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세계 최초의 AMG 브랜드 적용 트랙을 한국에 오픈한 건 지난 5월이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스피드웨이(FIA 공식 명칭)는 이 때부터 사람들에게 ‘AMG 스피드웨이’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5개월 후인 10월 8일, 메르세데스-벤츠는 ‘AMG 스피드웨이 익스피리언스 데이’를 열었다. 이 행사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AMG 드라이빙 아카데미(AMG Driving Academy)의 론칭을 미디어에 알리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트랙 주행과 슬라럼, AMG 라운지 체험의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이 프로그램은 AMG 스피드웨이를 오픈하기 전인 2016년 11월에도 유사하게 진행했는데, 당시에는 선착순 신청에서 밀려 참가하지 못했다.
이후 지난 5월에 AMG를 체험해볼 기회가 주어졌고, 이번에 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이처럼 AMG 체험 기회를 늘리는 건 스포츠카 분야의 영토 확장을 위해서다. 디미트리스 실라키스(Dimitris Psillakis) 사장은 “분석을 해보니 AMG를 특권층이 타는 차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 스포츠카로 인식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슬라럼 코스는 콘을 좌우로 지나 U턴을 한 후 다시 직선 코스, 이후 U턴을 하고 원 선회 뒤에 레인 체인지 후 골인하는 구성으로 이뤄졌다. 오전조의 최고 기록은 34초 중반 정도. C조에서 네 번째로 참가한 내 기록은 34초66이었다. 단 한 번의 주행으로 끝나는 단판승부였는데 다행히 실수를 하지 않았다. 지난 5월에는 슬라럼을 진행한 후 순위를 매겼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기록만 체크했다.
트랙 체험에 제공된 차는 AMG GT S와 E 63 4매틱 플러스. GT S는 2009년 선보인 SLS AMG에 이은 AMG의 두 번째 독자 개발 스포츠카다.
일부 기자들에게만 시승기회가 주어졌던 SLS AMG를 타봤을 때는 실망감도 컸다. 슈퍼카급의 차체와 성능을 지녔지만 핸들링과 운동성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까닭이다. 해외 평론가들의 평가도 냉담했다.
이후 등장한 AMG GT는 일상생활에서 데일리카로 쓸 수 있는 차로 방향을 선회했다. 2018년형은 기존의 다이아몬드 그릴을 버리고 GT3에 쓰는 수직 바 형태의 파나메리카나 그릴로 단장했다.
출발하려는데 변속 레버를 잠시 찾는다. 예전에 타보긴 했지만, 너무 뒤에 위치한 변속 레버의 위치는 여전히 낯설다.
V8 4.0ℓ 트윈 터보 엔진(M178)은 터보 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즉각적이다. ‘핫 인사이드 V’라는 별칭이 달린 이 엔진은 터보차저를 엔진 앞에 다는 일반적인 설계와 달리, 실린더 뱅크의 바깥과 V자형 뱅크 사이에 달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터보의 반응성을 높이고 배기가스를 줄이는 효과를 얻는다.
변속기는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레이스 등 4가지. 2018년형부터 기본으로 들어가는 AMG 라이드 컨트롤 스포츠 서스펜션은 전자제어 댐핑 시스템으로 주행실력을 높였다. 더욱 탄탄해진 하체는 직선주로에서 최고시속 200㎞를 달린 후 급하게 꺾이는 스피드웨이의 코너를 대담하게 공략하는데도 끄떡없다. SLS AMG로 같은 코스를 돌았다면 분명 차체가 널뛰듯 휘청댔을 것이다.
스피드웨이에 있는 시승차에는 모두 한국타이어가 장착된다. 몇 년 전만해도 국산 타이어와 외산 타이어는 성능 차이가 뚜렷했는데, 한국타이어가 제공하는 4종류의 타이어는 상당히 우수한 그립감을 보여준다. 향후 AMG 트랙 행사를 찾는 이들에게도 좋은 반응이 예상된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후배 기자가 다가와서 한 마디 한다. “AMG는 하도 많이 타봐서 이젠 감흥이…하하.”
그는 벤츠 초청 해외 시승행사를 올해에만 두 번 다녀온 주인공이다. 로또보다 확률이 낮다는 벤츠의 초청행사에 어떻게 하면 당첨이 되는지 물어보려는데 다음 시승 순서가 왔다.
이어서 타본 E 63 4매틱은 의외였다. 얼마 전 공도에서 시승한 E 43에 비해 출력이 높은 건 말할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하체가 훨씬 탄탄한 게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고성능 세단이라 해도 트랙에서는 과격한 주행에서 어느 정도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데, E 63은 그런 점을 거의 찾기 힘들었다.
E 63의 최고출력은 571마력으로, AMG GT S(522마력)보다 더 높다. 정지에서 시속 100㎞ 가속시간은 3.5초. 단순히 출력만 높인 게 아니라 저속 주행에서 연비를 향상시키는 실린더 매니지먼트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성능 면에서 흠 잡을 데 없는 엔진이지만, 과거 6.2ℓ 엔진을 쓰던 AMG에 대한 향수는 여전히 남는다. E 63도 머플러에서 따발총 소리를 쉼 없이 쏘아대기는 하지만, 맹수처럼 울부짖는 대 배기량 엔진에 비할 바는 아니다. E 63은 1억5200만원으로, E 43(1억1250만원)에 비하면 3950만원 비싸다.
AMG 드라이빙 아카데미는 퍼포먼스, 어드밴스드, for 레이디스 등 세 종류로 운영된다. 퍼포먼스는 안전 운전 교육과 드라이빙 테크닉 위주로 진행되고, 이것을 이수하면 어드밴스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퍼포먼스는 하루 100만원인데, 이틀간 진행되는 어드밴스드 프로그램은 가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반나절 동안 진행되는데 가격은 60만원이다.
독일의 경우는 AMG 익스피리언스부터 퍼포먼스, 어드밴스드, 프로, 프로 플러스, 마스터즈, 레이싱 캠프 등 7종류의 프로그램이 준비된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비교적 단순하다. 이에 대해 마틴 슐츠(Martin Schulz) 부사장은 “어떤 이들이 참여할지 궁금하지만 단계적으로 접근하겠다”면서 “퍼포먼스 프로그램도 오전에는 참가자의 수준을 파악한 후 오후에는 개별 지도로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에 대해서 그는 “독일 레이싱팀에서 오는 강사와 대당 2억원이 넘는 차에 대한 보험, 안전요원 등 여러 준비 요소를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11월부터 진행되는 AMG 드라이빙 아카데미는 올해 안에 회차당 40명씩 총 200명을 대상으로 열린다. 마틴 슐츠 부사장의 얘기대로 어떤 이들이 참여할지, 얼마나 참여할지가 성공 여부를 가릴 것으로 보인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