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사이에 두고 '장릉'이 2개나 있다
600여 년 전 서울을 걷다 보면 도성 안과 도성 밖은 분명한 경계다. 도성 안에 종묘와 사직단 그리고 법궁이 있다. 왕이 사는 곳이 법궁이요, 정궁이다. 왕은 살아서 궁에 죽어서 능에 그리고 그 영혼은 종묘에 모셨다.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왕이 죽으면 어디로 갔을까? 바로 왕의 무덤인 능으로 간다.
능은 각각 능호를 갖는다. 27대 왕의 능 이름은 모두 다르다. 또한 세자와 세자빈의 묘는 원이요, 대군과 군의 무덤은 그냥 묘다. 대원군의 무덤 역시 묘다. 왕과 왕비의 무덤만이 오로지 능이다. 왕릉은 신성하고 엄숙한 성역으로 여겼다.
519년 조선 왕과 왕비의 능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개성에 자리한 왕릉 2기를 제외하면 서울과 수도권에 40기가 있다. 왕릉 40기 모두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양도성 밖 서쪽에 서삼릉과 서오릉이 있고, 동쪽에 동구릉이 있다.
서울에 정릉과 의릉 그리고 태릉이 있고, 한강 아래 선·정릉과 헌·인릉 그리고 여주에 영릉이 있다. 영월에는 노산군 묘가 추봉 되어 단종의 능으로 장릉(莊陵)이 되었다. 그런데 한강 하류에 '장릉'이 또 있다. 한 곳이 아니라 두 곳이나 있다. 과연 이 장릉은 누구의 능일까?
한양도성 성저십리를 넘어 성저팔십리에 왕릉이 있다. 죽은 자가 머무는 곳, 산자가 찾아가 존경을 표하는 곳이 곧 왕릉이다. 한강 변 행주산성을 지나 임진강 교하 가기 전 김포의 나즈막한 150m 산에 능이 있다. 정자각 위 쌍릉이다.
이 왕릉 근처에는 석물이 많지 않다. 단촐한 능이지만, 햇볕이 오랫동안 머무는 명당이다. 숲이 우거진 능 아래에 연지와 저수지까지 있다. 청둥오리들이 노는 청정한 물이 흐르는 고요한 곳이다. 그러나 요즘 가장 소란하다. 부동산만의 문제일까? 예나 지금이나 시끄럽다. 인조의 아버지 원종과 어머니 인헌왕후 능이 장릉(章陵)이다.
원종은 추존된 왕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로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정원군이었다. 광해군이 임진왜란에서 분조로 의병을 모을 때 정원군은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 갈 때 정원군은 사후에 정원대원군이 되었다. 다시 인조 재위 10년 만에 왕으로 추존된 원종은 김포 장릉으로 이장되었다. 정원대원군의 묘가 장릉으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이다.
역사는 흘러 인조도 죽어 아버지 원종 곁으로 간다. 김포 장릉과 일직선상 25km 위 한강 건너 파주 장릉(長陵)에 묻힌다. 이름이 같은 '장릉'이다. 아버지를 사랑한 것일까, 한강을 잊지 못한 것일까? ‘한강 아리랑’ 노랫가락만이 두 장릉 사이에 애닯게 울려 퍼진다.
필자 소개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사무차장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자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 저자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