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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56)

발행일 : 2022-11-11 10:15:58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56)

‘을씨년스럽다’ 어원은 중명전 을사늑약이다

소설이 가까워지니 찬바람이 가슴팍까지 밀려온다. 경운궁 대한문 지나 궁담길을 걷다 보니 키 큰 플라타너스 나뭇잎들이 나뒹굴고 있다. 앙상한 가지에 바람만 세차게 분다. 정동길 거리는 찬바람에 쓸쓸하고 스산함 마저 드는 11월이다. 며칠 전 대규모 인명 피해에 모두 다 우울하고 싸늘한 분위기다. 어른들이 쓰는 말씀 중 으스스한 바람에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먹구름에 가린 하늘은 눈이라도 금방 내릴 것 같다. 을씨년스럽다는 언제부터 썼던 말일까?

경운궁 중명전으로 들어가니 주변은 높은 담벼락에 쇠창살까지 있다. 태극기는 온데간데없고 높은 담벼락 너머 성조기만 나부낀다. 여기는 어디인가?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정동제일교회를 지나 골목길 마지막에 적벽돌로 된 단아한 2층 건물이 있다. 중명전(重眀殿)이다. 현판 속 한자마저 기이하다. 밝을 ‘명(明)’이 아니라 밝게 볼 ‘명(眀)’이다. 이름 속에 답이 있다. 중명전은 1899년경 대한제국 황실 도서관이었다. 그러나 중명전은 1904년 경운궁 대화재로 또다시 갈 곳 없는 고종 황제의 거처로 쓰인 공간이다.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56)

하지만 1905년 11월 17일 일본의 강압적인 분위기로 중명전은 을사늑약의 현장이 되었다. 대한제국 광무 9년 모든 것은 올스톱 되었다. 대한제국도, 대한제국에 사는 국민들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모든 외교권이 박탈당했다. 심지어 외국에 파견 나가 있던 모든 외교 기관도 동시에 폐쇄되었다. 한반도는 갑자기 침통하고 참담한 늪에 빠졌다. 치욕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을사년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온 나라가 침통하고 우울한 구렁텅이로 빠져 버렸다.

1905년 11월 30일 민영환은 대세가 기울어짐을 보고 집에서 자결로 비분강개하였다. 망국의 슬픔을 죽음으로 달랬다. 또한 1905년 12월 1일 조병세도 경운궁 대한문 앞에서 석고대죄하며, 을사늑약의 파기를 주장하다 동포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도성 안 모든 사람들은 슬프고 분한 감정에 어수선하였다. 이후에도 작고 큰 조짐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마치 을사년(乙巳年)과 같다고 해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을 이때부터 쓰게 되었다.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56)

요사이 날씨가 요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진다. 경운궁 대한문 앞을 걷는데 노란 은행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에 적막한 노래까지 들려 더욱 애달프다. 스산한 날씨에 따끈한 어묵 국물이 그립다.

필자 소개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사무차장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자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 저자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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