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에서는 우리나라를 ‘해치백의 무덤’이라고 한다. 여러 국산 해치백이 나왔지만 대부분 판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탓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세단 선호가 그 이유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한데 이를 꼭 소비자 기호 탓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수입차 시장에서는 해치백 모델이 꽤 선전해왔기 때문이다. ‘해치백의 교과서’로 불리는 폭스바겐 골프가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배출가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국내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었다. 스페인 공장에서 건너오는 르노 클리오도 예상을 깨고 선전하는 중이다.
최근 시승한 기아 K3 GT는 이런 수입 모델에 맞서기에 충분한 차다. 기아차는 비록 국내에서 해치백 판매에 큰 재미를 못 봤지만, 유럽 시장을 노린 해치백을 꾸준히 내놨고, 유럽 전용 ‘씨드’ 같은 모델로 노하우를 상당히 축척해왔다.
K3 GT는 준중형차 K3의 고성능 버전으로, 4도어와 5도어 두 가지로 나온다. 그 중에 이번에 시승한 차는 K3 GT 5도어다. 세단형과는 다르게 5도어는 GT 버전만 있는 만큼, GT 버전은 고성능에 특화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외관은 일반형에 비해 몇 가지 차이점을 뒀다. 다크 크롬 레드 포인트 라디에이터 그릴과 블랙 고광택 사이드 미러 커버, 18인치 전용 휠, 듀얼 머플러, 리어 범퍼 디퓨저 등이 그것이다. 차체 컬러는 총 8가지인데, 그 가운데 오렌지 딜라이트(DRG)는 GT 전용 컬러다.
내장 역시 다르다. 사이드 볼스터를 키운 GT 전용 시트와 D컷 스티어링 휠, 가변형 무드 조명 등이 스포티함을 더한다. 양산형 모델치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사양을 갖추고 있는 편인데, 브라운 인테리어를 GT 모델에서 고를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레드 컬러를 적용한 GT 전용의 인테리어를 옵션으로 마련하는 것도 좋겠다.
파워트레인은 1.6ℓ 204마력 가솔린 터보 엔진과 7단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으로 구성된다. 공차중량이 1330~1385㎏이니, 마력당 중량비는 6.52~6.79로 꽤 우수한 편이다.
엔진음은 1.6 스마트스트림 엔진을 얹은 K3에 비해 상당히 스포티하다. 그러나 전자식 사운드 제너레이터는 인공적인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연스러운 흡·배기음을 좀 더 살리는 쪽으로 튜닝하면 한결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다.
변속기는 연비와 성능을 두루 감안한 세팅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수동모드로 바꾸면 감춰진 야수성이 드러나면서 쭉쭉 뻗어나간다. 패들 시프트를 이용한 변속도 상당히 즐겁다. 무엇보다 폭 넓은 rpm 활용도가 변속의 맛을 부추긴다.
K3의 타이어는 15, 16, 17인치 세 가지가 있는데, GT 모델은 18인치만 장착된다. 기본적으로 금호타이어 마제스티 솔루스 KU50(4계절용)이 장착되며, 25만원을 추가하면 미쉐린 서머 타이어를 달 수 있다. 시승차에 달린 미쉐린 타이어도 훌륭하지만, 그간 경험으로 볼 때 금호 마제스티 솔루스도 가성비는 좋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지 않는 이라면 금호타이어 제품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225/40R18 사이즈의 타이어와 스포티한 셋업 덕에 K3 GT는 고속주행에서 밀착감이 상당하다. 다만 고르지 못한 노면에서는 좀 통통 튀는 모습을 보이는데, 주행 모드에 ‘소프트’가 있다면 더 좋겠다.
더 단단한 승차감을 원한다면 튜온 패키지를 장착하면 된다. 175만원짜리 퍼포먼스 패키지 1에는 빌스타인 모노 튜브 쇼크 업소버와 강화 스프링, 스테빌라이저 바, 강화 부시 컨트롤 암이 포함되며, 50만원짜리 패키지 2에는 대용량 브레이크 시스템이 포함된다.
국내에서 해치백이 외면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좁은 뒷좌석과 트렁크 때문이기도 한데, K3 GT는 이 부분에서 흠 잡을 게 없다. 키 177㎝인 기자가 앉았을 때 뒷좌석 헤드룸이 넉넉하고, 트렁크도 상당히 넓다. 2열 시트를 잘 활용하면 레저 활동에 필요한 짐을 싣기에도 충분하다.
5도어 GT의 인증 연비는 4계절용 타이어를 장착했을 때 도심 10.8㎞/ℓ, 고속도로 14.0㎞/ℓ, 복합 12.1㎞/ℓ이고, 서머 타이어를 달았을 때는 도심 10.7㎞/ℓ, 고속도로 13.6㎞/ℓ, 복합 11.9㎞/ℓ다. 서머 타이어를 단 시승차는 성인 남자 두 명이 타고 고속도로 위주로 달린 후 12.0㎞/ℓ의 연비를 보였다. 연비 위주의 운전을 한다면 인증 연비는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K3 GT의 가격은 4도어가 2030만~2470만원, 5도어가 2265만~2510만원이다. 5도어의 시작가가 더 비싼 이유는 4도어에 있는 수동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비록 수동 모델의 인기가 없더라도 5도어 GT 버전에는 수동변속기를 추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도 ‘손맛’을 즐기는 이들은 수동변속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엔진/미션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3000만원으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해치백.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