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주-포항에서 진행된 기자단 시승행사에 참석해신형 혼다 어코드를 시승했다. 12일 국내 출시된 9세대 어코드는 2.4리터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한 EX와 EX-L, 그리고 3.5리터 V6 엔진을 탑재한 EX-L로 나뉜다. 이번에 시승한 차량은 3.5 EX-L로, 국내 시판 사양으로서는 풀 옵션에 해당한다. 시승 코스는 편도 63km를 왕복하는 것으로 짜여졌는데, 갈 때는 운전을 하고 올 때는 조수석과 뒷좌석에 타봤다.
글, 사진 /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신형 어코드의 첫인상은 우선 이전 모델과 달리 투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전 어코드는 못생겼는데도 잘 팔리는 이상한 차였다. 국내에서는 말년에 죽을 쒔지만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는 올해 모델 교체를 앞두고도 ‘승용차 판매 2위’자리를 사수했다. 9세대는 말쑥해진 인상이다. 그린하우스 주변에는 8세대의 잔재가 남아있는가도 싶지만, 얼굴만큼은 5세대나 6세대의 것을 재해석해낸 느낌이다. 물론 구형 모델들과는 차별화되는 세련된 디테일들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LED 전조등 같은 특정 사양 뿐 아니라, 각 요소를 나눈 샤프한 면과 선들의 조화가 한결 보기 좋아졌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인상은 익숙한 쪽이다. 모험을 피했다는 것이다.
뒷모습은 하필 현대 제네시스를 닮았다. ‘사진으로 봐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실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일행의 꽁무니를 쫓아가는 시승행사에서는 이차가 결코 쏘나타의 경쟁 모델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던 면도 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주차센서와 함께 외관상 아쉬운 것은 2.4모델의 뒷범퍼였다. 배기구를 양 갈래로 뽑은 3.5와 같은 범퍼를 쓴 탓에 왼쪽 배기구가 떨어져나간 듯 보인다.
뼈가 툭툭 튀어나온 듯 불편한 모습이었던 구형과 달리 9세대 어코드는 매끈하고 날렵하다. 비례도 달라졌다. 휠베이스는 25mm, 전장은 75mm나 줄었다. 하지만 실내공간은 줄지 않았다고 한다. 뒷좌석 무릎공간 등은 오히려 늘었고, 트렁크 적재용량도 그대로라 골프백 4개를 넣을 수 있다. 겉모습 못지 않게 내부 구조도 깔끔하고 스마트하게 정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스포티한 이미지를 추구하느라 패밀리 세단마저 쿠페를 닮아가는요즘 추세에도 불구하고 탑승자의 시야확보와 편안함을 위해 유리 면적을 좁히지 않은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이는 사이드미러의 시야각, A필러의 구조 개선 등을 통한 시야 확보, 사각지대 축소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레인와치’에 있다.
혼다가 이번 어코드를 통해 세계 최초로 선보인 레인와치(Lane Watch)는 기존의 사각지대 감시 장치들과 달리 실내 모니터로 영상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사이드미러 하단에 내장된 카메라로 후방-사각지대-의 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볼보의 BLIS와 같지만, 시스템이 위험 요소를 판단해 경고등으로만 알려주는 BLIS와 달리 레인와치는 운전자가 영상을 직접 보고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BLIS처럼 시스템 오판에 의한 오작동이 없는 것은 장점이지만, 운전자가 차선 변경에 앞서 실내 중앙의 모니터와 바깥쪽의 사이드미러를 모두 살펴야 하는 것은 익숙해지기 전까지 꽤 어색할 수 있다.
레인와치는 3.5에만 적용되며, 오른쪽 사이드미러에만 적용된다. 운전자가 오른쪽 깜빡이를 켜면 자동으로 작동-모니터에 영상을 표시-하는데, 깜빡이 레버 끝의 버튼을 눌러 임의로 작동시킬 수도 있다. 다른 화면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내비게이션 화면이 표시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레인와치 화면으로의 전환이 오락가락 하는 현상이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국내에서 장착한 탓에 아직 호환이 완벽치 못한 것인데, 고객 출고 차에서는 개선이 되길 기대한다. 일부 기자들은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는 중 깜빡이를 켤 경우, 화면 전체가 레인와치로 바뀌어 내비게이션을 볼 수 없게 되는 것도 불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혼다에서는 레인와치가안전장치의 개념이라 큰 화면에 보여주는 것을 우선시한 결과라고 하는데, 양쪽 다 일리가 있다. (BLIS와 달리 끌 수 있는 버튼은 없다.)
신형 어코드는 내비게이션이나 레인와치 등을 보여주는 8인치 화면 외에도 오디오 조작 버튼들을 대신한 터치 패널을 하나 더 갖고 있다. 센터페시아 주변의 디자인이 크게 바뀐 탓도 있겠지만, 위아래로 큼지막한 화면을 두 개나 배치한 덕분에 이전보다 선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막상 조작해보면 딱히 편한 것이 없고, 기능도 많지 않다. 특히 요즘 추세와 달리 블루투스 연결 기능이 빠져 있어서 무선 음악전송은 커녕 핸즈프리 기능도 쓸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다행히 AUX와 USB단자는 가운데 팔걸이 안쪽에 갖추었다.
실내에서는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꼼꼼하게 신경 쓴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화려해지고, 고급스러워졌다. 다만, 반짝거리는 우드그레인과 크롬 장식으로 덮인 변속레버 주변과 앞서의 센터페시아는 다소 부조화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스티어링휠도 심심하다. 세상물정 모르고 튀어나온 주차브레이크는 유난스럽다. 운전석은 8웨이, 동반석은 4웨이 전동 시트이다.
뒷좌석에는 가운데 송풍구를 갖추었고 도어트림에 2단 열선 스위치와 재떨이를 배치했다. 가운데 팔걸이에는 컵홀더만 2개가 있다. 뒷유리나 측면 유리 햇빛가리개는 없다. 유리창은 네 개 모두 원터치로 움직인다. 뒷좌석 등받이는 트렁크 쪽에서 레버를 당겨 접을 수 있는데, 분할 없이 통으로 쓰러진다. 뒷좌석 승객이 공간 여유를 느끼려면 앞좌석 승객이 시트를 끝까지 낮추지 않는 등 협조가 필요하다. 자세는 편안하다.
3.5 모델에 탑재된 V6는 기존 엔진을 개량한 것으로, 출력과 토크가 소폭 상승하여, 최고출력은 282마력이고 최대토크는 34.8kgm이다. 드러나는 수치 외에도 마찰 저감과 무게 감소 등 혼다의 ‘어스 드림 테크놀로지(EARTH DREAM TECHNOLOGY)’를 접목해 효율을 높였다고 한다. 여기에 채용된 혼다의 VTEC 캠은 낮은 회전수와 높은 회전수, 그리고 기통 정지의 3단계로 작동한다. 엔진 부하가 적을 때 일부 실린더를 정지시키는 VCM은 이전의 3기통/4기통/6기통 모드를 3기통/6기통 모드로 단순화시켰다.
직접 운전해보면, 3기통이 꺼져버리는 시점은 눈치 챌 수 없다. 속도계 테두리에 연비 운전을 뜻하는 연두색 조명이 켜질 때 ‘지금은 꺼진 것일까’ 생각해볼 뿐, 별도의 표시가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소음, 진동면에서도 티가 나지 않는다. 액티브 컨트롤 엔진마운트(ACM),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ANC)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한 덕분이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은 실내에 배치된 마이크로 소음을 파악하고 오디오 스피커의 파형으로 이를 상쇄시킨다.
덕분에, 정속 주행 때의 어코드는 아주 조용하다. 높아진 차체 강성을 바탕으로 흡음 패키지도 강화했다고 하는데, 어디까지가 기계적인 효과이고 어디부터가 전자장치에 의한 효과인지는 알 수가 없다. 정속 주행 시 100km/h 에서의 회전수는 1,750rpm 정도. 엔진소음, 주행소음과 달리 불규칙하게 치고 들어오는 요철 충격음은 액티브하게 잡아낼 수 없으니 아쉽다. 자잘한 요철이 반복될 때 덜덜거리며 떨리는 진동이 신경 쓰인다.
승차감은 대체로 편안하고, 차체 쏠림은 미국 시장용 중형세단에서 기대할 수 있는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나 저중속에서의 반응은 민첩한 편이다. 하지만감이 떨어지고 고속에서도 묵직함이 없는 운전대는 속도 내기를 망설이게 한다. 유압식이었던 8세대와 달리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을 채용했고 앞쪽 서스펜션은 더블위시본에서 맥퍼슨스트럿으로 바뀌었다.
풀 옵션인 3.5도 자동변속기에는 스포츠모드가 있을 뿐 수동 모드가 없고, 당연히 운전대 변속 패들도 없다. 그나마 기존 5단에서 6단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 위안이다. 스포츠모드에서 풀 가속을 하면 6,300rpm을 경계로 60, 100, 140km/h에서 변속이 이루어진다. 스포츠모드는 기어 전환을 솔직히 전달해주는박력이 있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작동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ANC와 비슷하게 작동하는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ASC)은 가속 할 때 엔진 소리를 매끄럽게, 더 듣기 좋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가속페달을 늦추거나 기어가 떨어지면서 회전수가 오를 때는 오히려 어색한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어쨌든 엔진 회전은 매끄럽고 힘도 넘친다. 막 밟으면 토크스티어가 나타나니 문제다.
이제야 말이지만, 어코드의 3.5 V6는 VCM이나 ANC등 여러 기술들에도 불구하고 다운사이징 추세에 합류하기를 거부한 구세대 유물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중형차의 엔진으로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어코드 2.4가 뒤늦게나마 가솔린 직분사와 CVT를 도입하는변화를 겪은 것과 비교하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보인다. 물론 미국 시장에는 필요한 유물이고, 나름의 매력마저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라면 아무래도 2.4 EX-L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단, 이 경우 3.5에만 적용되는 일부 사양을 함께 포기해야만 한다.
혼다 어코드의 가격은 2.4 EX 3,250만원, 2.4 EX-L 3,490만원, 3.5 EX-L 4,190만원이다. 어코드 3.5의 연비는 도심 8.8, 고속 13.8, 복합 10.5km/L. 참고로, 273마력 VQ엔진에 CVT를 채용한 닛산 알티마 3.5는 9.2, 12.7, 10.5이다. 복합 연비는 동일한데, 도심과 고속에서 서로 유리한 부분이 나뉘는 모습이다. 알티마 3.5는 3,75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