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코는 해치백의 교과서로 불리며 명차 반열에 오른 폭스바겐 골프의 형제 차다. 플랫폼이 같고, 엔진, 변속기를 함께 쓸 뿐 아니라, 크기도 엇비슷하고 해치백이라는 형식까지 동일하다. 다만 시로코는 ‘쿠페스타일’로 특화됐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폭스바겐 시로코라고 하면 유럽에서는 나름 유명한 차이고 197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3세대에 해당하는 이번 모델에 와서야 처음 인사를 하게 됐다.
적어도 외관에서는 골프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해외시장에서 볼 수 있는 골프 3도어 모델과 동일한 구성인데,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그래봐야 해치백이지’라는 선입견은 실차를 접하는 순간 바로 고쳐먹게 됐다. 지붕 끝과 뒷범퍼 사이가 통짜로 연결된 차도 이렇게 날렵하고 멋질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했다. 골프보다 지붕과 앞머리를 낮추고 어깨에 힘을 줘 웅크린 자세를 만든 것이 굉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국내 시판 사양에는 이처럼 스포티한 분위기를 한껏 강조해주는 ‘R라인’ 장식들도 포함되어 있다.
외관에서 잔뜩 높아졌던 기대감은 실내에서 반감됐다. 골프와 한 식구임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다. 골프나 다른 폭스바겐들을 통해 검증된 질 좋은 구성요소들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믿음직하기도 하지만, 차의 성격을 생각하면 외관과 같은 수준의 차별화가 아쉽다.
그나마 실내에도 이어지는 R라인의 스포티한 사양들이 다소 위안이 된다. 낮아진 지붕과 좁아진 유리 면적 덕분에 실내가 한결 타이트하고 단단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공간도 좁아졌다. 특히 뒷좌석의 경우에는 머리를 가누기가 편치 않지만, 쿠페라고 생각하면 크게 흠이 되는 부분은 아니다. 오히려 다리 공간이나 좌우 공간의 여유가 기대 이상이다.
시로코 R라인에 탑재된 2,000cc 디젤 엔진은 일반 골프 2.0 디젤의 140마력보다 훌쩍 높은 170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여기에 수동변속기의 효율과 자동변속기의 편리함, 전광석화 같은 변속속도를 모두 갖춘 DSG변속기가 어우러져 당찬 동력성능을 제공한다.
수치상으로는 ‘핫해치’의 대명사 ‘골프GTI’의 디젤판으로 취급되는 ‘골프GTD`와 같은 수준인데, 체감 성능은 그보다 떨어진다. 외관 때문에 기대치가 높아진데다, 운전 재미를 증폭시키는 음향효과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서다. 웅크린 차체로 인한 낮은 무게 중심과 골프보다 벌어진 윤거, 넓고 낮은 타이어 등 다이내믹한 주행을 즐기기에 한결 유리한 신체 조건도 여기서는 더욱 자극적인 엔진에 대한 아쉬움을 갖게 하는 요소다.
물론 강력한 엔진이 쿠페의 필수 요소는 아니다. 지루하게 생긴 차들 사이에서 개성을 뽐낼 수 있는 멋진 스타일만으로도 존재의의는 충분한데, 시로코는 기본기까지 뛰어나니 금상첨화다. 그리고 GTD가 그랬듯이 성능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은 좋은 연비로 상쇄될 수 있다. 시로코 R라인은 새 공인연비기준으로 15.4km/l를 받았다. 500km 정도를 주행한 시승기간 동안의 평균연비는 16.3km/l였다.
시로코 R라인의 가격은 골프 GTD와 GTI 사이에 낀 4,220만원. 화끈한 해치백(혹은 쿠페)을 찾는 이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 법 하다.
글, 사진 / 민병권 (rpm9.com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