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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46)

발행일 : 2022-07-25 17:52:06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46)

서울에 ‘한양공원’이 있었다

바람은 없고 햇볕이 쨍쨍한 아침,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비 그친 후 몸이 끈적거린다. 무작정 버스에 오른다. 이른 시간 사람은 없고, 버스 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내리길 주저하게 한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 숭례문 앞에서 내린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사이 발걸음은 벌써 남대문시장을 향한다. 갈치조림 골목길 지나 건물과 건물 사이 포장마차 같은 맛집에서 해장 칼국수를 먹는다. 쫄깃한 면발과 신선한 열무김치에 한 그릇 뚝딱 국물까지 마셨다. 문을 열고 나서니 회현역 3번 출구다. 사람이 없을 때 올라가야 여유롭다.

회현동 은행나무가 보이는 목멱산 오르막길로 걷는다. 편안한 길이지만 차츰 경사가 커지는 언덕길이다. 남산 3호터널 입구 위에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한다. 아차, 저것을 탔으면 땀 없이 갈 수 있었을텐데...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숨이 가쁘다.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46)

그래도 그냥 걷는다. 일신교회 앞 쌍회정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오래된 석조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공존하고 있다. 숨을 헐떡이며 걷는 순간 도심 속 엘리베이터가 기다린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은 그야말로 빙하 속 이글루 같다. 내릴까 말까 한참을 있다가 길을 나선다.

남산 순환도로다. 백범광장이 보이는 이곳은 소파로와 소월로가 겹치는 삼거리다. 남산 케이블카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간다. 목멱산 이름은 사라지고 모든 표지판이 남산이다. 남산을 사랑(?)한 일본과 목멱산(木覓山)을 지키는 사람들 이곳은 도심 속 소나무가 울창한 명산이자 영산이다.

목멱산 둘레길로 걸어가는 순간 커다란 비석이 배롱나무 아래에서 손짓한다. 발걸음을 옮겨 그곳으로 간다. 버스 정류장 옆 남산 3호터널이 보이는 이곳에 비가 있다. ‘한양공원(漢陽公園)’을 알리는 비다. 누구의 글씨일까? 가까이 다가가 살핀다.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46)

한양도성 안 ‘한양공원’이 있었다. 남산을 사랑(?)한 일본인 거류지역에 남산공원이 아닌 한양공원 이름으로 우뚝 서 있었다. 1910년 5월 29일 고종이 직접 쓴 글씨다. 힘찬 글씨에 한 글자 한 글자 서러움이 느껴진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이미 기울어진 대한제국의 마지막 순간, 목멱산 기슭 30만 평을 무상 임대 해 준 그 자리에 ‘한양공원 비’가 있다. 노기신사와 경성신사 그리고 통감부가 있던 왜장대 가는 길 위에 한양공원 비가 오롯이 서 있다. 아이러니한 비석이다. 가까이 더 가까이 가는 순간 비석의 뒷면은 아무런 글자가 없다. 모두 다 파헤쳐진 파비석이다. 무엇이 있었을까?

보면 볼수록 궁금해진다. 비에 젖은 ‘한양공원 비’ 뒷면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자료도 없다. 여러분이 와 보아야 한양공원이 다시 살아날 것 같다. 함께 걸어가 볼까요?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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