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국내 자동차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내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형차 시장에서 현대 쏘나타의 아성이 흔들거리는 틈을 타 쉐보레 말리부와 르노삼성 SM6가 성공적인 데뷔를 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신라면을 고르듯 당연히 선택되던 쏘나타는 어느새 자가용 시장에서 2위로 떨어졌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쉐보레 말리부가 있다. 물론 처음부터 성공한 건 아니다. 지난 2011년에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선보인 8세대 말리부는 높은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런 판매를 기록했다. 데뷔 초기 파워트레인의 결함이 지적됐고, 좁은 뒷좌석도 선택의 걸림돌이 됐다. 한국GM 측은 언론의 지적을 수용하기보다는 해명하는 데 신경 썼다.
올해 등장한 9세대 모델은 완전히 환골탈태(換骨奪胎)했다. 지난 5월 시승회에서 만난 2.0ℓ 터보 모델은 그동안의 지적사항을 모두 수용한 듯 전혀 다른 차가 돼 있었다.
지난 6월 말에는 1.5ℓ 터보 모델을 추가로 시승했다. 1.5ℓ 가솔린 터보 모델은 국산 중형차는 물론이고 수입 중형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존재다. 잘 만들면 돋보일 수 있지만 완성도가 어설프면 아예 외면 받을 위험성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리부 1.5는 잘 만든 수작(秀作)이다. 말리부 2.0 모델에 비해 공차중량이 50~70㎏ 가벼운 1.5 모델은 출발부터 가볍게 치고 나간다. 8세대 말리부 초창기 모델의 굼뜬 반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최대토크의 구간이 2000~4000rpm으로 2.0 모델의 2000~5000rpm에 비해 살짝 좁지만, 전혀 문제될 건 없다.
현대 쏘나타 1.6 터보와 비교하면 출력이 14마력 낮고 최대토크가 1.5㎏‧m 낮지만, 대신 공차중량이 55~65㎏ 가벼운 덕에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여전히 아쉬운 점은 손가락으로 조작하는 토글 시프트가 어색하다는 것. 수동 모드로 조작하기 위해서는 기어 레버를 아래쪽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럴 경우 운전자의 손이 너무 뒤쪽으로 가게 된다. 이 상태에서 시프트 업은 앞쪽 + 버튼, 시프트 다운은 뒤쪽 - 버튼을 누르도록 했다. 버튼이 밋밋해 앞뒤 구분이 잘 안 갈뿐더러, 패들시프트가 없어 코너링 중에는 조작이 힘들다. 이 점은 추후 반드시 개선되길 바란다.
도서관보다 조용한 정숙성은 2.0 모델과 마찬가지다. 승차감은 다소 부드러운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8세대 말리부의 묵직함이 없어 아쉬울 수도 있지만, 쉐보레는 묵직한 느낌보다 경쾌한 주행을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보쉬의 랙 타입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EPS)은 정확한 조종성과 핸들링에 큰 도움을 준다. 쏘나타의 칼럼 타입 EPS에 비해 확실히 우위를 보이는 부분이다.
말리부는 쉐보레가 근래 만든 차 중 가장 돋보이는 모델이다. 덕분에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GM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 분위기를 다른 제품군에도 이어가야 한다는 것. 르노삼성은 SM6의 상승세를 QM6로 이어 큰 재미를 보고 있다. 쉐보레도 말리부를 닮은 중형 SUV를 내놓는다면 더 좋은 실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엔진/미션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