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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60)

발행일 : 2022-12-08 14:29:04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60)

‘한양도성에 얽힌 이야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600여 년 전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삼각산과 백악산 그리고 목멱산 아래 한강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한강은 바다인지 강물인지 세곡선과 어선들로 매일 넘실거린다. 조선의 수도로 특이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다.

백악산 아래 종묘와 인왕산 기슭 사직단을 지으니 한양의 모습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왕은 어디에서 살 것인가? <주례고공기>에 왕은 ‘북좌남면 좌묘우사’하여 종묘와 사직단을 완성한 후 백악산 아래 경복궁을 짓는다. <시경>에 ‘군자만년 개이경복’에서 이름을 따 큰 복 주는 경복궁(景福宮)이 되었다.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60)

1395년(태조 4) 11월 27일 왕이 사는 법궁이자 정궁인 경복궁 완공 후 도성을 쌓는다. 한양도성은 과연 누가 쌓았을까? 600여 년 전 한양의 인구는 20만 여 명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전국에서 197,400명이 올라와 98일 동안 농한기에 나누어 쌓았다. 백악산에서 시계방향으로 낙타산과 목멱산 그리고 인왕산을 97구간으로 나누었다.

자연 친화적으로 18.627km의 성벽을 쌓고, 사대문과 사소문을 달았다. 대역사가 이제 새로운 역사가 되었다. 한양도성 성벽과 성돌 하나하나에 그들의 땀과 피 그리고 눈물이 녹아 있었다. 보신각 새벽 종소리에 시작한 성 쌓기는 한밤중 종소리에 마치니 사람들은 지쳐 쓰러졌다. 누구를 위한 성 쌓기인가?

도성이 완성되니 수도로써 한양은 권위를 갖춘다. 도성 안 종묘와 사직단 그리고 경복궁이 그 위엄을 알린다. 도성 밖 성저십리까지 한강은 도시와 지방의 경계이자 삶과 죽음의 생명선과 같았다. 도성 안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 2층 누각은 숭례문까지 가장 높은 건물로 장안의 자랑이요, 600여 년 전 서울의 상징이자 심장과도 같았다.

또한 도성 안 청계천과 도성 밖 만초천 및 성북천은 한강을 향해 흘러 물이 모두 모였다. 한강도 동네마다 각각의 이름이 있었다. 동쪽의 호수 동호, 목멱산 아래 경강, 만초천 만나는 용산강, 홍제천 흘러 서강과 양화진이 한양의 끝이자, 경기의 시작이었다.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60)

한양도성은 600여 년 전 만들어진 계획적인 도읍지 성곽이다. 4개의 산과 4개의 대문 그리고 4개의 소문이 동서남북으로 이어진 건축과 토목의 집대성이다. 청계천 위 경복궁 근정전을 중심으로 남북 일직선상에 문들도 주도면밀하게 지었다.

궁담길 따라 광화문에서 신무문 사이에 흥례문과 근정문 그리고 향오문 및 사정문까지 법궁 안 문들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또한 도성에 남북방향으로 9개 도로와 동서방향으로 9개 도로 그리고 도로의 폭과 시장의 크기까지 계획과 원칙하에 이루어진 도시가 한양이요, 그 둘레에 쌓여진 성곽이 한양도성(漢陽都城)이다.

한양도성은 600년 서울의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살아 숨 쉬는 문화 그 자체다. 수많은 나라에 성곽이 있지만 성곽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는 드물다. 한양도성은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어야 한다. 한양도성 따라 600년 서울을 함께 걸어 볼까요?

필자 소개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사무차장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자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 저자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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