 마스크 없이 청계천으로 발길을 옮긴다.
청계천 물길을 거슬러 모전교에서 광교까지 걷는다. 오가는 사람들의 미소 띤 얼굴을 참 오랜만에 본다. 즐겁지만 마냥 즐겁지 않은 듯 마스크를 꾹 눌러쓴 사람도 있다. 야외지만 마스크를 안 쓴 모습은 아직 낯설다. 광교 아래에서 올라오니 종각이 보인다. 커다란 종이 걸려 있는 종각에 ‘보신각(普信閣)’ 현판이 왠지 무겁게 느껴진다. 종로의 중심에 종각이 있다. 종각은 종을 울려야 제 몫이다. 언제쯤 보신각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보신각에서 종각역을 바라보니 전봉준 장군이 앉아 있다. 매서운 눈빛, 꼿꼿한 허리, 불끈 쥔 주먹, 다리를 걸치며 오른손을 바닥에 받치고 앉아 있다. 정읍에서 회문산을 넘으면 순창 쌍치 피노리다. 우리나라 십승지 중 하나인 순창 회문산에서 김경천의 밀고로 붙잡혀 도성 안으로 압송되었다. 종각이 있는 이곳이 전옥서 옛 감옥터다. 속전속결 1895년 전옥서에서 첫 재판을 받고, 종로 한복판에서 한밤중에 손화중, 최경선, 성두환, 김덕명과 함께 교수형을 당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120여 년 전 '파랑새' 노랫소리가 종각 안 연두색 나뭇잎에서 울려 퍼진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종각에서 127년 전 41세의 나이로 별이 되었다. 시간은 흘러 2018년 종각역 5번과 6번 출구 사이 녹두장군 전봉준 상을 세웠다. 이곳은 전봉준 거리다. 보신각 건너 탑골 공원과 낙원상가 지나 수운회관까지는 동학의 길이자, 전봉준 선생을 기리는 기억의 공간이다.
수운 최제우에서 해월 최시형 그리고 녹두 전봉준까지 동학의 정신이 흐르는 곳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 오늘 그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종각에 가면 보신각 종이 울리듯, 종각역에 가면 녹두장군 전봉준 상이 웃는다. 5월에는 종각에서 녹두꽃을 만나고 싶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