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이하 ‘도깨비’) 제12회는 이전 몇 회에 걸쳐 암시와 복선을 통해 개연성의 근거를 확보하고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만든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전개가 이뤄졌다.
특히, 제11회 마지막에 나온 김병철(박중헌 역)의 혐오스러운 장면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장르가 판타지에서 호러로 변하며 그간 ‘도깨비’가 가지고 있었던 정서와 달리해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었지만, 김병철은 연기력으로 이질성을 극복해했다는 점이 주목됐다.
◇ 육성재의 정체, 연결 과정에서 보여준 독창성
본지는 육성재(유덕화 역)의 정체 자체도 중요하지만, 육성재의 정체, 그리고 과거와의 연결고리와 과정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궁금하다고 제11회 두 번째 리뷰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바 있다.
육성재가 어떤 인물일 것이라는 것은 여러 갈래로 추측돼 왔지만, 육성재 안에 신이 들어있었기에 육성재 자체는 별다른 정체가 없다는 정말 역설적인 반전을 보여줬다. 그간 육성재가 보여줬던 남다른 행동들은 육성재가 한 일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신의 행동이었으며, 육성재는 신이 몸 안으로 들어갈 만큼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이라는 것을 시청자들은 알 수 있었다.
구성력이 뛰어난 시나리오는 보통 큰 갈등이 해소될 때 다시 작은 갈등을 유발해 긴장감과 정서의 완충을 유지하는데, ‘도깨비’ 또한 그런 기본에 충실하고 있다. 육성재의 정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 같지만, 공유(도깨비 김신 역)는 “왜 몰랐을까?”라며 충분히 육성재 안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불씨를 남겨뒀다.
이는 시청자들도 추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 멘트이면서, 추후 공유와 이동욱(저승사자 분)의 행동에 대한 암시라고도 볼 수 있다. 특별히 신경 써서 인지하지 않은 과거 방송 장면으로 인한 크거나 작은 반전이 예상된다.
◇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
정말 부러운 행복을 누리는 사람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는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깨비’의 이번 회에는 그런 농담 같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과거 공유를 따르는 충신으로 김민재(왕여 역)의 명령으로 공유의 가슴에 검을 꽂고 자신도 잇달아 죽음을 맞이한 윤경호의 현재 모습이 드러났다.
윤경호는 공유의 충신이면서도 공유를 검으로 찌르는 장면이 자주 반복돼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이미지를 준 것도 사실이다. 이번 회에서는 공유의 보이지 않은 도움으로 윤경호는 회사에 취직되고, 면접을 잘 봤다는 명목으로 집과 차를 얻게 된다.
윤경호가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궁금해하자, 조우진(비서, 신임 사장 역)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깨비’는 크고 작은 디테일에서도 판타지를 추구하는데, 윤경호를 보면서 정말 착하게 살아야겠다, 의미 있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 혐오감이 주는 이질성을 연기력으로 극복하다
이번 회의 특징 중 하나는 그간 이어오던 판타지가 호러로 장르가 바뀐 것 같이 강렬한 전환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회는 크고 작은 반전도 같이 일어났기에 이런 장르적 변환은 시청자들이 몇 주간 끌고 온 감정선을 어그러뜨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혐오감이 주는 이질성을 극복한 것은 김병철의 연기력이다. 단순히 무섭고 혐오스러운 면만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는 내면을 표현하며 나름대로의 정당성과 동의를 구하려고 하는 점을 그의 연기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김병철과 같이 등장한 인물들이 장면의 호흡을 잘 맞춘 점도 주효했는데, 특히 김고은(지은탁 역)과의 대화에서 김병철과 김고은의 연기력이 모두 돋보였다.
‘도깨비’는 김고은의 눈에 보이는 귀신을 다루면서도 혐오스러운 면이 거의 없었다. 도깨비 또한 친근하고 잘생겼으며, 저승사자는 시크한 매력과 뛰어난 마스크를 가졌다. 무척 친한 친구처럼 티격태격하는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도깨비와 저승사자 등을 친근한 대상으로 여기게 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저승사자라면 어떨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과거에 자신을 죽인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동욱의 현재와 과거를 모두 알게 된 유인나(써니 역)는 괴로워하면서도 사랑의 마음을 저버리지 못한다.
아련한 마음, 애잔한 정서가 구백 년을 쌓아 온 분노, 구백 년을 기다린 복수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해진다. 김병철이 공공의 적으로 등장할 수 있기에 구백 년의 관계에 변화가 생길지, 아니면 시청자들의 기대하는 마음에 검을 꽂으며 드라마가 마무리될지, 일단 다음 방송이 무척 기다려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