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에 ‘백석동천’ 별천지가 있다
백악산 기슭 백석동천(白石洞天) 별유천지가 있다. 백석에 동천이다. 백석은 하얀 바위가 있어 백악이요, 동천은 산과 천으로 우거진 곳에 하늘도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비 오면 하얀 바위가 비를 머금고, 내뿜는 물줄기는 계곡이 되어 흐른다.
비가 많아지는 8월 백사실계곡은 순식간에 폭포로 변한다. 도성 밖 600여 년 전 삼각산과 백악산 사이 깊은 산속에 별서가 있었다. 느티나무가 울창한 곳에 주춧돌과 연못이 있다. 계곡물을 끌어드린 연못 가장자리에 주춧돌 6개와 기둥을 갖춘 육각정이 있었다. 누구의 별서였을까?
계곡 위에 연못이 있고, 연못 위에 600여 평이 넘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었다. 사대문 안 대궐 같은 집이 있고, 사대문 밖 산속 깊숙한 곳에 자연을 벗 삼아 별서가 있었다. 백사 이항복의 것인지, 추사 김정희의 것인지 시간을 떠나 지금 살아도 서울 안 별장으로 손색이 없다.
백석동천은 백석정(白石亭), 백석실(白石室), 백사실(白沙室) 등으로 불리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이 되었다. 청정 1급수에만 산다는 도롱뇽과 무당개구리가 맑은 계곡물에서 방금이라도 뛰어나올 듯하다. 가재도 보인다. 비 오는 날 백사실계곡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서울 한복판 가장 청정한 곳이다.
우렁찬 빗소리에 새들은 숨죽인다. 물이 차오르는 연못가에 고마리라는 한해살이 풀꽃이 여뀌꽃처럼 붉은빛을 내며 피고 있다. 습지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전통 들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인왕산 기차바위와 세검정도 구름이 거치니 보인다.
밤이 되면 누마루 서쪽에 달이 머문다는 월암(月巖) 바위가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매월 초승달이 떠오르는 이 바위에서 무엇을 하였을까? 월암, 달 바위에 앉아 시와 함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빗소리를 들으며 오솔길을 걸으니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白石洞天(백석동천)이라 새겨진 각자바위가 보인다.
백사골에 숲이 만들어 놓은 동천이다. 주변에 하얀 돌이 많고, 하늘을 가릴듯한 울창한 숲이다. 수 백년이 넘어 보이는 소나무가 자태를 뽐내며 백석동천 바위 옆에 우뚝 서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백석동천 각자는 언제 누가 새겼는지 잘 모른다.
도심 한복판 이처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우리 곁에 있다. 잘 보존된 아름다운 별서터다. 절기별로 피는 연못 속 들꽃들과 칡넝쿨이 우거진 습지 그리고 비 오는 날 계곡이 폭포로 변하는 이곳은 서울에 숨겨진 지붕 없는 자연박물관이다.
서울 도심 속 자연의 모습이 부암동 백사실계곡에 숨겨져 있다. 그곳에 머물고 싶다. 8월 그곳으로 함께 가 보실까요?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