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궁담길 안 ‘쉬나무’를 아시나요?
비 그친 여름날 구름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백악산에 내린 빗물은 어디로 갈까? 백악산 정상 백악마루에 빗물이 빠르게 스며든다. 빗물이 마르기 전 물길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내려간다. 백악마루에서 숙정문을 향하는 백악구간 표지석 1, 2, 3, 4...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표지석 숫자는 한양도성 성곽길 시계방향으로 같은 간격에 따라 하나씩 줄지어 있다. 한양도성 성곽길을 한 바퀴 다 돌면 표지석 숫자는 몇일까? 답을 찾아 내려간다. 숙정문 지나 말바위에서 삼청공원으로 내려가니 비가 서서히 멈춘다.
감사원에서 북촌 한옥마을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다. 빗물 따라 걸으니 어느새 창덕궁이 보인다. 이른 시간 돈화문이 열리기 전 창덕궁 궁담길 안과 밖 나무들이 손짓을 한다. 돈화문에서 왼편을 보니 종묘 안 숲이 우거져 있다. 날이 개니 새들이 날고, 꿀벌들이 윙윙 거린다. 서울 한복판 빌딩과 빌딩 숲에 울창한 나무가 빼곡하다.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종묘에 꽤 오래된 나무들이 즐비하다. 백악산 기슭 삼청공원과 와룡공원 따라 궁·궐 주변은 숲속과 같다. 돈화문 월대 옆 500년 된 은행나무가 비를 머금고 활짝 웃는다.
현대그룹 사옥과 창덕궁은 현대와 전통이 어울리는 듯, 궁담길 주변에 오래된 나무에 향기까지 달콤하다. 꽃이 드문 한여름에 창덕궁 안 하얀 꽃이 송이송이 피었다. 돈화문이 열리는 시간 제일 먼저 들어간다. 창덕궁 정문을 지나니 저 멀리 삼각산 보현봉도 손에 잡힐 듯 구름 한 점 없다. 금천교 지나 진선문 가기 전 궁담길에 키 큰 나무가 있다. 여름철 꽃이 피는 ‘쉬나무’다. 이름이 재미있다. 7월에 꽃 피어 꿀벌들의 밀원이 되는 향기로운 나무다. 10월에 붉은빛 열매로 기름을 짜 궁·궐 구석구석 환하게 밝혔다. 등불과 호롱불에 기름을 만드는 나무로 수유나무가 바로 ‘쉬나무’다.
선비들이 살던 동네에 쉬나무가 있었다. 암나무와 숫나무로 구분된 암수딴그루로 귀중한 나무다. 모양이 아름답고, 꽃과 잎을 문지르면 귤 향이 나는 향기로운 나무다. 기품을 갖춘 나무로 꿀벌들에게 한여름 장마철에 소중한 나무다. 열매로 기름을 짜 궁·궐의 어둠을 밝혔던 나무다. 도성 안 목멱산은 쉬나무가 많아 꿀벌나라를 만들 수 있다. 쉬나무는 영어로 ‘Bee-bee Tree’라 한다. 지구온난화와 급격한 기후변화로 꿀벌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아까시나무가 사라지니, 꿀벌들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도심 속 창덕궁과 창경궁에 쉬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생태의 보고인 밀원식물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 한여름 하얀 꽃 피는 창덕궁 안 쉬나무와 꿀벌을 찾아 함께 걸어 보면 어떨까. 꿈과 희망이 그곳에 있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