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다니엘 헤니가 호주에 가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하는 TV프로가 있다. 유명 외식업체에서 협찬한 프로그램이라 TV광고로도 활용되는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다니엘 헤니, 아웃백 가다’.
아웃백은 호주의 오지를 일컫는 말이고, 스바루 아웃백은 바로 그런 땅을 잘 달릴 것 같은 껑충한 4륜 구동 왜건이다.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 볼보 XC70과 궤를 같이 한다. 탄생배경도 같다. 스바루가 SUV를 만들 경제력이 안되던 시절, 큰돈이 되는 SUV시장을 두고만 볼 수가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레거시 왜건을 터프하게 꾸며 내놓았던 것이 시초다. 90년대 중반에 첫 모델을 내놓았으니 출발이 위의 두 모델보다 빨랐다.
스바루 아웃백은 호주의 오지가 아니라 미국의 SUV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태어났다. 이게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했는지, 이 다음에 만든 것이 포레스터였다. 임프레자의 플랫폼을 활용해 만들었던 박스형 크로스오버 왜건- 포레스터는 현행 모델에 와서 그나마 SUV스러워졌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스바루 차가 바로 포레스터이고 아웃백이 뒤를 바싹 쫓는다. 올해 상반기 미국 판매량을 보면 레거시 세단과 임프레자를 다 합쳐도 아웃백 만큼이 안 된다.
일본에서는 ‘레거시 투어링왜건’이라고 하는 일반 왜건도 판매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아웃백이 왜건역할을 도맡는다. 미국과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아웃백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아웃백도 ‘레거시 아웃백’이다. 재미있는 것은 차체크기다. 레거시 세단의 경우 미국형과 일본형이 똑같이 생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차폭이 다르다. 이번 세대 모델이 지나치게 커져서 일본 시장의 선호에 맞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일본 내수용은 휀더 형상을 달리해 차체 폭을 4cm 줄였다. 그런데 뿌리 자체를 미국시장에 두고 있는 아웃백은 미국 치수 그래도 일본에서도 판다는 것이다. 구형보다 5cm나 넓어진 차체 폭을 그대로 가져간다.
구동계도 마찬가지다. 3.6 가솔린엔진은 미국시장용으로 만든 것이라 일본시장용 레거시에는 탑재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웃백은 일본에서도 3.6모델로 판매된다. 왜건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는 일본이지만 아웃백이 독특한 존재로 주목 받는 것도 그래서다. 국내 수입물량의 경우 포레스터는 일본산이지만 레거시와 아웃백은 미국 인디애나산이다.
예전의 레거시는 세단(왜건)치고 낮은 시트 위치로 인해 운전시 스포티한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번 세대에서는 차체가 커진 것은 물론 착좌 위치를 4cm나 상향조정 함으로써 많이 달라진 인상을 주고 있다. 레거시를 기준으로 차고를 높인 아웃백은 말할 것도 없다. 최저 지상고를 기준으로 보면 구형보다는 2cm, 레거시에 비해서는 7cm가 더 높다.
껑충하게 높아진 운전석 시트 높이만큼, 시야도 어지간한 SUV가 부럽지 않다. 대신 바닥이 덩달아 높아졌기 때문에, 올라탄다는 느낌은 포레스터보다도 더한 듯 하다. 외관상의 터프함도 마찬가지다. 바닥이 높아 보이는데다 등산화의 바닥 홈 마냥 박력 있는 프로텍터 장식을 두른 효과로, 오프로더로서의 느낌은 포레스터보다 더한 것 같다.
실내는 큼직큼직하게 실용적으로 만들어진 인상이다. 레거시의 왜건형이니, 실내가 레거시와 동일한 것은 당연하다. 스바루코리아에서 장착한 한국형 올인원 내비게이션 역시 포레스터, 레거시의 것과 같다. 터치스크린에, 후방카메라 화면을 보여주고, 스티어링휠의 리모컨으로도 조작할 수 있어 편리하다. 신생 수입사의 첫 작품치고는 꽤 훌륭하다. 훨씬 값비싼 차, 고급 브랜드의 수입차에도 이보다 못한 것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그와 달리, 국내에서 적용한 앞,뒤좌석 가운데 팔걸이의 우드그레인은 순정품과 어울리지 않아 역효과를 내고 있다. 순정 우드그레인 자체도 지나치게 튄다는 의견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다. 포레스터의 심심한 실내에서 충격을 받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포레스터는 미국에서 인기 있는 차임을 되뇌어 본다.
하기야, 아웃백의 실내도 미국에서는 상을 받았다. ‘올해의 엔진’ 시상으로 유명한 워즈 오토월드로부터 3만 달러 이하 차량 중 최고의 인테리어로 꼽힌 것이다. 실내뿐이 아니다. 미국 자동차전문지 모터트렌드로부터는 ‘올해의 스포츠/유틸리티’ 상을 받았다. (전년도 수상작은 포레스터였다.) 가격대비 기대치 등 시장상황이 아무래도 우리와는 다른 탓이겠지만, 그래도 뭔가가 있기는 있다는 증거이리라.
레거시와 마찬가지로 일본사양의 아웃백에는 주행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SI드라이브와 첨단 안전장치인 아이사이트 등이 적용되지만 미국과 우리나라 시판 사양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눈에 띄는 장비는 전동식 주차브레이크 정도다. 주차 버튼은 스티어링 컬럼 왼쪽에 사이드미러 조작부등과 함께 모여있는데, 손을 뻗어보면 볼보XC70(S80)보다는 가깝게 있어서 사용이 덜 불편하다. 물론 출발할 때는 가속페달을 밟으면 자동으로 풀린다. 하지만 센터콘솔의 열선 스위치 사이, 어중간한 빈 공간에 버튼을 넣었으면 훨씬 좋았을 뻔 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뽀드드득 하는 확실한 작동음을 내는 주차브레이크는 오르막에서 멈췄다가 재출발할 때 뒤로 밀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역할도 한다. 흔히 보듯 VDC의 기능을 활용해 주행용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주차브레이크를 걸어버리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때문에,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저절로 브레이크가 풀리는 일은 없다. 주차브레이크 옆의 버튼을 눌러 이 기능을 활성화시켜놓았을 때만 작동한다는 면에서는 오토홀드 기능과도 비슷하다. 경사로에서만 작동하는 오토홀드다.
이외의 편의사양들을 살펴보면, 헤드램프는 자동이지만 자동(우적감지)와이퍼와 ECM룸미러는 적용되지 않았다. 유리창은 운전석 것만 원터치로 여닫을 수 있다. 1열 이후의 측면 유리는 프라이버시 글라스(틴팅한 것처럼 짙은 색유리)처리가 되어있고, 뒷좌석 유리도 끝까지 내려간다. 시트는 동반석까지, 그리고 요추받침까지 전동 조절식이고, 운전대는 깊이와 각도의 조절이 가능하다. 스마트키가 아닌 것은 그렇다 쳐도, 시동키와 리모컨이 분리되어 있어서 요철을 통과할 때 리모컨 뭉치가 스티어링 컬럼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것은 불만 사항이다. 레거시에서 아주 크다는 인상을 주었던 사이드미러는 처음부터 아웃백을 고려해 만들어진 것이었나 싶다.
왜건이므로, 뒷좌석부터는 레거시와 차이를 보인다. 레거시도 뒷좌석이 널찍하긴 했지만 아웃백은머리 공간까지 더 여유롭다는 것이 차이. 시트의 기능도 다르다. 레거시는 트렁크 쪽에서 레버를 당겨야 등받이를 접을 수 있었지만 아웃백은 뒷좌석에서 바로 접을 수 있다. 또, 포레스터처럼 등받이 각도도 조절할 수도 있다. 각도 조절용과 접이용의 조작장치가 등받이 위 아래에 따로 배치되어 있었던 포레스터와 달리, 아웃백은 엉덩이 쪽의 버튼 하나로 두 가지 기능을 모두 다룬다. 레거시도 그렇지만, 뒷좌석용 송풍구가 없는 것은 아쉬운 부분. 가운데 좌석용 안전벨트는 천장에서 내려온다.
트렁크 문은 유리 아래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이 눈에 띈다. 테일램프 구성은 레거시와 같지만 더 날카롭게 멋을 냈고 범퍼에는 반사판을 세로로 길게 넣어 다른 인상을 만들었다. 이 가격대 수입차에서 볼보XC70처럼 전동으로 오르내리는 트렁크 문을 기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잠금 장치만 전기스위치로 되어있지만 여닫는 조작에도 부담은 없다.
적재공간은 널찍하고 반듯하며, 그것이 전부다. 레일 시스템 등의 폼 나는 내용은 없다. 기본 526리터의 공간에 골프백 4개를 넣을 수 있어 기능에 충실하다. 적재함 커버는 떼어내서 바닥아래 추가 수납공간에 보관할 수 있도록 홈을 마련해놨다. 여기에 지붕의 루프랙용 공구도 들어있는데, 루프랙 일체형인 크로스바를 접거나 폈을 때 위치 고정용으로 필요하다.
보닛을 열어보면 디자인센스 0점에 가까운 엔진커버 아래로 펑퍼짐하게 드러누운 실린더 블록을 확인할 수 있다. 수직으로 서있거나 V형으로 벌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누웠다. 6개의 실린더가 수평으로 3개씩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 스바루 외에는 포르쉐에서나 볼 수 있는 수평대향(복서) 엔진이다. 마침 레거시/아웃백 3.6의 경우 기통수와 배기량까지 포르쉐에 버금간다.
그렇다고 행여나 성능까지 그러한 수준으로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260마력, 34.1kg.m이라는 수치는 어코드, 알티마의 3.5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 비교 우위를 점하는 것은 그런 수치가 아니라 엔진의 무게중심을 낮춤으로 인한 운동 성능상의 장점이다. 특히 아웃백처럼 차고가 높은 차에서는 핸디캡을 보완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비장의 무기 또 한가지는 스바루의 장기인 좌우 대칭형 4륜구동(AWD) 시스템이다. 국내 출시된 모든 스바루 차의 뒤꽁무니를 장식하는 Symmetrical AWD라는 문구의 정체. 엔진과 변속기, 트랜스퍼 케이스가 차의 중심선상에 세로로 배치되어 대칭을 이루고, 좌우 구동축의 길이가 같다. 애초에 복서엔진과 한 세트를 이루도록 설계되므로, 나중에 덧붙여서 만드는 여느 4륜 구동 차들과는 깊이 자체가 다르다.
같은 스바루 차라고 해도 4륜구동 시스템의 작동방식은 변속기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레거시, 아웃백 3.6처럼 5단 자동변속기를 채용한 경우에는 ‘가변 토크 분배 AWD’이다. 4단 자동변속기인 포레스터는 ‘액티브 AWD’로 조금 다르다. 둘 다, 전자제어되는 가변 트랜스퍼 클러치가 힘을 분배하되, 가변토크분배AWD는 유성타입 센터 디퍼렌셜과 비스커스식 후륜 LSD를 쓴다. 기본 전후 구동력은 45:55의 성능 중시형. 기본적으로 두 바퀴만 구동하다가 어느 쪽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부랴부랴 구동력 분배에 나서는 나약한 4륜구동이 아니다. 연료 효율 면에서는 손해를 볼지언정 기계적인 적극성에서는 차원이 높다는 것.
험로주파력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만드는 이러한 특성과 함께 아웃백이 가진 22cm의 최저지상고는 실용적인 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동일한 엔진과 변속기, 동일한 4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했지만 레거시가 갈 수 없는 길을 아웃백은 간다. 무심코 넘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아웃백은 레거시보다 휠베이스도 1cm 짧다. 휠하우스 위치를 건드리지 않은 채 축간거리만 줄인 탓에, 옆에서 보면 뒷바퀴가 차체 앞쪽으로 붙어있다. 즉, 축간거리는 줄었지만 실내공간에는 변화가 없다. 줄어든 1cm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다.
레거시와 안팎이 동일한 5단 자동변속기는 짤록한 레버를 왼편M 위치로 옮긴 뒤 스티어링휠의 뾰족한 패들로 수동 조작을 할 수 있다. 레버 자체로는 수동조작을 할 수 없는 것이 특이사항. D위치에서도 한시적인 패들 변속은 가능하고, 수동모드에서는 킥다운이 되지 않는다. 종종 미미한 변속 충격이 발생하고 시프트업 조작에 대한 반응도 살짝 늦지만 기어를 내릴 때의 깔끔한 회전수 매칭이 마음에 든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가속하면 6,500rpm에 못 미쳐 70,120,180km/h에서 시프트 업이 이루어진다. 엔진 소리에 비해 가속감은 뒤지지만 제원상 0-100km/h 가속시간은 레거시보다 0.3초 늦은 7.6초로 별 아쉬움이 없다. 다만, 260km/h까지 표시된 계기판을 십분 활용하는 듯 했던 레거시와 달리 아웃백은 200km/h에 못 미쳐 가속을 멈춘다. 이때의 엔진회전수가 4단, 4,600rpm이므로 여력은 충분하다. 껑충하게 높은 차의 안전성을 고려해 속도제한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일상에서는 여유로운 힘을 바탕으로 편안하게 주행할 수 있다.
타이어는 225/60R17사이즈의 콘티프로콘택을 끼웠다. 차량 성격을 고려해 레거시의 225/50R17보다 여유를 둔 것이 눈에 띈다. 서스펜션의 스트로크도 좀더 길어 확실히 출렁이는 기분이지만 좌우 바퀴에 균일하게 들어오는 도로이음메 등의 충격은 의외로 단단하게 전달된다. 코너링 때는 당연히 좌우 쏠림이 심하고 여진을 남기기도 한다. 비포장도로의 주행을 감안한 설정임을 생각하면 불만이 없다.
차의 성능을 타이어가 받쳐주지 못한다는 느낌도 레거시보다 오히려 덜한 편이다. 레거시를 통해 성격을 이미 어느 정도 파악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 자세가 흐트러지기 전에 타이어가 먼저 비명을 지르기 때문에 차라리 안심이 된다. 시승차 간의 편차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레거시에 비해 소음이나 진동 면에서 좀더 편안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사실 볼보 S80을 타다가 XC70을 탔을 때도 겪었던 현상이긴 하다. 저속 선회시에는 회전반경이 크게 느껴지는 편이고 조향력은 대체로 묵직하다. 간혹 뻣뻣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앞바퀴와 따로 놀지 않아 좋다.
아웃백은 레거시보다 40kg이 무겁지만 공인 연비는 9.1km/L로 동일하다. 총주행 거리가 4,000km에 가까운 시승차는 457km를 시승하는 동안의 평균연비가 8.5km/L였다. 차량에 남겨진 823km 구간의 평균연비 역시 8.4km/L로 비슷하게 나왔다. 좋은 연비를 얻고 싶다면 계기판을 주목하면 된다. 엔진회전계 왼쪽에 있는 에코게이지가 ‘평균연비-순간연비’의 공식에 따라 작동하므로, 바늘이 플러스 쪽에 머물도록 운전하면 된다.
아웃백 3.6의 가격은 4,790만원으로, 스바루의 국내 라인업 중 가장 비싸다. 레거시 3.6보다는 600만원을 더 주어야 한다. 레거시와 동일한 구동계와 4륜구동 시스템을 가졌기 때문에, 600만원이라는 차액은 크게도, 작게도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레거시가 왜건으로 이룬 명성을 고려하면 아웃백은 스바루의 종합선물 세트 격이라는 점에 밑줄을 긋고 싶다. (선물세트에서 빠진 것은 아마 터보차저 정도일 것이다.) 게다가 비록 급이 다르긴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유일하게 비슷한 패키지를 가진 볼보 XC70보다 1,000만원 이상 싸다는 점도 생각해 볼만 하다. 그래도 설득이 안되면 4,290만원인 아웃백 2.5를 추천한다. 베라크루즈 최고급형보다는 싸다.
글/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사진 /박기돈 (rpm9.com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