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변 하드탑을 장착한 SLK는 로드스터의 이단아로 등장해서 고급스럽고 안락한 소형 스포츠카로만 인식되어 왔지만 2세대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스포츠카다운 면모를 더욱 강화했다. 305마력을 발휘하는 V6 엔진은 고회전 영역까지 소화하면서 매끄럽고도 넘치는 파워를 뿜어내고, 회전수 매칭 기능과 시프트 패들이 더해진 7G 트로닉 변속기는 보다 다이나믹한 코너링을 보장한다. 바리오루프와 에어 스카프 덕분에 한 겨울에도 마음껏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매력은 여전하다. 글,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메르세데스-벤츠 모델들 중에서 뉴 제너레이션이 이렇게 알차게 변화한 예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페이스리프트 된 SLK350은 그 동안 아쉽게 여겨졌던 스포츠카의 근성을 몰라보게 강화했다. 사실 이런 부분은 SLK를 그냥 예쁜 오픈카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또 바뀐 부분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는 부분들이다. 하지만 2세대 SLK가 등장하면서 F1 머신을 닮은 멋진 스타일과 강력해진 V6 엔진을 통해 진정한 스포츠카의 재미를 찾아 열심히 헤매고 다녔던 이들에게는 지극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뉴 제너레이션 SLK350이 국내에 소개되고 반년이 되었지만 그 진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의외다. 이제 더욱 빛나는 보석으로 연마된 SLK350의 새로운 매력을 만나보자. 서두가 찬양일색인 이유는 그 만큼 정곡을 찌른 변화가 반가웠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치고는 지나치게 짧은 차체 길이나 스포츠카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가변 하드탑, ‘바리오 루프’에 대한 논란 등은 차치하고, 스포츠카로 SLK를 즐기기에 2% 부족했던 부분을 충분히 만족할 만큼 채워준 페이스리프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말이 나왔으니 가변 하드탑 루프 이야기 먼저 잠깐 하고 넘어가자. 결론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선택이 옳았다. 푸조(물론 가변 하드탑의 원조가 몇 세대 이전의 푸조이긴 하지만)나 오펠, 르노 정도가 따라 올 땐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다. 렉서스 SC430만 해도 아쉬움이 남긴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그녀가…… 볼보 S70과 폭스바겐 이오스, BMW 3시리즈에 3단 가변 하드탑이 등장하면서 대세론으로 굳어지는 분위기가 되었다. 앞 뒤 무게 배분에 목숨(?)을 거는 BMW는 절대 가변 하드톱을 만들지 않겠다고 단언했었지만, 이제는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3시리즈는 물론 퍼포먼스 카의 대명사인 M3와 신형 Z4에까지 가변 하드탑을 달기에 이르렀다. 인피니티 G37 컨버터블,마쓰다 MX5 등 일본산 스포츠모델들도 줄줄이 가변 하드탑을 선택했고, 그리고 마침내 ‘페라리 너마저’ 캘리포니아를 선보이게 되었으니 이쯤 되면 선견지명을 보여준 메르세데스-벤츠에 찬양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남은 건 포르쉐? 가변 하드탑을 만드는 메이커의 대표 주자인 CTS(Car Top System)가 포르쉐의 소유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정작 911과 박스터는 리어와 미드십 엔진 구조상 가변 하드탑 적용이 불가능해 보이니 당분간 포르쉐에서 가변 하드탑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변 하드탑의 진화도 재미있다. 처음 SLK가 등장하고 뒤이어 SL이 등장하면서 진화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뒷 유리 부분이 프레임과 분리되어 뒤집어져서 포개지는가 하면 탑을 트렁크에 넣어 놓은 상태에서도 포개진 탑을 살짝 들어 올려 그 아래 짐을 싣고 내리기 편하게 한 기능(SLK에도 이 기능을 달아주면 정말 좋을 텐데……) 등은 정말 획기적이었다. 반면 메르세데스-벤츠는 아직까지 2인승 로드스터에만 가변 하드탑을 적용하다 보니 2단 변신 하드탑 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은데, 볼보와 BMW가 3단 변신 하드탑을 선보이면서 이제는 4인승 모델에까지 그 적용 범위가 확대되었고, 폭스바겐 이오스에는 가변 하드탑에 썬루프까지도 더해졌다. 그리고 중저가 컨버터블 중 가장 넓은 4인승의 실내를 자랑하는 크라이슬러 세브링 컨버터블마저 가변 하드탑을 적용하면서 그 매력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원조인 SLK는 어떻게 변했을까? 데뷔 당시 3파전을 이루었던 Z3와 박스터, 그리고 SLK 중에서는 너무나 독특한 바리오루프로 인해 다른 모델들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단지 바리오루프를 장착했다는 것만으로는 매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메르세데스-벤츠는 SLK를 멋진 스포츠카로 탈바꿈 시키기에 이른 듯하다.
1세대 SLK에서 주를 이루었던 그레이드가 SLK 230K였다면 2세대에서는 강력한 V6 엔진을 얹은 SLK350의 비중이 월등히 커졌다. 그랬는데 이번 뉴 제너레이션에서는 그 V6 엔진을 다시 더욱 강력하게 손봐 출력은 높아지고, 동시에 연비와 CO2 배출량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졌다. 273마력이던 최고 출력이 무려 32마력이나 높아져 305마력/6,500rpm이 되었고 최대토크도 35.7kg.m에서 36.7kg.m/4,900rpm으로 향상되었다. 이로 인해 0~100km/h 가속시간이 5.5초에서 5.4초로 0.1초 단축되었는데, 사실 0.1초 단축이라는 수치는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실제 주행에서 느끼는 부분은 그 이상이었다. 우선 가장 큰 차이는 최고 회전수가 6,800rpm까지 높아지고 순간적으로는 7,200rpm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실제 주행에서는 계기판상으로 7,500rpm까지 회전이 상승했다. 그 만큼 회전 상승도 더 매끄러워졌다. 6천rpm을 넘어서 7,500rpm까지 올라가는 엔진은 이전 SLK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매력적인 사운드도 함께 제공한다. 그리고 회전 상승의 예리함도 끝까지 무뎌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메르세데스-벤츠 엔진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영역을 SLK가 새롭게 선보인 것이다. 같은 엔진을 사용하는 CLS350에서도 계기판 상의 레드존이 6,500rpm인 것을 생각하면 메르세데스-벤츠가 SLK를 스포츠카로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게 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SLK를 통해 선보인 이 새로운 고회전 엔진을 Fast-running 스포츠 엔진이라고 부른다. 또 하나 매력적인 변화는 엔진 사운드와 배기시스템이다. 2세대 SLK가 등장하면서 엔진 사운드를 덮어버리는 배기사운드가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시내 주행에서조차도 불편함을 느낄 만큼 시끄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뉴 제너레이션에서는 배기 사운드를 다시 손봐 저속에서는 중후한 배기 사운드를 즐길 수 있고, 고회전 영역에서는 매력적인 엔진 사운드를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배기 사운드의 변화는 다분히 Z4를 의식한 듯 보이기도 한다. Z4가 데뷔 당시 엔진 사운드를 덮어 버리는 배기음을 선보이다가 페이스리프트 되면서 다시 엔진 사운드를 살리는 쪽으로 개선했었다. 어쨌든 메르세데스-벤츠 엔진에서 이처럼 고회전에서 뿜어나오는 매력적인 엔진 사운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변속기 다단화에 불을 지폈던 메르세데스-벤츠의 7G 트로닉과 어우러진 SLK 350은 50, 80, 130, 180, 그리고 250km/h에서 각각 변속한다. 250km/h까지 이르는 5단에서 가속력이 여전히 강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6단으로 변속한 후에도 가속력이 꾸준히 살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6단 6,000rpm에서 계기상 260km/h를 찍고는 속도 제한에 걸리는데, 제한을 풀면 충분히 더욱 가속할 만큼의 힘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신나게 250km/h를 넘나드는 고속 영역을 즐긴 후에 마침내 지붕을 열고 도전해 보았다. 어떤 변화가 있을까? 설마 아수라장이 되는 건 아니겠지? SLK350은 지붕을 열고도 가뿐하게 260km/h를 마크했고, 그 속도에서도 실내는 큰 소란 없이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승이 겨울에 이루어진 것도 감사한 것이 SLK가 자랑하는 에어 스카프의 매력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팁을 하나 공개하자면, 그 정도의 고속에서는 머리를 헤드레스트에 붙여야만 에어 스카프의 따뜻한 바람이 목을 감쌀 수 있었다.
이제 변속기 이야기를 해 보자. 그 동안 누누이 메르세데스-벤츠의 터치 시프트는 무늬만 스텝트로닉이라고 이야기해 왔었는데, 이제는 ‘M’ 모드를 사용하면 제대로 된 스텝트로닉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패들 시프트의 적용도 반갑다. 예전에 스티어링 휠 스포크 뒷면에 버튼 형식으로 붙어 있었던 변속장치는 볼 수가 없을뿐더러 작동도 불편했었는데, 패들 시프트의 적용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코너를 달리는 재미가 더해졌다. 그리고 7G 트로닉으로서는 처음으로 회전수 매칭 기능이 더해진 점 또한 환영할 부분이다. 기어를 내릴 때 자동으로 회전수를 높여서 기어를 변환해 줌으로 인해 변속이 부드럽고, 충격으로 인한 하중이동 등의 부작용이 없어 보다 정교한 코너링이 가능해졌다. 메르세데스-벤츠로서는 SL63 AMG에 적용된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인 MCT에 이어 SLK에 두 번째로 회전수 매칭 기능이 더해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주행에서 회전수 매칭 실력은 기대에 살짝 못 미쳤는데 아주 미세하긴 하지만 약간의 울컥하는 반응이 감지되었다. 좀더 빠르고 매끄럽게 다듬어지면 좋겠다. 짧은 휠 베이스와 앞이 무거운 구조적 특성상 고속에서 과격하게 브레이킹을 시도하면 뒤가 들리며 안정감을 잃고 흔들리게 되는 부분은 여전했다. 분명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반면 중속역에서의 과격한 코너링에서는 이전에 비해 향상된 접지력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안정적인 코너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SLK350은 출력면에서 충분히 여유가 있는 만큼 좀 더 뛰어난 코너링 성능을 원한다면 휠과 타이어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1세대 SLK320을 기반으로 크라이슬러가 선보인 크로스파이어의 경우 뒤 쪽에 19인치 휠과 광폭 타이어를 장착해 상상 밖의 뛰어난 그립을 선보였던 것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겠다.
늦었지만 내 외장의 변화도 살펴보자. 외관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범퍼아래 공기 흡입구의 모양이 좌우에 4각형 모양으로 바뀐 점이다. 좀 더 과격한 인상을 만들 뿐 아니라 F1 머신의 노즈를 닮은 뾰족코와 어울려 전체적으로 F1을 더 많이 닮은 모습이 되었다. 메르세데스-멕라렌 F1 머신의 코 끝에 3 포인티드 스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아는 이들이라면 SLK의 앞 모습에서 F1 머신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이드 미러에 내장된 방향 지시등이 두 갈래로 나뉜 것은 CLS350과 같아 전체적으로 통일시킨 부분으로 보인다. 옆모습에서는 새롭게 디자인 된 휠이 장착되었고, 뒷모습에서는 범퍼의 모양이 살짝 바뀌면서 그 아래 좌우 배기구의 모양이 타원에서 4각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금방 눈에 띄진 않지만 리어 램프의 가운데 부분이 블랙베젤로 바뀐 부분도 새로운 변화다.
인테리어에서는 우드그레인 대신 알루미늄 트림이 적용되었고, 정열적인 빨간색 가죽으로 꾸며진 화려함이 돋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로는 스포티한 AMG 스타일로 바뀐 3 스포크 스티어링 휠을 들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스티어링 휠 뒷면에는 새롭게 시프트 패들이 장착되었고, 이번에 처음으로 가변 스티어링 기어비를 가진 ‘다이렉트 스티어링 시스템’도 적용되었다. 그런데 정작 시트에 앉아 스티어링 휠을 잡게 되면 스포츠카답지 않게 스티어링 휠 직경이 너무 커 스포티한 매력이 반감되는 느낌이다. BMW의 액티브 스티어링과 비슷한 다이렉트 스티어링 시스템은 스티어링의 센터를 중심으로 작은 각도의 조향에는 일반 기어비가 그대로 적용되어 직접적인 조향이 유지되고, 큰 각도의 조향에는 기어비가 바뀌면서 스티어링 휠을 조금만 돌려도 차가 크게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고속 주행에서는 안정감을 높이고 골목길 주행이나 주차 등에서는 편의성을 높였다.
스티어링 휠 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원통형 계기판도 약간의 변화를 거쳤다. 계기를 두르고 있는 띠와 눈금, 그리고 바늘이 모두 두꺼워져 더욱 스포티해지고 시인성이 높아졌다. 반면 원이 작은데도 함께 두꺼워진 아날로그 시계는 오히려 둔해 보인다.
뉴 제너레이션에서 바뀐 부분은 아니지만 정열적인 빨간색 가죽이 적용된 실내는 동급의 로드스터들 중에서 화려함이 단연 돋보인다. 그 중에서도 시트 디자인은 스포츠카다운 근육질은 아니지만 여전히 참신하다. 여유가 있으면서 지지력도 우수하다. 동그란 헤드레스트 아랫부분에 에어스카프 공기 배출구가 뚫려 있어 멀리서 보면 차 안에 마치 우주인이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핸드 브레이크 앞쪽에 배치된 사이드 미러와 바리오루프 조절장치나 도어 안쪽의 손잡이, 시트 전동 조절 장치 등은 여전히 디자인적인 매력이 돋보인다.
시승을 시작하면서 변화에 대한 큰 기대 없이 SLK350을 만났던 터라 뉴 제너레이션의 알찬 변화가 무척이나 놀라웠다. 그리고 그 동안 아쉬워했던 부분을 정확히 파악해 상당 부분 개선한 점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지금까지는 SLK를 이야기하면서 가변 하드탑의 매력과 그저 좀 빠르게 달리는 달리기 실력 외에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된 스포츠카로서의 조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제동 시의 안정감만 확보된다면 다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필자도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SLK350에 더해진 새로운 매력을 이야기하고 다니게 될 것 같다. 뉴 제너레이션 SLK는 마치 얼짱 스타가 비밀리에 몸을 단련해, 멋진 수트를 입고 있으면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그 속에 잘 단련된 근육이 숨어 있는 몸짱 스타로 거듭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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