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uliette)’ 전막 드레스 리허설이 12월 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됐다. 본 공연은 8일부터 11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영국의 자존심 윌리엄 셰익스피어스의 감미로운 희곡을, 프랑스 작곡가 사를 구노가 영국인도 인정한 19세기 최고의 프랑스판 로맨스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김학민 예술감독과 엘라이저 모신스키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김덕기의 지휘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했고, 그란데오페라합창단, 진아트컴퍼니가 함께 했다.
◇ 비현실적인 색감, 고전적 스타일 연출
서곡이 시작되면 무대 조명이 한 번에 들어온다. 무대 커튼이 서서히 올라가는 일반적인 시작보다 훨씬 인상적이다. 무기력하고 넋이 나간 것 같은 움직임으로 등장한 사람들은 레퀴엠을 연상하는 합창을 한다.
무대 공간 사이로 움직이는 2개의 스크린 커튼은 공간을 다르게 느끼도록 만든다. 공간을 분리하기도 하고, 공간에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반투명 커튼을 통해 커튼 뒤 사람들의 움직임이 실루엣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근접한 대상에 초점을 맞춰 멀리 있는 배경과 사람들을 흐릿하게 보이게 하는 카메라 설정 같은 연출이다.
정통 오페라 연출법을 구사하는 엘라이저 모신스키는 단순하고 절제된 무대를 만들었다. 연출가와 디자이너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과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무대를 코발트블루빛으로 가득 채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오직 이상적이고 서정적인 사랑의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는 시적인 세계를 표현했다.
이번 작품을 직접 관람하면 연극적이거나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이고 이미지적이라고 느껴진다. 비현실적인 색감에 총천연색을 사용하지도 않고, 조명의 화려한 변화도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 두 사람이 사랑할 때 둘만 남고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연출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중창을 부를 때 무대 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지된 상태로 있는 시간도 있다. 자극적인 면에 익숙해진 관객에게는 오히려 신선함을 줄 무대이다.
복장도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다. 로미오의 몬태규가의 의상은 색깔이 빨간색으로 강렬함을 가지고 있으나 스타일은 단순하고, 줄리엣의 캐퓰렛가의 의상은 색감도 평범하다. 원색의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티볼트(테너 민현기 분)의 죽음에서도 요란한 효과를 사용하지 않는다. 극적이라기보다는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도 그 자체로 전달하지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죽는 순간은 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작품은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야를 새롭게 자극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 시원시원한 가창력의 나탈리 만프리노, 편하게 부르며 고음을 소화한 스티븐 코스텔로
줄리엣은 프랑스 레퍼토리의 스페셜리스트 나탈리 만프리노와 도밍고가 발탁한 차세대 오페라스타 박혜상이 더블 캐스팅됐고, 로미오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스타 테너 스테판 코스텔로와 감미로운 미성의 실력파 테너 김동원이 번갈아 맡는다.
프레스 오픈 리허설에서 코스텔로는 아리아를 립싱크하는 것처럼 아무 힘을 들이지 않고 편하게 불렀는데, 고음까지도 바로 연결하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만프리노는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선보여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섯 번 만나서 네 번의 이중창을 부른다. 코스텔로와 만프리노는 다른 배역의 성악가들과는 달리 외국인이기 때문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몬태규가와 캐퓰렛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방인 같은 이국적 느낌을 줬다.
김동원과 박혜상이 맡은 회차의 공연은 어떤 다른 느낌을 전달할지 궁금해진다. 영국의 정서에 프랑스의 음악, 그리고 한국의 감성이 만든 무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할 것이다.
◇ 두 집안의 불화가 없었으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감동적이었을까?
이번 공연은 두 집안의 갈등과 불화보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점은, 두 집안의 불화가 없었으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감동적이었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못하게 막기 때문에 더욱 사랑이 불타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런 경우인지 장애물과 상관없이 불탔을 사랑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흥미롭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표현과 만나는 시간이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면서, 충동적이지 않았으면 둘 다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랬다면 그들은 만나지 조차 않았을 수도 있다.
두 가문의 대립은 명예일까? 자존심일까? 인터넷상에서 편을 나눠 논쟁하고 서로 만나는 현피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그런 모습이 현대에 와서 처음 생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