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발레단의 두 번째 창작발레 <춘향>이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유병헌 안무/연출, 미하일 그라노브스키 지휘, 코리아쿱 오케스트라 협연했다. 1986년 국립극장 초연 후 전 세계 15개국, 40여개 도시 공연한 <심청>은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공연된다.
<춘향>은 한국적 정서, 세계적인 감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다른 장르의 춤을 효과적으로 수용하는 발레의 포용성을 잘 살리고 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리뷰를 공유한다.
◇ 한국의 고전 ‘춘향전’을 모르는 관객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인가? 춘향의 이야기를 아는 관객! 발레로 춘향을 처음 만나는 관객!
<춘향>은 한국적 정서, 세계적인 감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국의 고전 ‘춘향전’을 모르는 관객도 발레 공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지 궁금해질 수 있는데, 직접 관람하면 춘향의 이야기를 아는 관객은 디테일한 감정이 안무로 어떻게 표현됐는지 더욱 잘 공유할 수 있고, 발레로 춘향을 처음 만나는 관객은 발레적 매력과 한국적 의상과 정서에 대한 호기심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레로 표현됐기에 향단(발레리나 오타 아리카, 박수경 분)과 방자(발레리노 임선우, 이택영 분)의 움직임도 살아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발레를 통해 향단과 방자의 캐릭터를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춤이 아닌 대사로 표현됐다면 춘향과 몽룡이 대화를 할 때, 방자와 향단은 대사를 하지 않고 기다려야 했을 것인데, <춘향>에서는 춘향(발레리나 강미선, 홍향기 분)과 몽룡(발레리노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 이동탁 분)이 2인무를 출 때 방자와 향단 또한 무대의 다른 곳에서 또 다른 2인무를 추기도 한다.
발레와 오페라에서 가능한 연출인 무대에서 동시에 두 곳에서 표현하는 장면이 가능했기 때문에 기존에 다른 장르로 ‘춘향전’을 봤던 관객 중에 디테일을 중시하는 사람은 더욱 감탄할 수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 창극이라면 어수선해질 수 있는 장면을 <춘향>은 발레라는 장르의 특징을 잘 살려 표현했는데, 발레로 춘향을 처음 접하는 관객이 설령 내용을 하나도 파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움직임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안무가 구성됐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방자 안무의 역동성 또한 보는 즐거움을 배가한다. 다른 장르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방자가 너무 나댄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춘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안무와 연출의 힘일 수도 있고, 필자가 관람한 회차에 출연한 이택영의 실력과 표현력 덕분일 수도 있다.
◇ 다른 장르의 춤을 효과적으로 수용하는 발레의 포용성을 잘 살린 작품
발레는 다른 장르의 춤을 포용해 조화롭게 융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춘향>은 한국의 전통적인 의상과 움직임을 발레라는 장르로 잘 살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발레 <호두까지 인형>에서 각 과자를 상징하는 요정들이 스페인 춤, 아라비아 춤, 중국 춤, 프랑스 춤, 러시아 춤 등 각 나라의 춤을 발레로 접목해 표현한 것처럼, 발레는 다른 장르의 춤을 발레 안으로 포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장르인데 <춘향>은 그런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
<춘향>의 초기 연출은 국립무용단 단장이었던 배정혜가 맡았는데, 이번 공연에서 안무와 연출을 맡은 유병헌 예술감독은 초연에서 사용한 창작 음악을 차이콥스키 모음곡으로 전면 교체했다고 알려져 있다. 재공연과 시행착오를 거쳐 한국적 요소와 발레적 요소의 균형을 찾은 것이다.
외국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지나치게 한국적일 경우 한 번은 볼 수 있지만, 그들과 정서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해 관람하기는 불편할 수 있다. 유병헌의 <춘향>은 클래식 발레 고유의 요소를 강화하면서 전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재공연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고, 재공연을 통해 지속적으로 한국적 정서를 전 세계 발레 관객들이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이 무척 의미가 깊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