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코리아가 지난 1월 출시한 준중형차, 포커스 디젤을 시승했다. 2011년 가솔린 모델로 국내 출시된 포드 포커스가 이번엔 엔진만 디젤로 바꿔 새로 나온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흥미로운 차이가 있다. 기존의 포커스 가솔린은 미국산, 이번 포커스 디젤은 독일산이라는 점부터 말이다.
포드 회장 앨런 머랠리의 ‘원 포드(One Ford)’ 전략에 따라 플랫폼을 통일한 포드 차가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생산, 판매되는 요즘이지만, 포커스의 원류는 유럽이다. 포드가 사상 최초로 미국 밖-영국에서 개발, 생산했던 1932년의 ‘모델 Y’가 포커스의 시조였노라고 포드는 전한다. 그 때부터 80년 동안, 혹은 그 이전부터 100년 동안 포드는 유럽에서도 탄탄한 기반을 닦아왔다. 미국 포드가 취약했던 소형차 제작 기술을 보완할 수 있었던 이유다.
포커스의 실질적인 계보는 앵글리아(1939~1968년), 에스코트(1968~2000년)에서 이어진다. 포커스는 1세대가 1998년, 2세대가 2005년에 나왔는데, 이는 유럽 기준이다. 1세대 때 유럽형 모델과 한 배를 타는 듯 했던 미국 포드의 포커스는 2세대 때 삐딱선을 타고 구형 플랫폼을 고수한 독자 모델로 남았다가 2011년의 3세대에 와서야 다시 유럽 포커스와 ‘원 포드’로 뭉치게 됐다.
‘원 포드’라고는 하나, 생산지와 시장이 다르다보니 차의 내용에도 차이가 있다. 유럽 포드에서 개발한 차를 미국 포드에서 현지 상황에 맞게 개량한 것이 기존에 국내 판매되던 가솔린 엔진의 포커스라고 보면, 이번 포커스 디젤이야말로 진짜배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커스 디젤은 생산지마저도 독일 자를루이 공장으로 되어 있다.
유럽에서 80년, 아니 100년을 버텼고 제품 절반을 디젤로 팔고 있는 유럽 포드의 제품이니 디젤 엔진도 제대로다. 유럽포드의 영국 던턴 기술센터에서는 1,500명의 디젤 연구원들이 일하고 있으며, 1998년부터 PSA 푸조 시트로엥과 공동 개발해 내놓은 디젤 엔진들은 유럽 시장의 대중 브랜드들은 물론, 볼보, 재규어, 랜드로버, 미니 등 프리미엄 차들에도 두루 쓰여 왔다. 이중에는 이미 국내에 출시된 모델들이 있는 덕분에, 유럽 포드에서는 한국시장의 피드백을 반영해 개선한 배기 관련 사양을 포커스 디젤에 미리 적용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번에 국내 시장에 소개된 ‘듀라토크(DURATORQ)’ TDCi 디젤 엔진은 1,997cc의 배기량을 갖고 있으며, 엔진 성능이 다른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포커스 ‘트렌드’ 모델에는 140마력, 32.7kg.m 버전이, 포커스 ‘스포츠’ 모델에는 163마력, 34.7kg.m 버전이 얹힌다. 성능 수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수치 발생 시점이나 공인 연비는 동일하다.
변속기는 가솔린 모델과 마찬가지로 첨단 듀얼클러치 방식인 6단 ‘파워시프트’를 적용했다. 유럽포드는 2001년 변속기 전문회사인 독일 게트락과 합작사를 세워 변속기를 만들고 있는데, 파워시프트는 2009년에 등장했다. 동력 전달 효율이 좋고 구조적인 유리함이 있는 건식 듀얼클러치 변속기로, 듀라토크 엔진에 최적화되어 개발되었다.
국내 판매되는 포커스는 가솔린과 디젤 모두 세단과 해치백 차종을 구비했다. 이번 시승차는 디젤 엔진을 탑재한 포커스 세단의 트렌드 모델이다. 지난 번 시승했던 포커스는 가솔린 엔진의 미국산 5도어 해치백이었으니 나름 대조적이다. 6단 파워시프트나 토크벡터링 시스템, 액티브 그릴 셔터의 적용은 공통되는 내용이다. 외관도 독일산과 미국산은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실내가 다르다.
기존 포커스에서 혀를 내두르게 했던 ‘스마트’ 기술들 - 8인치 내비게이션과 소니 오디오, 마이포드 터치(MyFord Touch™), 자동 평행주차 보조 시스템 등은 디젤 포커스에서 찾아볼 수 없다. 가령, ‘와이파이 잘 터지는 차’는 가솔린 포커스(중에서도 고급형)에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사양들이 화제를 모으기엔 좋았으나 차 자체에 대한 내용을 묻어버린 면이 없지 않다. 디젤 포커스는 그런 면에서 담백하다.
마감재가 수수해졌으나, 젊고 미래지향적인, 입체감 있는 실내 디자인 구성은 여전하다. 빈자리를 채우려는 듯 많은 버튼들이 날개 형상으로 배열된 센터페시아 위쪽으로는 오디오 및 음성인식, 외부 기기 연결 등을 지원하는 작은 액정 화면이 자리해 심심함을 덜어준다. 계기판의 (더) 작은 액정을 통해 좌석 다섯 개의 안전벨트 착용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한 점이 재미있다. 가죽시트도 빠졌으나 열선은 있다. 화장거울엔 조명이 없다.
엔진 소리는 디젤임을 숨기지 않는다. 허나 거친 음색이 아니다. 게다가 거슬리는 진동이 없다. 그래서 쾌적한 느낌이다. 변속기와 맞물린 반응도 좋다. 힘이 충분하니 스포츠 버전의 163마력이 딱히 부럽지 않다. 공인 연비가 같다니 조금 손해 보는 기분은 들겠지만 말이다.
습식에 비해 작동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건식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오히려 다른 차들에서 경험했던 습식보다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만큼 엔진이나 차의 특성에 잘 맞춰낸 결과로 보인다. 수동 조작을 변속레버의 버튼으로 하도록 놔둔 것이 불만이지만, 굳이 이걸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달려주는 모습이다. D외에 스포츠모드가 따로 있지만, D에서도 버튼을 건드려 임시 수동 모드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4,000rpm 기준으로 각 단에서 가리키는 속도는 35, 65, 105, 145km/h 정도이다. 6단으로 100km/h를 유지하면 1,800rpm을 가리킨다.
차급을 고려하면 정숙성이나 승차감 면에서 딱히 아쉬운 부분이 없다. 앞쪽에 맥퍼슨 스트럿, 뒤쪽에 ‘콘트롤 블레이드’ 멀티링크 구조를 쓴 서스펜션의 최적 설계와 튜닝 또한 디젤 포커스의 강점이다. 까다로운 유럽 시장에서도 승차감과 핸들링을 양립한 데 대해 최고의 찬사를 듣는 실력인데다, 앞바퀴 좌우의 구동력 배분을 능동적으로 조절해 코너를 안정적으로 돌파하는 데 도움을 주는 토크 벡터링까지 갖췄다. 디젤인데다 조향장치의 전기화로 인해 손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큰 흠은 아니다. 스포츠버전은 서스펜션도 스포츠버전이라는데, 일상생활에서 적당한 운전 재미를 맛보면서 쾌적함도 잃지 않고자 한다면 트렌드 버전의 설정으로 이미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이처럼 흐뭇한 만듦새의 끝에 착한 연비가 곁들여지면서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된다. 140km를 주행한 이번 시승에서 평균 연비는 20.8km/L를 기록했다. 고속도로 공인연비보다 낫다. 도심 공인연비는 15.2km/L, 복합은 17.0km/L이다. 포드코리아의 표현을 빌자면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닌 디젤차 중에서는 국내 최고’ 공인연비란다. 사실, 포커스 디젤에서 연비 못지않게 기특한 것은 ‘프리미엄’을 자처하지 않으면서도 내용물의 수준은 타사의 어줍지 않은 자칭 프리미엄 모델들보다 높다는 점이었다.
포드 포커스 디젤 세단/해치백의 국내가격은 트렌드 2,990만원, 스포츠 3,090만원이다. 대표적인 경쟁 모델은 역시 폭스바겐 골프다. 포커스 세단의 경우엔 폭스바겐 제타(1.6 디젤 3,090만원, 2.0 디젤 3,390만원)가 경쟁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타는 멕시코산이다.
글,사진 / 민병권기자 bkmin@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