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퍼 아니고 쿠페 맞습니다." 미니에 쿠페가 더해졌다. 2인승이고, 문이 2개고, 3박스 스타일이다. 척 봐도 미니인 줄 알 수 있지만 스타일이 더 화려해졌다. 쿠페답게 달리기 성능도 조금씩 높아졌다.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미니 존 쿠퍼 웍스(JCW) 쿠페는 아우토반에서 관심과 경계의 대상 1호였다.
글, 사진 / 박기돈 (RPM9 팀장)
BMW에서는 해마다 2번씩 ‘이노베이션 데이’라는 행사를 열고, 전 세계 기자들을 초청해 BMW가 개발하고 있는 최신 기술에 대해 소개한다. 기자는 지난 8일 이노베이션 데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뮌헨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노베이션 데이 행사에만 참여하고 말기엔 아까운 기회여서 BMW의 최신 모델을 하나 시승할 기회도 함께 마련했다.
하지만 뮌헨으로 향하는 그날까지 시승할 차가 무엇인지 몰랐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야 우리가 미니 쿠페를 시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게 웬 떡이야? 미니 쿠페는 가장 따끈따끈한 신차이기도 하고, 또 미니 중에서 가장 화끈할 것으로 기대되는 그야말로 핫 아이템이 아닌가?
이름 가지고 또 혼동할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동안 미니 ‘쿠퍼’를 미니 ‘쿠페’로 잘 못 알고 있다가 겨우 쿠퍼라는 이름에 익숙해 진 분들이 있을 텐데, 이번에는 진짜 미니 쿠페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미니 쿠페는 해치백, 컨버터블, 클럽맨, 컨트리맨에 이은 미니의 5번째 가지치기 모델이다. 그리고 각 미니에는 엔진에 따라서 원, 쿠퍼, 쿠퍼 S, JCW, 그리고 원 D, 쿠퍼 D, 쿠퍼 SD 등의 그레이드가 더해진다.
미니 쿠페는 우선 쿠퍼 쿠페, 쿠퍼 S 쿠페, JCW 쿠페, 쿠퍼 SD 쿠페 등이 선을 보였다. 마치 발음 게임 같은 라인업이다. 하지만 쿠퍼와 쿠페를 구분할 수 있는 독자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번 시승에 참가한 기자는 3명, 준비된 시승차는 미니 JCW 쿠페 1대와 쿠퍼 S 컨트리맨 1대였다. 더욱 반가운 것은 2대 모두 수동 변속기 차량이라는 점이다. 사실 쿠페의 JCW 버전에는 수동 변속기만 장착되어 나온다. 컨트리맨 쿠퍼 S는 국내에서 이미 시승했던 모델이어서 별 다를 것이 없지만, 수동변속기 모델이라는 점에서는 조금은 궁금하긴 하다. 어쨌든 화끈한 두 모델을 모두 수동변속기로 하루 동안 즐길 수 있다니 마음이 들뜬다.
서둘러 호텔을 출발하긴 했지만 시승 시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그래도 뮌헨에 왔으니 그 동안 꼭 가보고 싶었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시승 목적지로 잡고 네비게이션을 세팅했다. 편도가 약 110km 거리에 1시간 반정도 소요될 예정이란다.
뮌헨 시내를 빠져 나와 아우토반을 잠깐 달리다 국도로 접어들 때까지 나는 컨트리맨 뒷자리에 타고, 옆에서 달리는 쿠페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약 70km 정도를 주행한 지점에서 컨트리맨의 운전대를 잡았다.
컨트리맨은 미니의 화끈한 DNA를 충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넉넉한 실내 공간을 갖춘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지상고가 높아 좀 더 험한 길도 쉽게 (4WD 모델이라면 더 쉽게) 달릴 수 있다는 점이 또 따른 장점이다. 거기다 수동 변속기의 탄력 있는 반응은 덩치 큰 미니도 역시 미니임을 실감나게 해 주었다.
독일 남동부에 위치한 뮌헨에서 더 남(서)쪽으로 달려 오스트리아 국경에 가까워지자 뮌헨에 내렸던 지난 밤 비가 이곳에는 눈으로 내려 알프스 산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눈 덮인 알프스 어느 산자락 중턱에 그 유명한 백조의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월트 디즈니 로고에 등장하는 성 그림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시승 일정이 여유롭지 못하다 보니 성에 올라가 보지는 못하고 그냥 아래 마을에서 올려다 보기만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저 멀리 성과 눈 덮인 알프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돌아오는 길에는 미니 쿠페의 운전대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제 외관을 살펴보자. 미니 쿠페는 미니 최초의 2인승 모델이면서 3박스 스타일이다. 2인승이니 뒷좌석이 없고, 그런 만큼 캐빈이 좀더 좁아도 된다. 쿠페답게 키를 29mm 낮춰 더 안정적인 자세를 갖췄다. 이런 과정에서 앞 유리를 해치백보다 조금 더 눕혔고, 뒤 유리는 눕히면서 앞쪽으로 조금 이동시켜서 노치백 스타일을 완성했다. 사이즈는 3,734×1,683×1,384mm, 휠베이스는 2,467mm로 해치백에 비해 길이가 11mm 길고, 너비와 휠베이스는 같다. 즉, 벨트 아래는 그대로 두고, 상체만 다이어트를 한 셈이다.
그래서 앞모습은 여느 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뒤로 가면서 쿠페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아서 헬멧 루프라고 부르기도 하는 지붕이다. 그리고 뒷모습도 벨트 라인을 유지하면서 세단처럼 노치백으로 만들었다. 트렁크 부분이 꽤나 높게 느껴진다.
트렁크는 정통 쿠페처럼 트렁크 부분만 따로 열리지 않고, 해치처럼 뒷유리까지 함께 열린다. 뒷좌석이 없어진 덕분에 트렁크 용량은 280리터로 미니 클럽맨보다 20리터가 더 넓다. 트렁크 끝에는 리어 스포일러가 장착되어 있는데, 80km/h가 되면 자동으로 솟아 오르고, 속도가 내려가면 자동으로 내려간다. 헤드업 콘솔에 있는 토글 스위치로 임의로 올릴 수도 있다.
실내는 해치백과 똑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 2인승이라 뒷자리가 없을 따름이다. 그리고 지붕이 조금 낮을 뿐이다. 하지만 기자가 앉았을 때 머리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단지 시트를 조금 낮추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수동변속기다. 기어 레버 윗부분 봉을 가죽으로 입혔다. 크고 작은 방패처럼 생긴 페달도 3개다. 알루미늄 페달에 고무로 엑센트를 더했다. 반갑고 예쁘다.
그 외 스티어링 휠, 시트, 센터 페시아, 도어는 똑 같다. 센터 페시아 윗 부분의 원형 계기판은 ‘미니 커넥티드’가 적용된 신형이다. 가장 자리로 속도계가 자리하고, 바늘은 벤츠 E클레스처럼 바깥 원을 따라 도는 짧은 바늘이 속도를 알려준다. 사실 속도는 계기판 회전계 아래 디지털로 표시되는 숫자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속도계 가운데는 모니터다. 네비게이션과 각종 오디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아이폰과 연결해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미니 커넥티드가 제공된다.
어차피 문이 2개라고 하더라도 뒷좌석이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은 차이가 난다. 아쉬울 때 비빌 언덕이 없어진 거다. 하지만 시트 뒤 쪽으로 작은 가방 정도는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덕분에 시트를 어느 정도 뒤로 눕힐 수도 있다.
엔진은 미니 중 최고인 존 쿠퍼 웍스 (JCW) 버전이다. 1.6리터 트윈 스크롤 터보인 것은 쿠퍼 S와 같지만 튜닝을 통해, 최고출력이 211마력/6,000rpm과 최대토크 260Nm/2,000~5,100rpm을 발휘한다. 오버부스터 시에는 280Nm로 토크가 상승한다. 0~100km/h 가속에는 6.4초가 걸리고, 최고속도는 240km/h다. JCW 해치백은 6.5초와 238km/h이므로, 미니 중 최고의 성능이다.
참고로 쿠퍼 S 쿠페에는 184마력, 쿠퍼 쿠페에는 122마력 엔진이 장착되고, 143마력과 305Nm을 발휘하는 디젤 엔진을 얹은 쿠퍼 SD 쿠페는 0~100km/h 가속 7.9초, 최고속도 216km/h의 만만치 않은 고성능을 발휘한다. 사실 JCW 만큼이나 궁금한 것이 쿠퍼 SD이기도 하다.
뮌헨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데로 달렸다. 국도와 아우토반이 섞여 있는 길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코스에는 꼬불꼬불한 시골길은 물론 차 2대가 겨우 비켜 지나갈 수 있는 산길도 포함되어 있다. 마치 일부러 다양한 형태의 시승을 경험하라고 세밀하게 짜 놓은 시승코스 같다. 덕분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시승코스를 달리면서 미니 쿠페를 만끽할 수 있었다.
적당한 답력과 깊이의 클러치, 쫀득하게 기어 위치를 찾아 들어가는 레버, 수동변속기는 전혀 낯설지 않다. 힘이 들 정도로 과격하지도 않다. 다만 자동 변속기로는 느낄 수 없는 직결감과 원할 때 더블 클러치와 힐앤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적당히 아드레날린을 분비 시킬 뿐이다.듀얼 클러치 변속기까지 진화했지만 직결감에서는 아직 수동변속기를 따라 올 수 없다. 미니는 물론, 포르쉐 911 터보로 PDK와 수동 변속기를 번갈아 타보고 난 후에도 같은결론이었다.
길지 않은 시승 시간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그런데 가속력은 내 급한 마음 이상으로 강력하다. 언제 1단, 2단을 거쳤는지 금새 3단이고, 4단이다. 2단에서 85km/h, 3단 135km/h, 4단 185Km/h, 5단 220km/h를 기록한다. 6단으로 변속한 후에는 엑셀에 대한 반응이 조금 둔해진 느낌은 있지만 가속은 꾸준하게 이루어진다. 마치 6단에서도 레드존까지 바늘을 밀어 부칠 기세다. 아우토반에서 제원상 최고속도인 240km/h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독일의 시골길이다. 왕복 2차로의 넓지 않은 시골길을 그 동내 차들은 130km/h 가까이 속도를 내며 달린다. 심지어 아주머니가 운전하는 오펠 구형 아스트라 밴 조차도 그렇다. 어느 동네 구간을 지날 때 속도를 충분히 줄여서 달리는 아스트라 밴을 만났는데, 동네 구간을 빠져 나가자 금새 속도를 올리더니 110~120km/h를 넘다 들면서 꼬불꼬불한 도로를 잘도 달린다. 심지어 코너를 돌아 나가는 라인조차도 보통 솜씨가 아니다. 자동차의 나라 독일에서는 김여사 조차도 이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지 않을까? 농담 삼아 “저 밴 뒤에는 틀림없이 두부가 실려 있을 거야.” 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어쨌든 그렇게 달린다 하더라도 미니 쿠페의 적수가 될 수는 없다. 조금 긴 직선로를 만나면 미누 쿠페는 단숨에 추월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미 앞 차가 120km/h로 달리고 있다 보니 3단으로 추월을 시도하자 추월 중에 3단 레드존에 닿았다. 결국 추월하면서 기어를 바꿔 줘야 하는 애매한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이처럼 잘 달리고 예측 가능한 독일의 시골 차들 덕분에 미니 쿠페도 신나게 시골길을 누빌 수 있었다. 예리한 핸들링을 마음껏 만끽하면서 말이다. 출발하면서 네비게이션이 제시했던 도착 예정 시간보다 약 20분 정도 앞 당겨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미니 쿠페와 잘 닦여진 독일의 아우토반, 그리고 예측 가능하면서 빠르게 달려 주는 독일 차들 덕분이었다.
JCW 쿠페는 파워트레인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원하는 만큼 치고 달릴 수 있었다. 브레이크도 충분히 강력했다. 하지만 서스펜션은 기대 이상으로 부드러웠다. 2세대 미니로 진화하면서 부드러워진 것이 쿠페에서도 그대로 유지된 듯하다. 사실 부드럽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길에서 안정감을 유지할 정도가 되지만, 처음 미니가 워낙 단단했던 터라 지금의 부드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만약 언제든지 서킷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길 원한다면, JCW가 옵션으로 준비한 스포츠 서스펜션을 장착하면 된다. 차체가 10mm 낮아지면서 더욱 단단해 진다고 한다.
미니 쿠페는 개성으로 똘똘 뭉친 차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1명 외에는 더 이상 태우지도 않는다. 달리기 실력이 더 뛰어난 것은 미니 쿠페의 가치를 더 높여 준다. 개성 강한 미니 중에서도 꼭짓점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미니 쿠페가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