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단을 갖고 있으면 SUV가 필요할 때가 있고, 고성능 스포츠 쿠페를 갖고 있으면 컨버터블이 그리울 때가 있다. 최근에 다양한 크로스오버 자동차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다. 그리고 오랜 세월 수 많은 스포츠카 매니아들이 품었던 ‘쿠페냐, 컨버터블이냐?’ 하는 질문에 획기적인 해답을 안겨줬던 모델이 바로 메르세데스-벤츠 SLK다.
SLK는 철판으로 된 지붕을 전동식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해, 지붕을 닫았을 땐 완벽한 스포츠 쿠페로, 지붕을 열었을 땐 완벽한 오픈 스포츠카로 변신할 수 있는 ‘하드탑 컨버터블’ 스포츠카의 선구자다. (벤츠에서는 이 지붕을 ‘바리오-루프’라고 부른다.) SLK는 1996년 데뷔해 이제 3세대 모델로 진화했다.
2세대 SLK에서는 자사의 울트라 럭셔리 슈퍼카 ‘SLR 멕라렌’을 닮은 앞모습으로 디자인이 바뀌었다가, 3세대에서는 또 다른 슈퍼카 ‘SLS AMG’를 닮은 모습으로 변신했다. 여러모로 봤을 때 ‘리틀 SLS’의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외관 디자인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양상이다. 개인적으로도 앞모습은 이전 2세대가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3세대는 안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어쨌든 사진보다 실물이 더 나은 것은 다행이다.
차체 크기는 휠베이스를 그대로 두고 길이와 너비를 각각 30mm씩 늘였다. 멀리서 바라본 비례에서 이전보다 더욱 늘씬한 느낌이 든다. 차체 크기는 4,134 x 1,810 x 1,301mm에 휠베이스는 2,430mm다.
아주 복잡한 듯 보이지만 정교하게 움직이고, 내구성도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난 바리오-루프는 차가 정지한 상태에서 20초 만에 완전히 열린다. 뒷 유리가 뒤집어지지 않게 가위처럼 교차시키면서 트렁크 속으로 접어 넣는 동작이 무척 정교하다. 지붕을 접어 트렁크에 넣어 버리면 트렁크 공간도 줄어들고 사용하기도 불편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윗급인 SL에는 트렁크에 바리오-루프를 수납한 상태에서 그 아래 짐을 넣고 꺼내기 편리하도록 버튼을 눌러서 수납된 바리오-루프를 살짝 들어 올리는 기능이 있다. 비용이 더 드는 장비이겠지만 SLK에도 꼭 있으면 좋을 장비다.
바리오-루프는 마그네슘/플라스틱 소재의 경량 루프가 기본인데, 시승차에는 유리로 된 파노라믹 바리오-루프가 적용되어 있다. 빛을 잘 받기 위한 유리 지붕이지만 햇빛이 강할 때는 차단할 수 있는 커버가 필요할 듯 한데 커버까지 갖춰져 있지는 않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매직 스카이 컨트롤’ 루프를 선택하면 전기 신호에 따라 지붕을 투명하게 하거나 불투명하게 할 수 있어 효과적으로 햇빛을 차단할 수 있다.
SLK도 다른 벤츠 차들처럼 도어를 잠그면 사이드 미러가 자동으로 접히도록 선택할 수 있다. 과거에는 커맨드 메뉴 속에 들어가서 선택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윈도우 조절 버튼 옆에 ON/OFF 버튼으로 자리하고 있어 쉽게 선택을 할 수 있다. 키레스 고(스마트키)는 옵션으로 제공되는데 시승차에는 적용되어 있지 않았다.
컨버터블 차들은 지붕을 열고 실내를 감상하는 재미도 뛰어난데, 3세대 SLK는 실내가 더 화려하고 스포티해졌다. 실내도 슈퍼카 SLS AMG의 분위기가 물씬한데, 특히 십자 형상의 핀을 가진 4개의 원형 송풍구가 가장 눈길을 끈다. 센터페시아와 기어 레버 쪽 디테일은 세단인 C클래스와 똑같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훨씬 스포티하다.
SLK는 전통적으로 두 개의 실린더로 구성된 계기판을 선보여 왔는데, 계기의 원을 톱니바퀴처럼 디자인해 스포티한 멋이 돋보인다.
센터 콘솔 앞 쪽에 있는 덮개를 열면 그 속에 지붕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버튼이 자리하고 있다. 이전 세대 버튼들에 비해 상당히 고급스럽다. S클래스에서는 같은 모양의 덮개를 열면 전화번호를 누르는 숫자 버튼이 자리하고 있다.
시트도 디자인이 더 화려해졌고, 몸을 지지해 주는 능력도 향상됐다. 2세대부터 적용된 에어스카프는 목 부분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주어 추운 겨울에도 지붕을 열고 달리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도록 해 준다.
컨버터블에서는 오디오도 꽤 중요한데, CD, SD카드 뿐 아니라 블루투스 스트리밍도 지원되며 음질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롤오버 바에 부착된 선풍기 날개 모양의 에어 가이드는 손으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데, 지붕을 열었을 때 실내로 바람이 들이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준다. 루프를 덮고 있을 때는 롤 오버 바 뒤쪽으로 접어서 후방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그 동안 수 많은 컨버터블 차들이 다양한 모양의 윈드 프로텍터들을 선보였지만 이번 SLK의 에어 가이드는 처음 보는 스타일이어서 상당히 재미있다.
엔진은 최고출력 184마력/5,250rpm, 최대토크 27.5kg.m/1,800~4,600rpm을 뿜어내는 1.8리터 터보 한가지만 먼저 국내에 들어왔다. 7G-트로닉 플러스 변속기와 어울려 0~100km/h 가속 7초와 최고속도 237km/h의 성능을 발휘한다. 415마력의 SLK55 AMG나 302마력의 SLK 350에 비하면 본격적인 스포츠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고, 골프 GTI의 6.9초, 아우디 TT 로드스터 2.0TFSI의 5.8초의 가속력과 비교해도 다소 부족하다. 하지만 1.8리터 엔진을 얹고, 쿠페와 로드스터로 자유롭게 변신이 가능하며, 매일 편하게 탈 수 있는 스포츠카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매력적인 달리기 성능이다.
과거에는 엑셀을 밟고 (느낌상) 1초 정도 지나야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최근의 벤츠 차들은 응답성이 많이 좋아졌다. SLK도 완전히 즉각적인 반응은 아니지만 나름 매끄럽게 가속을 시작한다. 100km/h로 정속주행 시 회전수는 1,900rpm, 레드존은 6,300rpm이다. 기어 변환은 50, 80, 125, 175km/h에서 각각 이루어진다.
기어 변환 프로그램은 E(이코노미), S(스포츠), M(매뉴얼)로 구성되어 있다. ‘M’모드에서는 시프트 패들을 사용해 적극적인 달리기를 즐기기도 좋다. 회전수 매칭도 비교적 매끄럽고 경쾌하다. 특히 기어 레버를 조작해 수동으로 변속할 때는 레버를 좌우로 미는 방식이어서 시프트 패들의 효용성이 훨씬 뛰어나다.
새 SLK를 타고 달리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무척 편하다는 점과 핸들링이 예리하다는 점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하체 다지기 기술의 정수를 보여 주는 듯 이 작은 스포츠카의 주행감각이 무척이나 편안하면서도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여전히 돋보인다. 매일 타고 다니기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하체다.
그리고 초반에 약간의 유격이 있긴 하지만 앞머리를 예리하게 돌려주는 핸들링 실력도 무척 짜릿하다. 스티어링에는 속도에 따른 파워 스티어링 컨트롤과 조향 각도에 따라 기어비가 변경되는 방식이 복합된 다이렉트 스티어 시스템이 적용되었다. 지붕을 열고 산길을 달린다면 SLK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태생부터 럭셔리 소형 스포츠카를 지향했던 SLK는 3세대로 진화하면서 이미지는 더욱 럭셔리하게, 달리는 감각은 더욱 안정적이면서도 짜릿하게 발전했다. SLK 200 블루이피션시는 과하지 않은 파워와 뛰어난 효율성을 갖춰 매일 타는 스포츠카로서의 매력이 남다르다. 물론 SLK의 최고의 매력은 여전히 쿠페와 로드스터를 동시에 소유하는 효과를 주는 바리오-루프다. 가격은 6,75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