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급차’는 우리에게 잘 통용되지 않는 개념이다. 특히 대중적인 브랜드의 제품이 그런 특징을 내세운다면 ‘씨알도 안 먹힐’ 소지가 충분하다. 그래서 아방가르드를 앞세운 프랑스 차 시트로엥은 남다른 형식, 파격을 택했다. 세단으로 대표되는 고급차 브랜드와의 정면승부보다는 차별화를 택한 것이다. 덕분에 프랑스 대통령의 취임식 차로도 쓰일 수 있었던 ‘결코 크지 않은 고급차’, 시트로엥 DS5를 시승했다.
글, 사진 / 민병권기자 bkmin@rpm9.com
그 동안 사진으로 숱하게 봐온 것은 물론, 국내 신차발표회 때는 직접 사진을 찍느라 곳곳을 살폈던 차다. 그런데도 막상 길가에 주차된 시승차를 처음 봤을 때는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가격대 수입차 중 가장 독특한 차를 고르라면 DS5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독특함의 상당부분이 패키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실감했다.
이차를 그냥 ‘해치백’이라고 표현했다가 홍보담당자의 항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도로에서 실물과 마주하고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DS5는 딱히 차종을 집어낼 수 없는 정체불명 크로스오버다. 차체크기는 길이 4,530mm, 폭 1,870mm, 높이 1,510mm, 휠베이스 2,725mm. 휠베이스는 준중형에 가깝지만 부피감은 중형이다.
그렇다고 카렌스 같은 차인가 하면 그것과도 다르다. 따로 세워놓으면 바닥도, 지붕도 높은 차처럼 보이지만, 막상 다른 차(가령, 쏘나타) 옆에 세우고 보면 지붕이 확연히 높아 보이진 않는다. 실제로, 이 차의 지붕 높이는 플랫폼을 공유한 준중형 해치백 푸조 308과 같은 수준이다.
해치백인지, 왜건인지, MPV인지 단정 지을 수 없는 독특한 실루엣과 눈을 현혹하는 스타일링은 차의 크기나 브랜드 가치를 떠나 이 차의 존재감을 높인다. 실속만 따졌다면 결코 취할 수 없었을 멋을 부렸다는 점에서 이 차는 이미 럭셔리하다. 메기 같은 앞모습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고가의 스포츠카 못지않은 카리스마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뒷모습은 시로코처럼 쿠페라고 주장해도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멋진 엉덩이를 자랑한다. 기둥이 보이지 않도록 덮으면서 후방 유리로 이어지는 후측면 창은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이다.
헤드램프에서 A필러까지 이어지는 하키스틱 모양의 크롬 장식은 앞으로 한껏 전진한 카울포인트(앞유리 하단)를 상쇄시켜 보닛이 길어 보이는 착시를 준다. 업계에서 잘 쓰지 않는 디자인 문법이라 쏘나타나 그랜저의 것에서 힌트를 얻은 듯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2005년 공개됐던 콘셉트 카 ‘C-스포츠라운지(C-Sportlounge)’에서 거의 그대로 살아남은 부분 중 하나이다. 콘셉트 카에서 양산차로 탈바꿈하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 시트로엥이 프리미엄 브랜드로 출범시킨 ‘DS’라인의 세 번째 주자로 DS5를 공개한 무대는 2011년 상하이모터쇼였다.
‘높은 것 같은데, 의외로 낮다’는 데서 오는 어색함은 차에 탈 때도 이어진다. 시트가 여느 세단보다 높아 엉덩이를 옮겨 놓기는 편한데, 머리는 신경 써서 낮추고 들어가야 한다. 뒷좌석도 마찬가지. 일단 앉고 나면 그런 것 정도는 싹 잊게 된다. 외관도 그렇지만, DS3, DS4를 거쳐 드디어 본론에 들어간 것 같은 실내 분위기에 사로잡혀서다.
세로로 길게 배치된 헤드콘솔에 의해 반으로 나뉜 투명 지붕과 앞 유리-옆 유리 사이의 모서리 쪽창, 시동을 걸면 일어서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 등이 조종석에 앉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앞모양이나 실루엣 때문인지 전투기보다는 폭격기의 안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헤드콘솔의 선글라스 케이스를 열거나 멋지게 배치된 토글 스위치로 HUD화면을 설정하다 보면 마치 이륙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시승차는 DS5의 세 가지 트림 중 중간급이라, 이 차의 자랑 중 하나인 손목시계 끈 형상의 하바나 가죽 스포츠 시트가 적용되지 않았다. 바이에른산 수소 가죽으로 만들어 의자 값만 수백만 원에 이른다는 물건인데, 그게 아니더라도 가죽 질이 떨어져 보이는 것은 아니다. 동반석까지 전동조절이 되고, 운전석은 전동 요추받침을 이용한 마사지 기능까지 제공한다.
실내 마감은 소재의 풍성함과 디자인의 관록을 느끼게 한다. 보고, 만지는데 있어서 고급차로 받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계기판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명품 차니까’라는 생각으로 넣었을 센터 페시아의 아날로그 시계와 테두리 조명으로 부각시킨 시동 버튼이 눈길을 끈다.
공조장치 조작부는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실제 작동하는 버튼이 작아 불편할 수 있다. 다이얼은 큼직큼직하고 패턴이 정성스럽다. 온도 자동 조절 상태에서도 바람세기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실외 퍼들 램프나 실내 발 공간 조명등은 제공하고 있지만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는 무드 조명이 없는 것은 아쉽다. 실내등이나 독서등 같은 것은 모두 LED로 처리했다. 트렁크 열림 버튼 등 세세한 조작부의 조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국내에서 장착한 내비게이션이 자리한 중앙 화면은 다소 휑한 느낌이 있다. 후방카메라가 없는 것도 아쉽다. 전후방 주차센서는 달렸다. 외관상, 주차 조향 보조 장치가 있었으면 잘 어울렸겠단 생각도 든다. 센터콘솔에 냉장 기능의 깊숙한 수납공간이 숨어있는 것은 DS4나 푸조 3008과 비슷한 내용이다.
남다르게 화려한 겉모습만큼 실용성도 남다르게 챙겼다. 중앙에는 컵홀더가 없어 도어 트림 하단의 포켓을 이용해야 한다. 가운데 팔걸이는 어느 쪽 레버를 잡고 여느냐에 따라 상단 수납공간만 열리거나 아래쪽 공간을 쓸 수 있게된다. 전원소켓은 상단에, 아이팟 및 USB 연결선은 아래쪽에 배치됐다.
고급차를 지향했으나 큰 차가 아니니 뒷좌석 위주의 차는 아니다. 뒷문을 열고 차에 오를 때부터 좁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앉아서도 다리나 발 공간은 넉넉지 않다. 대신 등받이 각도나 머리 공간은 아쉽지 않은 수준이다. 푹 파인 시트 형상이 일조하는 것 같다.
이 차를 취임식 의전차로 썼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차는 지붕을 열 수 있도록 특별히 개조하긴 했으나 측면 유리창을 끝까지 내려도 3분의 1이상 남는 것은 어쩌지 못했었다. 덕분에 창밖으로 손을 흔드는 대통령의 모습이 편해 보이진 않았다.
사실 뒷문 바깥 쪽 손잡이가 정상적(?)으로 달린 것에 안심했다가, 안쪽 손잡이 부근에 윈도우 스위치가 없어서 순간 긴장했었다. DS4처럼 ‘쿠페니까’라면서 창문을 못 열게 만들어 놓은 건가 싶어서다. ‘다행히’ 스위치는 뒷좌석용 중앙 송풍구 아래에 모여 있다. 앞좌석에서 창를 열어봤으면 쉽게 유추할 수 있었던 상황이다. 이 차는 의도적으로 거의 모든 조작부를 운전자 오른쪽, 즉 실내 중앙의 위아래로 몰아놓았다.
천장에 뒷좌석 전용 투명 지붕이 있는 것은 황송한 일이다. 다만, 전동덮개의 조작은 운전자에게 부탁해야 한다. 개방감만 놓고 보자면 지붕을 이렇게 조각조각 나눠놓는 것보다는 푸조 3008처럼 통짜가 낫겠지만, 탑승자 각자의 기분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어느 쪽이던, 선루프처럼 열 수 없다는 것은 함정. 그리고 예상했던 측면 햇빛가리개가 없다.
가운데 팔걸이는 앞쪽이 높게 기울어져 있지만 자세는 어색하지 않다. 컵홀더가 달려있고, 시트 폴딩과 스키 스루가 모두 가능하다. 방석을 앞으로 젖히고 등받이를 접으면 뒤판이 트렁크 바닥과 평편하게 연결되면서 적재용량이 1,600리터까지 늘어난다. 기본 용량은 468리터. 보기보다 넓다. 턱이 높고 지붕이 뒤로 갈수록 낮아지지만, 테일게이트가 지붕 끝을 파고들어 넓게 열리니 개구부가 좁다는 느낌도 덜하다. 트렁크를 여는 버튼은 범퍼의 번호판 위쪽에 숨겨져 있다. 스페어타이어는 없고 수리키트와 타이어 공기압 감시 장치(TPMS)를 갖췄다.
이 차에 탑재된 2.0리터 디젤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는 그동안 여러 푸조 차들을 통해 친숙해진 조합이다. 여기서는 최고출력 163마력/3,750 rpm, 최대 토크 34.6kg.m/2,000rpm을 발휘하고 있다. 동력성능에 앞서, 소음, 진동 특성이 우수하다. 시동걸때는 차체가 떨리는 느낌조차 없다. 멀리서 울리 듯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디젤임을 되뇔 뿐이다. 주행 시에도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나 차 잘 파는 다른 브랜드의 동급 디젤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꾸르륵 거리는 엔진 소리가 독일 차와는 다른 감성이다. 앞좌석 측면 창에 이중접합 유리를 적용한 것을 보면 진지한 자세가 느껴진다.
가속페달은 가볍게 밟히고, 차는 상냥하게 반응한다. 저속에서의 변속기 직결감은 MCT를 연상시키지만, 속도를 붙이고 나면 유연하게 나가는 느낌으로부터 다시 한 번 ‘좋은 조합’이라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생긴 실내외를 가진 차라면 더더욱 PSA 푸조 시트로엥이 자랑하는 세계 최초 양산 디젤하이브리드 시스템 ‘HYbrid4’가 잘 어울릴 것 같다. 실제로 DS5는 시트로엥 차중 최초로 HYbrid4를 탑재한 차였고, 대통령 의전차도 그 사양이었다. (앞바퀴를 2.0리터 디젤 엔진으로 구동하는 것은 시승차와 같으나, 동시에 뒷바퀴도 전기모터로 굴릴 수 있다.)
페달을 끝까지 밟아 가속할 때는 최고출력 발생 시점보다 높은 4,250rpm을 경계로 40, 70, 105km/h에서 다음 단으로 변속된다. 제원 상 0-100km/h 가속시간은 9.8초, 최고속도는 211km/h로 평범하고 고속영역에서는 가속이 더디지만 아쉬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평상시 좀 더 스포티한 주행을 원한다면 작은 ‘S’버튼을 눌러 스포츠 변속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면 된다. 수동조작 모드는 있으나 변속패들은 없다. 정속주행 때는 6단 2,000rpm에서 110km/h 정도. 편안한 장거리 이동을 기대할 수 있는 정숙성과 승차감을 확보했다.
요철 구간에서는 하체 반응이 다소 단단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과한 정도는 아니다. 묵직하면서도 충격을 조용하게 잘 구슬러 고급스러운 거동을 보인다. 235/45R18사이즈의 타이어와 후륜 토션빔 구성을 고려하면, 과연 실력이 좋다. 플랫폼 관계상 차체가 더 큰 시트로엥 C5가 가진 ‘하이드라 액티브’ 서스펜션을 갖출 수 없었던 것은 이 브랜드의 기술력이나 독특함을 한껏 뽐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스티어링 휠의 아래쪽을 평편하게 깎아 모양낸 것은 보기에 좋으나 주차할 때 종종 당황스럽다. 무게감은 그동안 푸조 차에서 익숙해진 것과 별다르지 않은데, 조금은 가벼운 편이다. 운전 재미를 깎아먹는 수준은 아니다. 고속 직진 주행 시에는 작은 조향 조작 시 약한 자석이 붙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 흥미롭다. 안정성은 우수하다. 야간 주행 시에는 조향 조작에 따라 헤드램프 방향이 틀어지며, 저속에서는 해당 방향의 안개등이 켜져 시야 확보에 도움을 준다.
실제 높이가 어찌됐건, 운전 시에는 주위의 흔한 승용차들보다 조금 높이 앉은 느낌을 받는다. 넓은 앞 유리가 시원스럽지만, DS4의 ‘확장형 이마’도 탐난다. A필러가 앞으로 전진 하면서 추가된 보조 기둥과 딱히 높지 않은 룸미러는 종종 시선을 가리는 느낌을 준다. 룸미러에 비친 뒤창도 가로로 나뉘어 복잡함을 더한다. 운전 자세는 풋레스트 때문에 불만스럽다. 이에 맞춰 시트를 뒤로 빼자니 운전대 거리 조절 폭이 부족하고, 시트를 높이자니 천장까지의 여유가 적다.
현재 속도와 크루즈컨트롤 작동 상황 등을 계기판을 내려다보지 않고 알 수 있게 해주는 가동식 HUD는 푸조 3008에서 처음 봤을 때보다 한결 세련돼졌다. 컬러일뿐더러 작동이 부드러워 시동을 켜고 끌 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차간 거리 경고 기능은 없다. 해외사양의 DS5에는 차선이탈 경고 기능도 준비되어 있다. 주차브레이크는 전동식인데, 오토 홀드 기능은 제공하지 않으며, 레버 위치상 팔꿈치를 뒤로 빼야 조작할 수 있다. 당기면 걸리고 당기면 풀리는 방식이다.
시승차의 트립컴퓨터에 남겨진 (출고 후 총 주행거리나 마찬가지인) 약 3,000km구간의 평균연비는 12.0km/l. 이 차의 공인 연비는 14.5km/l이다.
국내 판매되는 시트로엥 DS5는 ‘Chic’, ‘So Chic’, 그리고 ‘Executive’ 트림으로 나뉘며, 가격은 각각 4,350만원, 4,750만원, 5,190만원이다. Executive에는 시승차에 빠진 하바나 가죽시트 외에도 데논의 10스피커 사운드시스템이 적용된다. 수입차 시장에서 이 가격대에 포진한 모델들을 살펴보면 DS5의 독특함이 더욱 돋보일 것이다.
DS5는 현재 시트로엥의 라인업에서 가장 큰 차는 아니지만 가장 고급차다. DS5를 통해 DS시리즈의 본론을 전달한 시트로엥은 현재 잠시 쉬어가는 모습이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C세그먼트 세단과 SUV, D세그먼트 세단 등을 추가해 라인업을 확장해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러한 도전이 국내외 고급차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아직은 시간을 두고 지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