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또는 전기모터로만 주행 가능한 일부 하이브리드카들은 저속에서 사실상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주행할 수 있다. 기껏해야 ‘윙-‘하는 작은 모터소리와 타이어가 노면에 닿는 소리가 날 뿐인데, 이 정도는 주변 소음에 묻히기 십상이다. 조용하다는 것은 전기차의 장점 중 하나로, 또 다른 친환경적 특성이기도 하다. 배출가스 뿐 아니라 소음공해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 안전 측면에서는 이러한 차들이 분별할 수 있는 정도의 소리를 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도로 이용자들은 시각을 통해 한정된 각도의 사물을 판별하는 한편, 청각을 통해 주변 360도의 상황을 감지하게 된다. 때문에 소리 없이 움직이는 물체가 도로상에 있다는 것은 다른 이용자들에게 위험요소가 된다.
가령, 보행자들은 이런 차들이 뒤에서 접근해올 경우 알아채기 어렵다. 시각이 불편하거나 주위가 산만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위험에 처하기 쉽다. 특히 시각 장애인 협회들은 이처럼 조용하게 움직이는 차들에 대해 소음발생장치의 부착을 권고해왔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이미 이에 대한 규정이나 법이 만들어진 상태이고, GM의 시보레, 토요타, 미쓰비시, 닛산 등 전기차 시판에 나선 업체들은 속속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아우디의 경우 2012년을 기점으로 ‘e-트론(e-tron)’으로 불리는 일련의 전기차들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 첫 주자로 꼽히는 것은 2012년에 나올 가칭 ’R4’로, 지난 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던 컨셉트카 ‘e-트론’을 바탕으로 한 전기 스포츠카이다. 현재 아우디의 4륜구동 시스템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콰트로’처럼, e-트론은 아우디의 전기차를 나타내는 브랜드 명으로 육성된다. 아우디의 음향전문가들은 바로 이 e-트론들에 어울리는 소리를 연구 중인 것이다.
여기에는 아우디의 브랜드 개발, CI담당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단순히 안전을 위해 재생하는 의무적인 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한 진보’를 내세운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아우디의 가치를 담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기차 또는 하이브리드카가 갖고 있는 미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 특성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극한지대용 특수차량의 굉음 같은 것들은 당연히 후보에서 제외된다.
그에 비해, 모든 이들에게 친숙한 일반 자동차의 엔진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타당성이 높다.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선의 소리는 자동차의 엔진소리를 연상시키지만 실제로는 아주 다르다. 아우디의 음향전문가들은 이러한 방식의 접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신, 제트기나 영화 속 우주선의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아우디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접는 편이 좋다. 아우디가 찾는 소리는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것이다.
아우디의 음향전문가들이 참고로 하고 있는 아주 다양한 예들 중 한 가지는 바로 할리우드의 영화 ‘아이,로봇’이다. 윌 스미스가 주연했던 이 2004년의 SF영화에는 전기스포츠카로 설정된 아우디 RSQ가 등장했었다. 음향전문가들은 영화 속 RSQ가 내는 소리야 말로 미래의 아우디가 어떤 소리를 내야 할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