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로 즐기는 파나메라의 맛?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데 다른 사람은 어떨까.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
포르쉐라고 모든 차가 잘 달릴 수는 없다. 그건 옛 말이고 요즘은 나름 융통성이 생겼다. 잘 달리는 차는 더 잘 달리게 만드는 한편 고객을 넓힐 수 있는 저렴(?) 버전도 나온다. V6 엔진의 카이엔이나 이번에 시승한 파나메라 디젤이 그런 경우다. 포르쉐에 디젤이 뭐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기다렸던 포르쉐일 수도 있다.
파나메라 디젤은 이름이 정직하다. 차명이 파나메라 디젤이다. 보통 디젤이면 무슨 d, 무슨 CDI 이렇게 이름이 붙는데 파나메라 디젤은 그야말로 디젤이다. 차에도 대놓고 광고한다. 도어에 디젤이라고 제법 크게 써있다. 유럽은 몰라도 국내 고객은 별로 안 좋아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외부에 디젤이라고 배지가 붙는 것도 처음 보는 거 같다. 포르쉐니까 대충 넘어가지 다른 브랜드가 이랬으면 촌스러웠을 것이다.
근데 디젤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도어의 배지뿐이다. 디젤 배지는 트렁크에는 안 붙는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기존의 파나메라와 같다는 말이다. 10초 카레라 GT 같은 포스의 전면 디자인이며 낮게 깔리는 포스가 기존의 파나메라와 진배없다. 사실 여의주를 연상케 하는 ACC 카메라도 없지만 못 알아보게 빨리 달리면 된다.
실내는 익히 알고 있는 파나메라의 그것이다. 파나메라의 실내 디자인은 포르쉐 중 가장 좋다고 본다. 뭔가 안정적이며 정리가 잘 돼 있다. 고급스러운 것은 덤이다. 높게 올라온 센터페시아 때문에 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포르쉐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디자인이다.
디젤은 파나메라 중에서 가장 싸다. 즉 엔트리 급 모델이다. 하지만 외관처럼 실내도 더 비싼 가솔린 모델과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우선 차이가 나는 것은 계기판인데, 그것도 타코미터에 한정된다. 디젤이라서 회전수의 한계가 낮다. 모델을 막론하고 포르쉐의 계기판은 시인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디젤임에도 타코미터가 가운데 크게 배치된 게 이채롭긴 한데, 돈 들여서 굳이 바꿀 이유는 없다.
주루룩 늘어선 센터페시아의 버튼에는 빈자리가 좀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PASM이다. 따라서 댐핑이 달라지진 않고 스포트 버튼을 누르면 엔진과 변속기의 세팅만 스포티하게 변한다. 그리고 시트의 냉방 기능도 빠졌다.
가죽 시트는 포르쉐답게 지지력이 우수하고 쿠션도 탄탄하다. 낮은 시트 포지션과 함께 거의 90도로 곧추선 스티어링 휠이 달리는 기분을 부추킨다. 늘 그렇듯 포르쉐의 시트는 참 등이 편하다. 컵홀더가 3개나 있는 걸 보면 파나메라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파나메라의 트렁크 용량은 445리터이다. 차체 사이즈를 생각하면 큰 용량은 아니지만 2열을 접으면 1,263리터까지 늘어난다. 파나메라에 이 정도 용량의 트렁크는 참 메리트가 있어 보인다.
파워트레인은 3리터 V6 디젤과 8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V6 디젤의 출력은 250마력, 56.1kg.m의 최대 토크는 1,750 rpm에서 시작해 2,750 rpm까지 지속된다. 포르쉐의 디젤이라고 해서 동급의 다른 디젤보다 출력의 수치가 특별히 높지는 않다.
시동을 거니 포르쉐답게(?) 조금 떤다. 진동은 뭐 포르쉐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그런데 가속하는 중에도 계속 진동이 발생하는 것은 좋게 봐주기가 힘들다. 시승차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정숙성을 따지는 것도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시끄러운 편이다.
파나메라 디젤의 0→100km/h 가속 시간은 6.8초이다. 파나메라 가솔린이 워낙 빨라서 그렇지 6.8초가 결코 느린 순발력이 아니다. 특히 파나메라의 덩치나 2톤에 이르는 무게, 엔진의 배기량을 생각하면 준수하다고 할 수 있다.
요즘 디젤이 그렇듯 체감은 수치보다 빠르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빠르게 회전수가 뜨고 밀어주는 힘이 상당하다. 특유의 부와악 거리면서 채고 나가는 힘이 같은 배기량의 고급 세단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일단 부스트가 뜨면 토크의 하락 없이 힘차게 발진되고 자동 변속 되는 시점까지 매끄럽게 회전한다.
기어가 8개나 되기 때문에 저단의 기어비를 잘게 나눠놨다. 3~5단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각각 105, 145, 170km/h이다. 여기까지는 물론, 6단으로 208km/h까지도 힘차게 가속된다. 3리터 디젤로 더 이상의 성능을 바라기가 힘들다. 최고 속도는 7단에서 나오는데 가속이 주춤해지긴 한다. 그래도 계기판상으로 무난히 245km/h를 찍는다. 참고로 제원상 최고 속도는 242km/h이다.
어느 정도 속도가 붙으면 초반과 같은 스포티한 맛은 다소 희석된다. 크루징 하면 편한 느낌이 훨씬 강하다. 파나메라를 처음 탔을 때, 그러니까 강력한 S 모델을 탔을 때도 성능 보다는 편히 탈 수 있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디젤 역시도 그렇다. 디젤은 가솔린보다 성능이 낮아서인지, 아니면 엔진보다 하체나 섀시가 훨씬 강해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란투리스모라는 성격에 디젤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이 되기도 한다. 8단으로 200km/h를 달려도 회전수가 2,600 rpm을 조금 넘을 뿐이다. 엔진은 조용하고 바람 소리와 노면 소음만 들린다. 낮은 기어비로도 이 속도가 유지되고 오른발에 힘을 조금만 주면 변속기는 지체 없이 기어를 내린다.
8단 변속기는 작동이 상당히 부드럽고 변속 충격도 없다. 요즘 흔히 보는 다단 기어는 시내에서 지금 몇 단인지 파악하기가 힘든데, 포르쉐, 폭스바겐은 D 모드에서도 단수가 표시되니 시승하는 입장에서는 참 편하다. 8단은 속도가 90km/h는 돼야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파나메라의 하체는 단단하다. 하체도 단단하지만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는 것 같은 파나메라의 섀시도 대단하다. 몇 번 경험해 보면 고속에서 차선을 바꿀 때나 코너링 시 자신감이 생긴다. 스티어링 휠을 입력한 만큼 앞머리가 정확하게 움직인다. 스포트 버튼을 누르면 엔진과 변속기의 세팅만 스포티해지는데 기존의 파나메라와 비교 시에는 아무래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포르쉐의 브레이크야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잘 서기도 하지만 멈출 때의 자세가 기가 막히게 좋다. 200km/h 이상에서 급제동할 때도 타이어에서 끼끽 하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보통 브레이크 성능이 대단히 좋은 차가 이렇다. 그리고 제동을 여러 번 해도 페이드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파나메라 디젤을 받자마자 줄기차게 밟았다. 그랬더니 평균 연비가 9.1km/L이 나왔다. 기존의 가솔린 파나메라였으면 나올 수 없는 연비다. 가솔린이었다면 아마 절반도 힘들지 않았을까. 이 연비 때문에 파나메라 디젤이 가장 빠른 파나메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