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가는 길 남원에 ‘혼불문학관’이 있다
갑자기 내린 비로 온 천하가 물난리 속에 휩싸였다. 내리는 비의 양이 너무도 많다. 집중적으로 쏟아진 비는 강남을 삼켜 버렸다. 해마다 기후가 불안전하다. 비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치수를 철저하게 해야할 시간이 왔다. 빗속을 뚫고 산 넘어 남으로 내려간다. 비구름이 중부를 지나 호남까지 가고 있다. 완주 소양을 지나니 산속에 비치는 해가 눈이 부신다.
폭우 뒤에 폭염이다. 한반도가 넓은 것인지 비구름이 집중적으로 이동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텅 빈 도로 위 사방이 산이다. 저 멀리 지리산 줄기가 보이는 순간 사매라고 네비게이션이 울린다.
사매가 어디일까? 이정표를 따라 들어간다. 간이역이 보이는 동네다. KTX가 달리는 전라선에 작은 서도역이 보인다. 자세히 들어가 보니 영화와 드라마 속에 등장한 간이역이다. 일제강점기 이곳에 최명희 작가의 집안이 살았다.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다.
작가는 젊은 시절 목멱산 아래 첫 동네, 해방촌에서도 교편을 잡았다. 보성여고 국어 선생님으로 9년을 해방촌에서 지냈다. 용산시대 용산에서 활동한 분을 ‘혼불문학관’에서 만나는 우연이 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아마도 시절인연이 여기서 통하는 말은 아닐까.
남원의 양반촌 매안 이씨 집안의 종부 3대에 얽힌 이야기다. 청상의 몸으로 기울어져 가는 집안을 다시 세우는 청암 부인이 있었다. 그리고 종손을 낳은 율촌댁, 허약한 종손과 결혼한 효원이 소설 속 주인공이다. 양반사회와 일반 민중의 복잡한 이야기가 소설에 있다.
일제강점기 처절한 삶 속에 또 다른 상반된 계급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조상의 이야기다. 작가는 소설 속에 당시의 풍속을 자연스럽게 끌어내었다. 혼례식과 연 이야기, 청암 부인의 장례식, 숨겨온 유자광과 조광조 이야기까지 혼불 안에 불을 지폈다. 더욱이 백제에 얽힌 이야기도 새롭게 전개하였다.
남원 사매 노봉마을은 삭녕 최씨의 500년 세거지다. 작가의 아버지는 와세다대학에 유학 갈 정도의 당대 지식인이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전주에서 대학 때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월간 신동아에 7년 2개월간 ‘혼불’을 연재도 하였다.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다. 아쉽게도 난소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뒷동산에 영면해 계신다. 작가는 ‘비록 콩껍질이 말라서 비틀어져 시든다 해도, 그 속에 든 콩은 잠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새 숨을 기르다가 다시 싹터 무수한 열매를 맺는다’며 글을 마친다.
햇살이 따가운 늦여름 특별한 시간여행을 한다. 언제가도 정겨운 공간, 남원 ‘혼불문학관’에서 맑고 푸르스름한 빛을 만난다.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