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 안 낙타산에 바티칸(Vatican)이 있다
땀이 주르륵 흐르는 무더운 여름 혜화역을 나선다. 혜화역 1번 출구를 나오는 순간 젊은 청춘들이 물밀듯 다가온다. 청춘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마로니에 공원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따라가 볼까 하다가 발걸음을 돌린다. 대학로는 젊음의 거리다. 왜 대학로라고 했을까? 대학은 몇 개 없는데 대학로다. 그 옛날 마로니에 나무가 있는 이곳은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다. 법대와 의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도성 안에 가톨릭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용산 신학교가 혜화동으로 이전 후 줄곧 가톨릭대학교가 있던 곳이다.
600여 년 유교의 나라, 인·의·예·지·신 오행을 지탱한 성균관 옆에 가톨릭 성지가 있다. 성균관대학교가 있는 명륜동, 가톨릭대학교가 있는 혜화동은 어울리지 않는 듯 조화롭다. 혜화문에서 낙타산 정상을 가기 전 도성 안은 가톨릭 땅이었다. 수많은 박해 속에 순교자들이 성인이 되며, 도성 안에 자리를 잡았다. 혜화동 로터리를 가기 전 동성중·고를 지난다. 오랜 전통을 가진 가톨릭 학교다. 바보를 자칭한 김수환 추기경이 이 학교 이사장으로 가장 낮은 자세로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혜화동성당을 지나니 혜화칼국수가 생각난다. 비가 오면 들렀던 칼국수 맛집이다. 걸쭉한 국물과 직접 만든 수제 칼국수에 애호박이 듬성듬성 올라가 입맛을 당긴다. 여름날 엄마 손맛이다. 먹고 갈까 이따 먹을까? 고민하는 사이 발걸음은 벌써 혜화유치원 언덕길을 올라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이다. 느티나무로 둘러싸인 아스팔트 길은 시원한 바람과 그늘이 반긴다. 오래된 석조 건물 앞 은행이 가득 열린 은행나무에서 걸음이 멈춘다. 우리나라 첫 번째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상이 서 있다. 고개 숙여 성호를 그려 인사한다. 그 뒤에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양업관이 있다. 지혜관을 향하는 길은 고요하다.
낙타산 정상에서 혜화문 가는 성곽길은 언제나 도성 밖으로 걸었다. 높은 성벽과 굳게 닫힌 담벼락 속 철문은 마치 국경과 같다. 그러나 드디어 이웃을 만나 꿈이 이루어졌다. 허근 바르톨로메오 신부 덕분에 김수환 추기경의 숙소와 선종한 건물에 이르렀다. ‘우리 곁에 왔던 성자’ 같은 바보 김수환 추기경의 탄생 100주년에 성물 같은 선물을 받았다. ‘주는 마음은 너그러운 마음이다.’ 베푸는 삶은 넉넉하고 위대한 지혜로움이다. 자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도성 안 숨겨진 낙산 23·24·25구간을 홀로 걷는다. 이 길은 마치 순례길과 같다.
복잡한 세상 잠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거창하게 피정(避靜)은 아니라도 마음과 언행을 정리하며 길을 걷는다.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길 위에 서 있다. 함께 걸어 보실까요~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