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귀한 몸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수의 안전 장비가 F1 드라이버를 감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3년부터 도입된 HANS(Head and Neck Support) 시스템이다. HANS는 목과 머리를 감싸는 주는 카본 파이버 소재의 보호 장비로, 2개의 신축성 있는 끈으로 헬멧과 연결돼 있다. 충돌 사고가 일어나면 드라이버의 머리가 스티어링 휠에 부딪치는 것을 방지해 주는 것은 물론 척추가 튀틀리는 것도 막아준다. HANS는 1980년대 미국 미시건 대학이 발명했으며 1995년 미카 하키넨이 사고를 당한 후 상용화 연구가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FIA에 따르면 HANS는 머리 움직임으로 인한 부상은 44%, 목은 86%, 가속 시 머리 움직임은 68%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F1 드라이버들이 입는 옷 자체도 첨단 과학이다. F1에는 1975년부터 내열 소재의 슈트가 도입돼 왔지만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멕스로 불리는 초경량 합성 섬유가 쓰이고 있다. 현재의 슈트는 600~800도의 화염에 노출돼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최소 11초 동안 옷 안의 온도가 41도를 넘지 않는다.
즉 최대 840도의 온도에서도 노멕스는 11초를 견딜 수 있다. 참고로 사우나의 최대 온도는 100도, 화재는 800도, 화산에서 터져 나오는 용암은 750~1천도 사이이다. 이 슈트는 피트 크루도 동일하게 입는다. 장갑도 노멕스와 얇은 스웨이드로 이루어져 있어 손의 보호와 민감성을 동시에 잡았다.
무심코 보아 넘기는 헬멧에도 엄청난 기술이 적용돼 있다. F1 드라이버의 헬멧은 작년 2건의 사고 이후 더욱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드라이버의 신체 대부분은 콕핏 안에 잠겨 있지만 머리만은 외부로 돌출돼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F2의 헨리 서티스가 사망한데 이어 페라리의 마싸가 두개골 골절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들의 공통점은 레이스 도중 헬멧에 물체가 부딪쳤다는 점이다.
현재 F1에는 FIA가 정한 헬멧이 쓰이고 있다. F1의 헬멧은 영국의 TRL(Transport Research Laboratory)에서 각종 테스트가 진행되며 공식 공급사는 아라이와 벨, 슈베르트 등이다. 여기서 슈베르트는 자체적으로 윈드 터널을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제조사이기도 하다. 현재의 헬멧 규정은 지난 2004년 도입됐다.
F1의 헬멧은 다중으로 제작된 고강성 카본-파이버가 외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카본-파이버는 충격 흡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수지를 더하는 게 일반적이다. 또 헬멧의 내부에는 여러 층의 아라미드와 두꺼운 폴리에틸렌, 그리고 충격 흡수 소재로 이뤄져 있다. 헬멧의 내부를 이루는 아라미드는 방탄 조끼에 쓰이는 것과 동일한 소재이다. 또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에폭시 수지 등도 소량 쓰인다.
F1 드라이버가 사용하는 헬멧의 일반적인 무게는 1.25kg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팀과의 교신을 위한 통신 장비 리시버와 음료수의 빨대 무게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엄청난 초경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가볍기 때문에 5g에 달하는 높은 횡가속도에서도 드라이버의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최소화 해준다. 거기다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목이 앞뒤로 심하게 흔들리는 현상도 최소화 하는 효과가 있다. 헬멧의 무게가 높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충격이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85년 정도만 해도 F1에 쓰이는 헬멧의 무게는 2kg 내외여서 감속이나 코너링, 또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드라이버가 받는 충격이 상당했다.
고강성과 경량은 양립하기 힘들다고 알려져 있지만 첨단 소재와 공정을 도입해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고 있다. 각 드라이버의 머리를 정밀하게 스캔한 후 완벽한 맞춤형 헬멧을 제작하는 것도 안정성의 비밀 중 하나이다. 헬멧에 적용된 레이어는 1만 2천개의 카본-파이버 실로 이뤄져 있다. 각 실의 두께는 사람의 머리카락 보다 15배나 얇아 제작 공정 자체도 무척 까다롭고 코스트도 높다. 하나의 헬멧에 적용된 모든 실의 길이는 1만 6천 km에 달하고, 이는 도쿄에서 런던을 이을 정도로 긴 것이다. 각 레이어들은 카본-파이버 제작 공정 중 가장 비싼 오토클레이브에서 접착된다.
헬멧의 또 다른 기능 중 하나는 드라이버의 시야와 호흡 확보이다. 헬멧의 전면에는 드라이버의 원활한 호흡을 위해 작은 인테이크가 마련된다. 물론 인테이크에는 주행 중 엔진 오일이나 브레이크의 분진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터도 있다. F1 헬멧에는 1초당 10리터의 신선한 공기가 유입 돼야 한다.
시야를 확보해주는 바이저는 3mm 두께의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로 제작된다. 이 폴리카보네이트는 뛰어난 시야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화염을 차단하는 효과도 뛰어나다. 대부분의 F1 드라이버는 헬멧의 바이저에 옅은 색의 틴팅을 적용하고 있고 내부에는 김이 서리지 않게 특수 코팅 처리 된다. 바이저는 500km/h 속도의 물체에 부딪쳐도 그 홈이 2.5mm 이상 파이지 않아야 한다.
FIA의 8860 규정에 의하면 F1 드라이버의 헬멧은 45초 동안 800도의 화염에서도 변형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는 헬멧의 내부 온도도 70도를 넘으면 안 된다. F1의 헬멧은 이런 안정성 이외에도 까다로운 윈드 터널 테스트를 거쳐 공기 저항을 최소화 하게끔 디자인 되고 있다.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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