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릭 입센 원작, 유리 부투소프 연출,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연극 <인형의 집>이 11월 6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한국과 러시아 제작진의 협업으로 만들어졌으며, 정운선(노라 역), 이기돈(헬메르 역), 우정원(린데 부인 역), 김도완(크로그스타드 역), 홍승균(랑크 박사 역)이 출연한다.
린데 부인은 <인형의 집> 처음에 결핍이 가장 많았던 인물이었는데, 극 마지막에는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린데 부인을 얄미운 캐릭터가 아닌 관객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로 우정원은 표현하는 디테일을 발휘했다. <인형의 집>의 우정원은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해석력과 디테일한 표현력이 뛰어난 배우이다.
◇ 역지사지! 서로 역할을 바꿔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형의 집>에서 배우는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른 배우가 할 때 무용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런 설정은 여러 번 반복되는데, 만약 영화나 드라마였으면 덜 와닿았을 것이고, 소설이었으면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라가 헬메르의 역할을 하고 헬메르가 노라의 역할을 한 후, 원래의 역할로 다시 한 번 반복되는 장면은 그중에서도 인상적이다. 시점의 변화, 관점의 변화를 주며 상대방의 시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형의 집>에서 다섯 명의 감정은 얽혀 있는데, 이런 연출법은 배우와 관객 모두를 역지사지하게 만든다.
린데 부인과 크로그스타드의 대화를 다른 인물이 하고, 두 사람은 그 시간에 대화를 안무로 표현하다가 마지막 대화만 본인들이 직접 하기도 한다. 본인의 역할을 다른 사람이 하고, 그 시간에 본인은 무용수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인형의 집>에서 반복해 제시하는 남편을 왜 ‘그’라고 표현하지 않는지, 부인을 왜 ‘그녀’라고 표현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 또한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남편과 부인을 바꾸는 역지사지가 아니라 제3자로 바꿔 객관화하는 역지사지를 적용할 수 있다.
정서와 주도권의 반전을 보여주는 역할 변경은 남녀의 대결보다는 인간 사이의 기본적인 문제라는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연출은 밝힌 바 있다. 고민할 수 있도록 문제 제기를 한 것인데, 그 고민 또한 너무 틀 안에 박혀서 할 필요가 없다는 연출의 의도를 관객은 존중해야 한다.
◇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해석력과 디테일한 표현력이 뛰어난 우정원
린데 부인은 <인형의 집> 처음에 결핍이 가장 많았던 인물이다. 3년 전에 배우자상을 당했고, 현재는 돈이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다. 그런 본인 앞에서 노라는 돈 자랑, 자신의 남편이 은행장이 됐다는 자랑을 한다. 노라는 린데 부인을 공격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지만, 노라의 행동에 린데 부인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린데 부인은 크로그스타드와 불편한 과거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와도 불편한 관계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형의 집> 초반에 다섯 명 중에서 현실이 가장 막막한 인물은 린데 부인이다.
그렇지만 린데 부인은 노라, 헬메르, 크로그스타드를 움직이게 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그들에게 일정 부분의 좌절과 상실감을 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복수를 조용하게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얄밉게 행동해서 그렇게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미움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네 명에게는 모두 전적인 상실 혹은 부분적인 상실이 발생한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거의 유일하게 가진 게 많아진 인물이 린데 부인이다. 공연이 끝난 후 우정원이 심리적으로 가장 통쾌하고 시원할 수도 있다.
우정원은 필자의 질문에 린데 부인 캐릭터가 위화감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쟁취하기보다는 상황을 잘 받아들이도록 표현했다고 밝혔다. 우정원은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심정과 과정, 기준을 모두 똑똑하게 표현했다. 관객을 공감시키는 법,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말로 표현하는 법 모두 훌륭한 배우다.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해석력과 디테일한 표현력이 뛰어난 배우인 것이다.
<인형의 집>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센캐(센캐릭터)이다. 우정원은 린데 부인 캐릭터를 더욱 욕먹게 해 본인의 연기력을 더욱 자랑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선택하지 않고 린데 부인과 우정원이 덜 드러나게 만들었다,
본인의 연기가 주목받기보다는 린데 부인 캐릭터에 관객들이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우정원은 관객들을 위로하고, 극 전체의 캐릭터 조화를 이루기 위한 배려를 했는데,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그녀의 해석력과 디테일한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